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100년 넘은 초등학교는 계림초와 옥산초, 양동초 세 곳이다. 이번호에서는 세 학교 중 마지막으로 강동면 양동초등학교를 다녀왔다. 회재 선생의 문중 서당으로 지속되다가 1909년 사립양좌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은 양동초등학교는 올해 개교 107년째다. 마치 전래동화 속에 나올법한 아담한 한옥 교사(校舍)는 양동마을 안에서 더욱 인상적이었고 고즈넉해 보였다.
앞으로도 첨단과 미래를 짊어질 어진 동량들을 길러낼 작은 시골마을 속 양동초가 개교 107년의 시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는 양동마을만이 가진 인프라 덕인 것 같다.
양동마을의 유일한 교육기관으로서 우리나라 전통 마을 중 가장 큰 규모와 조선 500년 역사를 이어 온 가치있는 마을 속 학교인 것. 봄날의 전형적 날씨를 보인 지난 29일, 강동면 양동초등학교(교장 박순남)를 찾았다. 그날은 마침 전교생들이 교내 실습지인 참살이 텃밭에서 고사리 손으로 여러 가지 채소 모종을 직접 심었다고 했다.
-회재 선생의 문중 서당으로 지속되다가 1909년 사립양좌학교로 설립인가
양좌학교는 원래 회재 선생의 문중 서당으로 1909년 2월까지 계속되다가 그해 3월, 사립양좌학교로 설립인가를 받았다. 1913년 9월 양동공립보통학교로 개교, 1923년 신교사로 이전한다. 1924년 수업연한 6년으로 연장 인가를 받았다.
1938년 양동공립심상소학교로 교명을 변경, 1941년 양동공립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1947년 단구분교장과 유금분교장이, 1948년 모서분교장이 설치됐다. 1950년 8월 한국전쟁으로 4개 교실이 파괴되었고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학교건물 절반이 파괴되는 수난을 거친다. 1981년 3월 1일 병설유치원 설치인가를 받았다(1학급).
1986년 3월 10일 경주교육청 지정 민속실 운영 시범학교로 선정됐으며 1996년 3월 양동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1997년 3학급으로 전교생이 34명에 이르러 통폐합 대상 학교로 위기에 봉착하기도 한다.
이에 양동초등 동문들이 주축이 돼 ‘모교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학생수가 증가했다고 한다. 어려운 고비를 넘긴 학교는 2008년 9월부터 2년간 경북교육청 지정 ‘작은학교 가꾸기 시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009년 양동초등 100주년 기념식을 가지고 양동의 세월은 곧 민족의 역사임을 기념한다. 2016년 3월, 제29대 박순남 교장이 부임해 7학급 편성(특수학급 1학급 포함)의 63명의 전교생이 다니고 있는 이 학교를 온화한 리더십으로 이끌고 있다.
-전통을 살리며 글로벌시대에 동참하고 있는 학교
양동초등학교는 조선시대 110명이나 되는 소,대과 합격자를 배출한 양동마을에 있는 학교로 설창산, 성주봉과 안락천이 어우러져 영남의 4대 길지로 일컬어지는 양좌동에 우뚝 서서 일찍이 우리나라 교육을 선도하며 국가적 동량을 길러낸 인재 육성의 요람이다.
양동마을을 찾는 연간 수 십 만명의 내외국인을 접하며 전통을 살리고 미래의 100년을 새롭게 준비하고 있으며 글로벌시대에 동참하고 있는 학교다. 한때 폐교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교직원과 동창회, 학부모들의 노력으로 올곧은 선비정신의 중심이자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돼 있는 양동마을 내에 있는 학교다.
자연을 벗하고 친구들과 벗하고 한 가족과 다름없는 분위기 속에서 면학과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더없이 훌륭한 환경속 전원학교다. 또, 이 학교는 교사(校舍)를 하나 지어도 양동마을과 전체적인 경관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인근 지역의 다른 작은 학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작지만 알찬 학교로 정평이 나 있는 학교인 것이다.
양동초등학교의 교훈은 ‘더불어 살아가는 정직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자’다. 교목은 플라타너스고 교화는 자목련이다. 플라타너스의 상징을 통해 씩씩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남에게 도움을 줄 것을, 자목련의 상징을 통해 청초하고 순결한 마음을 가꾸고 아름다운 꿈을 키워갈 것을 지향한다.
교육목표로는 나라를 사랑하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 새롭게 궁리하는 어린이, 세계화·정보화에 앞장서는 어린이, 서로 믿고 협동하는 어린이의 양성이다.
