치킨을 시켜도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 기본이다. 자장면하고 짬뽕을 반반씩 담는 그릇은 왜 우수 발명품으로 인정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의 주제는 반반(50-50)이라는 키워드다.
여기는 병원. 심각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와 그를 둘러 싼 의사들이 심각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머리가 희끗하신 의사선생님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환자분이 노출된 그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0.5%입니다. 쉽게 말씀드려 1000명 중 995명이 그 병을 이겨낸다는 말이지요. 가족 분들과 잘 상의해 보시고 결정을 내리시면 거기에 맞춰 수술 날짜를 잡도록 하죠”하고는 차트를 옆 의사에게 건네고는 병실을 나선다. 그 대학 교수님을 따라 일단의 의사들도 따라 나간다. 여기까지는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광경이다.
그때 아직 의사 가운이 어색한 인턴이 나가다 말고는 환자에게 조용하게 속삭인다. “어르신, 이 병은 그렇게 무서운 게 아닙니다. 1000명 중에 5명밖에 안 죽거든요” 하고 환자 귀에다 속삭인다.
자, 환자의 마음은 어떨까? 결과적으로 똑같은 말인 건 분명하다. 환자에게 수술 정보를 전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앞의 의사는 살아남는 비율을 환기했다면 뒤의 의사는 죽는 비율을 말했을 뿐이다. 둘 다 팩트(fact)고 둘 다 환자에게 꼭 전달해야 할 사실이다.
수학적으로 보면 확률은 동일하다. 그렇지만 같은 내용도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새가슴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환자에게는 천당과 지옥의 갈림길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그 인턴의사에게 환자의 생명을 맡기고 싶겠나? 물론 현실의 병원에서는 그럴 리 없다. 또한 가상의 인턴 하나를 나쁜 의사로 몰아가며 강조하고 싶었던 건, 환자에게는 사실보다는 어쩌면 정서적 믿음이 더 절실하다는 걸 전하기 위해서였다.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한 그룹에는 다진 고기 1인분 중 75%가 살코기라고 말하고, 다른 그룹에는 같은 고기에 25%의 지방이 함유되었다 말했다. 참가자에게 고기의 품질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더니 지방 성분을 운운한 그룹의 사람들은 고기의 질은 31% 정도 낮게, 고기의 맛은 22% 정도 더 낮게 평가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역시 비율상으로는 같지만 살코기가 좋은 감정의 그것이라면 지방은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실험이다. 동일한 고기라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부정적 감정에 의해 맛은 더 저평가되는 것이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의 원숭이 실험이다. 제한된 공간 속에 이놈들을 가두어 놓고 바로 앞에 있는 레버를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소위 보상(reward)에 관한 실험이다. 문제는 레버를 누른다고 매번 먹이가 나오는 게 아니다. 누를 때마다 나오는 100%의 확률이 아니라 그것을 50%로 낮추었다. 레버를 열심히 눌러도 항상 먹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올 때도 있고 안 나올 때도 있게끔 절반 정도의 확률로 조정한 것이다.
레버를 눌러도 과연 먹이가 나올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면 그 원숭이 뇌에는 과연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놀랍게도 먹이가 항상 나올 때(100%)보다 확률이 절반(50%)으로 줄어들 때, 행복과 쾌감을 유발하는 도파민 관련 뉴런들이 훨씬 더 격렬하게 반응했다. 즉 보상이 주어질지 아닐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더 강한 동기가 유발되는 것이다.
보상이 주어질 확률이 50% 정도일 때 뇌는 가장 짜릿함을 느끼며, 그 확률이 25%로 감소되거나 75%로 증가되는 경우 모두 도파민 관련 뇌 활동은 오히려 감소했다. 도파민 레벨은 가장 낮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100%나 0%였다. 원하는 걸 다 가져도 정말 행복한 게 아니란 말이다. 오히려 간절히 원함에도 얻을 확률이 비예측적일 때 얻게 되는 기쁨이나 행복이 가장 크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가장 과학적인지도 모르겠다. 최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노력했는데도 안 될 때가 많고, 예상 못 했던 일이 이루어지기도 하며, 잘 될 거라는 예측이 허무하게 무너지기도 해야 하나 보다. 낼모레가 부처님 오신날이다.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가 행복을 완성할 최적의 무대라는 걸 환기하러 오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