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고도로서 풍부한 사료, 유적, 유물을 가지고 있어 어느 지역과도 비교 할 수 없는 웅부다. 특히, 옛 지도는 지역 문화의 살아있는 역사를 담고 시공을 뛰어넘는 거울이기도 하다. 지도 제작의 시기와 종류를 보면 그 시대의 역사는 물론, 행정과 군사 등 중요한 시설과 민생의 삶을 일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지형과 도로에 담긴 선조들의 인식을 아울러 이해하고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규장각을 비롯해 각 기관에 소장돼 있던 경주 옛 지도를 모두 찾아 집대성한 작업이 있었다. 경주시와 경주문화원이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고지도 16종을 비롯해서 각 기관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경주 관련 옛 지도 75종을 모아 ‘경주의 옛 지도’(P317, 조철제 편저, 오세윤 사진)를 발간한 것.
평소 경주의 지명, 경주의 관할, 인접 지역과의 경계선, 실제 유적의 위치 등에 관심이 많았던 조철제 선생(전 경주고 교사, 전 경상북도문화재전문위원)은 이 책에서 규격을 비롯해 지도에 대해 친절하게 해제를 달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으며 부분도도 실었다.
-조선전도, 경상도 도별도, 경주부 군현지도, 근대지도 순으로 실어
조철제 선생은 “전국 여러 기관과 대학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목차는 조선전도, 경상도 도별도, 경주부 군현지도, 근대지도 순으로, 중요 지도는 여러 부분도를 나눴고 각 지도에 대해 간략한 해제와 논문 2편 그리고 지도에 글을 덧붙어 써 놓은 주기(註記) 4편을 같이 실었다. 제작연대는 임란 이전과 이후, 그리고 일제강점기로 크게 나눴으나 18∼19세기의 지도가 가장 많다”고 했다.
옛 지도는 행정, 군사, 지리 등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경주부의 관할권으로 경주부 전도를 놓고 보면 동해 쪽으로 장기, 영일, 흥해, 청하가 위치하고 서쪽으로는 영천권이다. 남북으로는 신광면 고라산(古羅山)에서 언양 열박산(咽薄山)까지 이어졌다. 경주부 지형은 ‘조선지도(규장각 소장)’에 나타나 있듯 북쪽은 좁고 길며 남쪽이 넓은 장경호와 같은 지형이다.
지도에는 지역 간 거리 정보가 기록돼 있다. 경주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780리(‘청구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이고, 서울까지 걸어가는 데 걸리는 날은 9일이었다. 거리 측정의 기준은 흔히 읍성 안의 객사이나 지도에서는 관문(官門) 곧 읍성 남문을 기준으로 삼았다.
-최고본이며 가장 특이한 지도는 ‘동여비고’, 사료적 가치 매우 높은 ‘경주읍내전도’
조철제 선생은 “특히, 이번 경주 옛 지도의 조사 중 최고본이며 가장 특이한 지도는 ‘동여비고’(대성암 소장)를 꼽을 수 있다. 임란 이전에 만들어진 이 지도에는 1442년(세종 24)에 전호가 내렸고 임란 때 소실된 집경전이 표시돼 있다. 이 지도는 경주 거의 최초 지도라 할 수 있다. 단지 경주 최초의 지도이다 보니 경주의 산천이나 하천의 배치 방향에 오류가 다소 있었던 점이 아쉽다”고 했다.
이 지도에는 또한 1515년(중종 10)에 화재로 없어진 영묘사(靈妙寺)가 보이고, 토함산 정상에 석탈해사(昔脫解祠)가 있다. 지도는 건물의 존폐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1798년(정조 22)에 만들어진 ‘경주읍내전도(慶州邑內全圖)’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집경전 비각을 완성한 후 집경전구기비와 아울러 정조에게 경주읍성 전역을 그려 올린 것으로, 읍성 전체를 적절하게 배치해 한 장 속에 담았다. 이는 이미 널리 알려진 지도로, 여러 부분으로 나눠 실었다.
-일제강점기 지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경주전역 나타낸 지리 지도와 경주의 고적지도
또, 일제강점기 때 나온 지도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경주전역의 산천과 유적 그리고 도로망 등을 나타낸 지도이고, 다른 하나는 경주의 고적지도다.
앞의 것은 지리 또는 지도학적 의미를 지녔다면 후자는 관광객 특히 경주관광을 위한 안내도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때의 지도는 특히 철도노선이 연대에 따라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1918년에 대구에서 경주로 내려온 협궤노선이 개설되었는데 이 노선은 서악역을 지나 두 갈래로 나눴다.
경주역에서 하나는 불국사로 가고, 하나는 구역(舊驛)과 서천을 지나 포항 쪽으로 가는 노선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1943년의 『경주고적안내도』(개인소장)를 보면 철도가 경주 중심권을 한 바퀴 감싸고 있다. 근대적 지도가 그려진 것은 우리나라에선 없고 거의 일제강점기에 그려진 것이다.
조 선생은 “옛 지도는 그 지역의 역사문화뿐만 아니라 행정, 군사, 지리 등 주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경주는 신라천년의 고도로서 첨성대와 월성 등 많은 유적은 물론 부성(府城)의 관아 건물 명칭과 배치 등이 각종 지도에 나타나 있다. 이를 사적(史的) 자료로 적극 활용하고, 아직 발굴되지 못한 경주관련 도서(圖書)를 지속적으로 찾아내 연구해야 할 것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