-사라호, 글래디스 태풍으로 학교에서는 이전 앨범들 소실돼
2012년 발행된 양동초등학교 100년사(1909~2009)에서는 ‘극심한 이농 현상으로 농촌 지역의 학교가 하나 둘씩 없어지고 있는 요즈음, 흔들리지 않고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특히 양동초등학교는 끊임없이 달라지고 발전하는 학교가 되고 있어 조선 교육의 근간을 이룬 성리학의 대학자인 회재 이언적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했다.
개교 100년사를 발간하면서 편집위원들은 “1951년 사라호 태풍과 1991년 8월 태풍 글래디스로 인해 학교에서는 이전 앨범들이 모두 소실됐고 76회 이후 앨범만 소장돼 있었다. 여러 방법으로 앨범과 자료 수합을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앨범 및 사료들을 많이 구할 수 없었다”고 했다.
또, “2009년까지의 학적부 5525졸업생 명단의 난해한 한문을 한글로 판독하고 일본식 이름을 개명 또는 한글 이름으로 수정해, 명부를 작성하는데도 많은 어려움과 시간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1971년 제57회 147명으로 최다 졸업생 기록, 현재 총 5575명 졸업생 배출
양동초는 1915년 제1회 졸업생은 6명, 1932년 제18회 졸업생은 34명, 1945년 해방되던 해는 제31회 114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 처음으로 100명이 넘는 졸업생을 기록한 것.
1965년 제51회 138명 졸업생 배출, 1971년에는 제57회 147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최다 졸업생을 기록했다. 1977년 제63회 75명으로, 졸업생은 100명 이하로 떨어지면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제 82회 졸업생을 시작으로 졸업생은 마침내 10명 내외가 된다. 올해 2월 제102회 졸업생은 4명으로 총 5575명의 졸업생을 배출해냈다.
자랑스런 동문들로는 37회 이동건 (주)부방 회장이자 국제로터리 회장, 이원경 전 내무부 장관, 44회 정수성 국회의원, 손경호 전 경북도의회의장, 46회 신라공고 손수혁 교장, 48회 이길구 기업인 등 정재계 역량있는 인사들을 다수 배출해 냈다.
-“60년 동안 한시도 양동학교 잊은 적 없어...오늘날 제 꿈을 영글게 한 곳”
49회 졸업생인 이순연 동문은 “3학년때 사라호 태풍으로 교실이 홍수로 가득차 교실 마룻 바닥이 천장까지 올라 붙은 기억이 있습니다. 교실이 없어 동네 나무 그늘 아래와 무첨당에서 수업한 추억은 잊을 수 없습니다”고 회고했다.
37회 이동건 선생은 “양동학교는 어린 날의 저에게 꿈을 심어주고 저를 길러 준 곳입니다. 지난 60년 동안 한시도 양동학교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오늘날 제 꿈을 영글게 한 곳입니다”고 회고했다.
58회 이원재 선생은 “양동초등학교에서, 우리 가정과 동네 어른들에게 배운 생각과 선비 정신은 제가 살아오고 성장하는 데 있어 강한 정신적 토대가 되었음을 새삼 느낍니다” 고 했다.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는 마을의 활력소고 희망의 메시지 입니다”
박순남 교장은 “양동인들은 조상들의 선비 정신을 이어받아 역사와 조화를 이루는 행복한 마음밭을 가꾸며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면서 “사실 지정 학구 학생들만 온다면 교육부 기준으로 폐교 수순을 밟아야겠지만 좋은 입소문을 타고 포항, 신광, 강동, 옥산 등 인근 지역에서도 아이들이 오고 있습니다”고 했다.
올해 신입생 10명 중 양동마을 학생은 4명이고 이외 타 지역에서 이 학교에 보내는 것. 박 교장은 양동초의 특수시책은 ‘양동마을 역사와 조화를 이루는 행복한 마음밭 가꾸기’ 라는 기치 아래, 다른 학교와는 달리 역시 전통이 강조되는 시책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선현의 얼 이어받기 운동을 통한 인성교육에 두고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전통 문화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면서 “우리의 것 계승하기로는 양동마을 예절체험, 양동 문화재 지킴이 활동, 한자 공부 등을 시행하고 있으며 전통문화 계승발전을 통한 예절교육의 신장을 위해 한자 및 사자소학(무첨당의 이지락 선생이 학생들에게 재능기부)과 풍물놀이, 연극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영어체험학습과 영어캠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양동초등학교는 전원학교로서 깨끗하고 뛰어난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매주 수요일은 한복을 입고 등교를 하는데 학생들 자체도 매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특히 가장 큰 자랑거리는 마을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어 어떤 학교보다 안전하고 폭력이 없는 학교라는 점입니다. 이 마을에 학교가 없으면 너무 삭막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는 마을의 활력소고 희망의 메시지 입니다. 전통 문화와 함께 역동성이 공존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