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장(錫杖)인가 금장(金杖)인가? 석장사지가 있는 이곳은 행정구역이 경주군 현곡면 금장리(金杖里)였다가 1987년 현곡면 금장리의 남부지역이 경주시로 편입되면서 석장동으로 개칭되었다.
이곳에 있던 옛 절에서 양지스님의 석장이 저절로 마을을 다니며 시주를 받았다는 설화로 절 이름이 석장사가 되고, 마을 이름이 석장동이 되었으리라.
금장(金杖)은 금 지팡이이고 석장(錫杖)은 주석 지팡이이다. 석장을 짚고 다니신 스님이 예사스님이 아니었으니 스님의 격에 어울리게 그 지팡이를 금장이라고도 하지 않았을까? 또 주석이 금속이니 쇠 금(金)으로 금장이라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석장사지를 찾아 나서다
석장사지를 찾아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동국대학교 부속유치원 뒤로 난 등산로를 따라 가면 되는데 등산을 즐기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소 무리이다.
경주 시내에서 이곳을 찾고자 하면 먼저 동대교를 건너 동국대학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200여m를 가면 도로 왼쪽에 유치원 건물이 보인다. 이 부근에 주차를 하고 유치원 뒤쪽으로 나 있는 옥녀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30여분 쯤 오르다가 큰갓산 바로 아래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계곡 건너편에 산죽(山竹)이 빙 둘러싼 공터가 보인다. 이곳이 바로 석장사지이다.
등산로를 따라 정각원에서 ‘석장사지 가는 길’이라는 리본을 나무에 달아 두어 이를 따라가면 되는데 막상 갈림길에서는 리본이 보이지 않는다.
답사만을 목적으로 쉽게 이곳을 찾으려면 동국대학교부속병원의 갈림길에서 우측의 4차로인 석현로를 따라 1Km를 진행하면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왼쪽으로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오른쪽에 경주선교교회와 관광농원 휴앤락의 오토캠핑장 입구 안내판이 있다.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 위로 올라가면 캠핑장이 나온다. 오른쪽 끝에 등산로가 있는데 이 길로 접어들면 ‘석장사터 가는 길 780m’라는 안내판이 있다.
싱 그로운 신록이 온 산에 넘친다. 절로 힘이 불끈 솟는다. 일찍이 소동파(蘇東坡)는 ‘춘야(春夜)’라는 시에서 ‘춘소일각직천금(春宵一刻直千金)’이라고 했다. 봄밤은 가히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이 화창한 봄낮은 만금(萬金)을 주고도 바꾸고 싶지 않다. 흥에 겨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저 멀리 산죽으로 둘러싸인 공터가 나타난다. ‘석장사지’이다.
-석장사지는 산짐승들의 수행처인가?
석장사지는 삼면으로 산죽이 둘러싸고 있다. 일부 와편을 모아 반듯하게 쌓아두었으나 주위에는 아직 많은 와편이 흩어져 있다.
제법 넓은 공터 주위의 산죽을 깎고 그 앞에는 ‘석장사지’라는 표지석을 세워 두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판석과 장대석 위에 발굴을 하면서 수습한 와편을 반듯하게 쌓아두었다. 안쪽으로는 허물어진 축대 일부가 보이고 그 아래로 주춧돌, 탑재, 기타 석재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건물지 등 추가로 확인할 사항이 있어 이 석재들을 수습하지 않고 원 위치에 그대로 둔 듯하다. 양지스님의 손길이 닿은 문전(紋?)이라도 하나 있을까 이리저리 찾아보았으나 그런 유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가끔 산새가 느린 울음을 울고 있다. 자세히 들어보니 그 소리가 찬불가로 들린다. 한쪽 귀퉁이에는 산짐승의 똥이 수북하다. 인적이 드문 이곳을 찾아 불공을 드린 흔적이리라. 이 축생들이 그 공덕으로 훗날 인간으로 환생하여 어느 하늘 아래 잘 살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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