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슨 볕 등에 지고 유마경(維摩經) 읽노라니
가벼웁게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운다.
구태여 꽃 밑 글자를 읽어 무삼하리요.
봄날이 고요키로 향을 피우고 앉았더니
삽살개 꿈을 꾸고 거미는 줄을 친다.
어디서 꾸꾸기 소리 산을 넘어 오더라.
만해 한용운의 ‘춘화(春畵)’라는 제목의 시조이다. 따사로운 봄날 낮에 『유마경』을 읽는데 바람에 날리는 꽃잎이 글자를 가리었다. 허공에서 책 위로 살짝 내려앉은 꽃은 본래 실체가 없는 번뇌 망상이다. 하지만 구태여 꽃 밑의 글자를 읽을 필요가 없다는 선(禪)의 세계를 시화한 것이다.
오늘은 꽃잎에 가린 글자가 아니고 오랜 세월 풍상을 겪으며 희미해져 가고 있는 암벽의 그림을 찾아 나선다. 인간은 표현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아득한 옛날 문자라는 구체적인 표현의 도구가 없을 때에는 그림이나 부호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동굴 벽면에 그리거나 암벽에 새긴 것 중 일부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굴에 그린 것은 거의 전해지는 것이 없으나 암벽에 새긴 것은 울산, 경주, 포항, 영천, 안동, 영주, 고령, 남해 등 영남지방과 남원, 여수 등 호남지방 등 20여 곳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발견 사례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연 속에 노출된 암벽에 여러 가지 동물의 형상이나 기하학적 상징 문양을 그리거나 새겨놓은 그림을 암각화라 하는데, 암화·암벽각화·암벽화라고도 한다.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두드러진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였고 청동기시대에 와서 가장 많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신앙과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였으며 주로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이 많다.
암각화를 표현하는 기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바위를 단단한 돌이나 또는 다른 도구를 사용하여 두드려 쪼아서 형상을 묘사하는 방법이 있고, 쪼아낸 후에 그 부분을 갈아서 더 깊고 매끈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또 날카로운 금속도구를 이용하여 바위 면에 가는 선을 그어 형상을 묘사하기도 한다.
복원된 금장대 바로 아래 예기청소 절벽 위 수직 암벽에 그림이 새겨진 바위가 있다. 남면은 삼면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데, 가운데 암면이 직각으로 꺾여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98호로 지정된 금장대 암각화로, 1994년 동국대 경주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학술조사팀이 발견하였다.
암각화는 물상암각(物象岩刻), 기하학문암각(幾何學文岩刻), 성혈암각(性穴岩刻)의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이곳 금장대 암각화는 방패문,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인면(人面)이 주로 새겨져 있고 사람의 발자국, 짐승의 발자국, 사람, 탈[假面], 산과 동물, 배, 여성의 성기 모양 등 물상과 기하학문으로 되어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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