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성비라는 말이 유행이다. 가성비(價性比)는 ‘가격’ 대비 ‘성능’을 의미하는 신조어인데 단순히 ‘투입(input)’ 대비 ‘산출(output)’을 의미하는 효율성과는 다른 개념이다.
가성비는 저금리 저성장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저금리 저성장 시대에는 요행이 잘 통하지 않는다. 은행에 돈을 넣어둬도 이자가 쥐꼬리다. 똘똘한 아파트를 분양받아도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 기업들 실적이 별로라 주식으로 재미를 볼 수도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알뜰하지 않으면 이 험난한 시대를 버텨낼 재간이 없다.
가성비는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생겨난 말이다. 내가 사려고 하는 물건이나 누리고자 하는 서비스가 최고일 필요는 없다. 일정수준 이상이면 된다. 그 다음은 가격을 본다. 이 때 가격은 최저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조금 궁해도 싼 비지떡을 선택하진 않는다. 가성비가 좋은 사례를 살펴보자. 1500원짜리 앗!메리카노를 파는 빽다방, 디자인이 좋고 트렌드에 민감한 중저가 패션브랜드 유니클로가 대표 사례다.
그러나 ‘대륙의 실수’를 연거푸 저지른 샤오미에는 못 미치는 것 같다. 요즘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스마트 폰과 스마트TV를 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고의 품질은 아니지만 쓸 만하고 가격은 착하다. 말 그대로 가격 대비 성능이 탁월하다.
이쯤에서 화제를 돌려보자. 가성비는 공공행정에 어떤 시사점을 던져주는가? 가성비를 공식으로 표현하면 ‘성능/가격’이다. 분자인 ‘성능’은 공공사업의 성과를 말하며 대체로 무형적인 가치다. 분모인 ‘가격’은 투입예산을 뜻하며 대체로 세금으로 확보한 재원이다.
따라서 동일한 투입예산으로 더 큰 사업성과를 내거나 동일한 사업성과를 더 작은 투입예산으로 성취하면 가성비는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사업성과의 환상에 빠져 투입예산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성과만 좋으면 예산의 다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러면 많은 예산을 확보해서 으리으리한 사업을 하는 사람이 능력자로 등극한다. 가성비가 좋지 않은데도 말이다.
가성비가 공공행정에 주는 시사점은 ‘공식에서 분모(투입예산)에 주목하라!’이다. 재화나 서비스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가격(분모)을 본다고 하지 않았나?
이는 공공사업의 성과 자체도 중요하지만 투입예산을 꼭 살펴보라는 말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사업성과를 정말 알뜰한 예산투입으로 일궈냈다면 널리 알리고 칭찬할 일이다. 사실 진정한 능력자는 적은 예산으로 수준급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는 일반 공공행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연이나 전시사업의 드러난 성과만 보고 들어간 예산은 보지 않는다. 10원을 써서 20원의 성과를 낸 사람(가성비=2=20/10)보다 100원을 써서 50원의 성과를 낸 사람(가성비=0.5=50/100)이 더 인정받는 셈이다.
이건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20원 이상이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라면, 전자의 가성비는 후자보다 4배나 좋기 때문이다. 문화예술분야는 노동집약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가성비의 분모가 ‘사람’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기계’라면 투입 대 산출 비가 일정하지만 ‘사람’이라면 다를 수 있다. 남다른 열정과 관심은 금전적 투입 없이도 몇 배의 승수효과를 내기도 한다.
때로는 무한대(∞)의 가성비도 가능하다. 분모가 ‘제로(0) 예산’이면 말이다. 열정만으로 사업을 일궈내는 경우다. 요컨대 가성비의 본질은 공식의 분모를 살펴봄에 있다. 이는 적은 예산으로 좋은 기획을 하는 문화예술인의 사기를 진작하는 일이고 궁극적으로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