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앞에는 으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삼색기둥이 설치되어 있다. 빨간색, 파란색, 흰색, 이 세가지 색깔이 돌아가는 삼색기둥. 이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빨간색은 동맥, 파란색은 정맥, 흰색은 붕대를 뜻한다. 인체의 해부도를 보면 어느 것이나 동맥은 붉게 정맥은 파랗게 그려놓았는데, 이는 실제 혈관의 색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동맥 혈관 속의 적혈구에는 산소를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어서 붉은 빛을 내게 되지만 정맥 혈관의 적혈구는 동맥보다 산소 함유량이 떨어지고, 또 이산화탄소의 비율은 높아서 혈관이 푸른빛을 띤다. 정맥의 또다른 특징은 동맥에 비해 피부 표면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런 이유에서 눈에 쉽게 띠이는 손목의 혈관이 파란색인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남은 색깔, 흰색의 의미는 하얀 붕대를 나타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흰색의 의미는 순결과 깨끗함, 따라서 치료의 상징적인 색이다.
이렇게 삼색이 완성되었는데, 그 세가지 색의 의미는 마땅히 출혈과 이에 대비한 지혈과 같은 치료를 나타낸 조합이다. 출혈은 굉장히 위급하고 그 처치가 빨라야 하는 응급상황이다. 다량의 출혈보다 더 위급한 상황이라면 환자가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 파악하는 기도확보 뿐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이 삼색기둥은 병원과 응급실을 뜻하는 표현이 되어야 할 텐데, 뜻밖에도 이발소 앞에 서 있는 이유는 대체 뭘까?
우리 같은 동양인과는 달리 서양인들의 머리결은 좀더 거친편이다. 동양인 남자들은 한두달마다 머리손질을 하는 편이지만 서양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 곱슬머리가 많아서인지 그네들은 평균 6개월은 머리손질을 하지 않아도 외관상 그리 티가 나지 않는다. 소득수준이 높은 현재도 이렇다면 수백년전 과거는 어땠을까?
한번 이발을 하고 나면 몇 년씩은 내버려두는 것이 아마 일상이었을 거다. 그렇게 수년간 놔둔 머리를 자르러 이발소로 가서 낡은 가위로 이발을 하고, 이 빠진 칼로 면도를 하고, 그렇게 긁히거나 찔려서 얼굴이나 다른 피부에 피가 나는 일도 다분했다. 이발사는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소독약과 붕대, 반창고 그리고 관련 의료용품들을 상시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
마을사람들이 농사나 사냥 따위를 하면서 다친 크고 작은 상처들은 사실 비교적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마을 이발소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일부 솜씨좋은 이발사는 찢어진 피부를 실과 바늘로 꿰메는 일도 충분히 했을 거다. 당시의 이발사는 사실상 상처와 외상의 치료르 하는 외과의사의 의료행위와 비슷했다.
이발사들도 의사처럼 흰 가운을 입고 있는 것도 비슷한 유래다. 과거 서양에서는 이발사들을 약을 취급하지 않는 의사로 대접을 했고, 아직까지도 이 관례가 그대로 이어져 현대의 이발소 앞에도 외상치료를 상징하는 삼색기둥이 돌아가게 됐다. 또다른 이유라면, 그 색깔의 조합이 굉장히 눈에 잘 띤다. 이발소가 있다는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낼 만큼 말이다.
병원에도 이발소처럼 삼색기둥을 만들어 설치하면 어떨까? 특히 화상과 같은 외상 전문 치료 병원이라면 그 의미도 적절히 맞다는 생각인데 말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수백년간 보아왔던 이발소를 뜻하는 상징을 이제와서 바꾸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병원과 이발소를 혼동할 가능성만 높아져 오히려 역효과가 날지도 모른다. 관례라는 것은 무시하거나 함부로 할 수 없는 뭔가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김민섭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