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한 자 한 자를 고르고 쓸 때 제 혼을 다 바쳤습니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서도의 즐거움을 앞세우지만 늘 부족하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인륜의 도덕과 철학이 내재돼 있어 순리대로 살아야 하는 이치를 터득케 하는 지침과도 같은 문구들로 넘쳐나는 묵향 그윽한 전시가 우리를 기다린다. 바로 무림(茂林) 황재식(62) 선생이 경주에서 첫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 것.
고요한 마음으로 그가 보여주는 깊고 그윽한 글씨의 향연을 즐기다보면 어느새 고전을 읽은 듯한 열락(悅樂)도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전시다. 선생은 이번 개인전을 통해 관람자에게 마음의 양식을 선물하는 것이다. 외동읍 죽동리 출신인 그는 바람직한 삶은 무엇이며 인의예지를 추구하고 인간답게 사는 것은 또한 무엇인가를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무림 황재식 서예 작품전’이 오는 19일부터 24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4층 대전시실에서 열린다. 유년 시절부터 한학을 배우고 서예를 해 온 선생은 이번 전시에서 후대에 귀감이 될 수 있는 내용의 한문서예 글씨체와 캘리그라피를 곁들여 15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에선 논어를 비롯해 맹자, 중용, 서경, 노자, 사기, 도덕경 등의 글귀를 붓글씨로 선보이고 아내인 이갑례 작가의 한국화 20여 점도 함께 전시한다. ‘서예와 캘리그라프 모두 글씨에 영혼을 담는 기술이고 예술이다’는 선생은 전통서예가이지만 다양한 회화적 느낌이 강한 캘리그라피를 선보이는 것에 대해 시대의 흐름을 읽고 다양한 창의성을 시도하는 측면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서화작품대전 특별상, 대한서화예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하고 서예가로 확실한 위상을 세웠음에도 고향 경주에서 첫 개인전을 가질만큼 겸양의 미덕을 지녔다.
“내공이 쌓여야 하고 남들에게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아야 하는데 내 글씨를 남에게 내어 놓는다는 것이 두렵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그 방증이다. 무림 선생은 서예가이면서 고전과 한자에 통달한 학자다. 그것은 일일이 고전의 원문을 탐독한 자강불식(自强不息)의 결과다.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작품에 대한 평가도 받고 서예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재능기부도 하려고 합니다. 잘쓰는 글은 아니지만 하나하나의 문구들이 각종 사회 병리 현상에 작은 지침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특히 경주에서 개인전을 하는 것은 ‘고향’이라는데 의미를 두고 싶어서입니다”며 이번 개인 전시회의 의미를 짚었다.
선생이 이번에 출품한 작품들에는 그간 각근면려 해 온 글씨로, 인간 삶의 근본을 아우르는 이치를 다루고 있으며 각 고전의 경구들을 쓴 한 획 마다에는 보석같은 의미가 반짝인다. 오늘날 우리가 상실해가고 있는 미덕에 대한 상기를 그의 글씨를 통해 할 수 있는 것. 또 작품마다에는 알기 쉽게 글귀를 풀어서 그 뜻을 설명해 놓았다.
다양한 서체를 감상하는 즐거움은 물론, ‘禍福無門 惟人自召, 善惡之報 如影隨形’, ‘吾日三省吾身’ ‘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 其身正而天下歸之’ 등 이 글씨는 각 출처에 대한 고전공부를 통한 깊이있는 해석으로 감상의 깊이를 확대시킨다.
선생은 서예를 꾸준하게 연마하는 즐거움에 대해선 “서예가로서 평생을 관통하는 즐거움은 무릎을 치는 고전의 명구에서 맛보는 희열입니다. 또 붓을 잡고 있는 순간만은 모든 잡념이 사라지죠. 그 기쁨은 필설로 형용키 어렵습니다”면서 “서예를 하는 이의 근본은 고전을 익혀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전을 알지 못하고 글씨를 쓰는 것은 글을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고 강조했다. 고전을 숙지하지 않으면 ‘수박 겉 핥기식’이라는 것. 인문학적 지식이 바탕이 돼야 서예인의 체화된 묵향이 화선지에 번지는 것이다.
“서예는 글의 내용은 물론, 글씨도 좋아야 하고 서체도 좋아야 합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쓰는 이의 올바른 인품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서예인이 어깨가 무거운 이유입니다”고 했다.
선생은 진재 이성곤 선생으로부터 서예를, 소당 조철제 선생으로부터 한문을 사사했다. 대한민국 창작미술대전 수상, 한국미술제 금상, 한국예술대제전 대상, 한국서화작품대전 특별상, 대한서화예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한 바 있는 중견 작가다. 선생은 현재 사업체를 김해에서 운영하면서 서예로 재능 기부도 하고 있다.
이 전시에는 오프닝을 겸하는 작은 잔치도 마련돼 있다. 오는 23일(토) 경주예술의전당 대전시실/ 오후 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