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천 한영구 선생(77)은 80평생 구도자적 자세로 서예에 매진해온 서예가다. 서예 인생 60년으로 한국서단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심천 한영구 서예 작품전’이 오는 27일(수) ~ 5월 3일(화)까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린다. 경주시와 수산중공업 후원으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2011년 ‘포항MBC 창사40주년 기념초대전’이후 5년 만에 갖는 전시로, 자유분방하면서도 엄정한 법도를 지키고 유려하면서도 강건함을 동시에 지닌 서예세계를 다시 한 번 선보일 예정이다. 이 전시의 오프닝은 27일(수), 오후7시. “일생 수련하고 고법책을 외우고 써야 도(道)와 서(書)가 혼연일체를 이룬다. 이것이 서예다”라고 일갈하는 선생은 여전히 기상과 위엄을 간직하고 있다. 이웃나라 서예 대가들도 심천 선생의 작품 앞에서는 겸허하게 옷깃을 여민다. 절제된 기품과 준엄하면서도 온화한 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글씨뿐만 아니라 선생의 풍모에서도 그러하다. -심천 선생 예술의 정신적 뿌리는 ‘마부작침(磨斧作針)’, ‘정좌관심(靜坐觀心)’ 선생은 우리 시대에 와서 선생이 추구해 온 심오한 경지를 다양한 서법과 서체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회는 희수(喜壽)를 맞이한 선생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평생을 지향해 온 정신 세계와 감추어진 예술 경지의 지평을 세상에 알리는 전시다. 저처럼 소중한 작품들을 어떻게 정제해 냈을까. 저 많은 작품의 획(劃)마다, 구(句)마다 얼마나 큰 공력이 실렸을까 하는 생각은 신라의 예술혼을 이어받아 고절한 예술정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선생의 작품앞에서 기우로 돌려져 버린다. 심천 선생 예술세계의 정신적 뿌리는 ‘마부작침(磨斧作針)’과도 같은 실천공력이다. 이는 획 하나조차 소홀하게 다루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 굳세고 엄격한 필획을 펼쳐낼 수 있도록 독려해온 것에 다름 아니다. 선생의 서예 인생을 관통해온 또 하나의 핵심은 ‘정좌관심(靜坐觀心)’이다. ‘고요히 앉아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웅혼하면서도 절제된 기품이 그대로 배어있는 작품 세계를 형성한 것이다. -유려함과 강한 골기(骨氣) 공존, 자유로움과 형태미도 돋보여 선생의 전서 작품은 둥글고 원만한 획에서 나오는 유려함과 강한 골기(骨氣)가 공존한다. ‘明月長風’, ‘傳家有明德’, ‘忠武公 劒銘’과 같은 작품이 그러하다. 또한 운필의 지속에 따라 ‘觀世音菩薩 普門品 四十曲屛’, ‘堤潰自蟻穴’과 같이 원만함이 느껴지는가 하면, ‘樂以忘憂’과 같은 작품에서는 속도감이 느껴진다. 행초서 작품에서는 단필 특징을 잘 보여준다. 탄력을 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단필을 사용해 적절한 긴장감과 강한 필세를 얻었다. 결체에 있어서는 세로로 긴 글자와 가로로 긴 글자들이 공존한다. 독초체(獨草體)로 끊어지지 않고 계속 잇닿아 있는 부분이 거의 없을 정도다. 자세히 보면 두세 글자가 보이지 않게 기운이 서로 연결되는 분방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뚝뚝 끊어 마무리하는듯한 절제미와 간결미가 돋보이면서도 강한 의지와 특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자간 행간의 자유로운 넘나듦으로 인한 자유로움과 형태미도 돋보인다. ‘西山大師詩 曲池’, ‘西山大師詩 曲池’, ‘君子必愼其獨’등의 작품에서 그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尹奉吉義士 出家銘’...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정신이 만나 이룬 장쾌한 작품 이번 전시작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작품은 ‘尹奉吉義士 出家銘(43×32cm)’으로서, 심천 선생의 정신과 윤봉길 의사의 정신이 만나서 이룬 장쾌한 장면이다. 소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세와 장쾌함과 활달함은 대작을 방불케 한다. 중국 상해 매헌공원과 장사 임시정부를 보고 소회를 쓴 이 작품은 “丈夫出家生不還(대장부 나라를 위해 집을 나가니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의와 목숨을 건 각오가 선명하게 서려있는 글귀다. 월간 서예문인화 이용진 편집장은 심천 한영구 서전에서 “심천 한영구 선생 서예의 특징은 경과 학을 요체로 하되 선생 고유의 서체를 구축했다는 점이다”고 했다. 대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황용수 명예교수는 ‘심천 한영구 서집’에서 심천 선생의 서예술 세계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심천 선생은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라 국전 심사위원으로 크게 활약하면서 자기 몫의 별자리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는 심천 선생의 작품이 지닌 생명력과 예술성을 한국 서단이 높이 평가한 결과였던 것이다. 서예의 정도(正道)를 생명처럼 지키면서 엄청난 수양과 각고의 노력으로 이루어 낸 결실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필심(筆心)이 깊은 심천서예를 ‘도(道)의 구현(具現)’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높은 예술성과 대중적 인지도 가진 한국 서단의 최고봉 심천 선생은 선비였던 부친을 비롯해 조상대대로 석학을 배출한 집안의 가풍 속에서 어려서부터 한학을 익혔다. 일찍부터 한학과 서예의 길을 갈 것을 다짐한 선생은 고향의 무산중학교를 졸업한 이듬해부터 6년 동안 경주 화천리 백석암에 머물며 한학과 서예에 몰두했다. 이후 계파 최윤, 소헌 김만호 선생을 거쳐 시암 배길기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서예에 매진한다. 선생은 주요 신문과 방송에 그 예술세계가 많이 소개될 정도로 높은 예술성과 대중적 인지도를 가졌다. 전국에 걸쳐 비문과 현판도 많이 남겼다. 꽃마을 경주한방병원의 현판과 주련, 보광사 대적광전과 극락전, 함월산 기림사 일주문 현판과 삼천불전 주련, 불국사문화회관 주련, 11인 해병 충혼탑, 경주임란의사창의비, 다산 정약용 선생 사적비, 찬기파랑가 향가비의 등을 비롯해 각종 도서의 표지제자도 다수 남겼다. 선생은 1967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출품해 72년 첫 국전 입선에 이어 입선7회, 특선1회로 1984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로 선정됐다. 1973년 서라벌연묵회를 창립하고 제6회 경주시문화상(1994), 제23회 경북서예대전초대작가상(1996)에 이어, 제43회 경상북도문화상(2002), 2013년 올해 제17회 세계서법문화예술대전 국제교류전 특요작가상을 수상했다. 2000년 포항MBC회갑초대전, 2011년에는 포항MBC창사40주년기념초대전으로 고희전을 가졌다. 전시에 맞춰 발행한『心泉韓永久書集』은 50년 외길을 걸어온 서예가의 원숙함을 보여주고 있다. 2003년부터 도남서단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2012년 사단법인 심천서예연구원을 창립해 현재 원장으로 있다. 이번 전시는 2011년 포항MBC 창사40주년 초대전, 2014년 중국 서안총영사관 초대전에 이어진 여덟번째 개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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