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원죄(原罪)’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 된 것이다. 그들이 기도하는 손도 쇠사슬에 묶인 손을 상징화한 죄인의 손 모양 그대로다. 반면에, 유대교에는 아담과 이브의 불순종(不順從)죄는 인정하지만, 이 죄가 후손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원죄사상은 없다. 그들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유대인에게 죄란 과거에 있지 않고 ‘현재’에 있다고 한다. 현실에 충실하지 않는 삶이 유대교에서는 죄라는 말이다.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에게 불순종한 것이 죄가 아니고, 오늘을 사는 내가 하느님에게 불순종하는 것이 죄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내가 범하는 불순종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주장에 따르면 하느님이 인간에게 거는 기대는 당연히 크다. 그래서 유대교에서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지 않는 것을 죄로 여긴다. 주어진 가능성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게으름’이 죄가 된다. 하느님이 주신 자기 안의 달란트(talent:타고난 재능)를 찾아내 힘껏 그걸 키워나가지 않는 ‘무능력’이 죄가 된다. 유대인에게 있어 신앙이란 자신 속에 내재된 하느님의 형상과 자신의 달란트를 찾아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려는 노력이다. 죄인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죄인은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 기독교와 결정적 차이다. 이렇게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곧 자기의 재능이고 달란트다. 이걸 찾아내어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꾸준히 갈고 닦아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죄를 짓지 않는 길이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이 자녀를 13살 성인식 때까지 부모에게 맡겼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녀를 한 사람의 온전한 유대인으로 만들어 성인식 때 하느님께 되돌려드려야 한다고 믿는다. 유대인은 자녀의 근본 소유권은 하느님에게 있기 때문에 하느님이 맡긴 아이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 키우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고 여긴다. 그러니 유대인들에게 있어 교육은 그냥 교육이 아니다. 교육은 하느님을 섬기는 종교적 행위의 다른 이름이다. 교육이 기도인 셈이다. 이런 종교 인식의 총체적 전환은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다. 사례 몇 가지만 나열해 보자. 먼저 전 세계 인구의 약 0.25%에 불과하지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65%가 유대인이란다. 포춘(Fortune)지가 선정하는 글로벌 100대 기업 중 무려 40%가 유대인 소유고, 전 세계 백만장자의 20%가 유대인이라고 한다. 자산이 1000억 원 이상인 진짜 금수저들 말이다. 그뿐인가. 아인슈타인도, 토마스 에디슨은 너무나 유명한 유대인이고,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 세상에서 가장 부자며 동시에 기부도 제일 많이 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도 유대인이다. 죠스, 쥐라기공원 같은 영화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도 그렇다. 구글 창업자에서 스타벅스, 허쉬 초콜렛, 던킨도너츠 창업자까지도 몽땅 유대인이란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워너브라더스, 유니버셜 등 할리우드 주요 영화사 7곳 중 6개가 유대인이 설립했고,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로이터 등 대표 언론매체도, 미국의 3대 방송사인 ABC, CBS, NBC도 그들이 설립했다고 한다. 금융권에서도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글로벌 은행 17개 회사가 유대인이며, 세계 7대 석유사업 그룹 중 3개가, 세계 6대 곡물회사 중 2곳이 유태인 소유란다. 아, 지쳤다. 그만하자. 언론에서 경영·경제, 먹을거리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인들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아니라 ‘유대인’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종교에서 죄는 금지(禁止)가 아니라 오히려 권장 사항일 수 있다는 적극적 해석한 것이 만들어 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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