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339호 화려한 봉황 장식 금관이 발견된 신라무덤 서봉총(瑞鳳塚)이 90년 만에 다시 발굴된다.
서봉총은 표주박 형태의 쌍분으로 1926년 북분, 1929년에는 남분을 발굴했지만 한정적인 발굴지점, 구체적 조사 내용 부재 등으로 재발굴조사가 필요했던 신라 무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1일부터 10월까지 노서리 129호분이라고도 불리는 서봉총을 발굴한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때 발굴한 신라무덤에 대해 재발굴하는 것은 지난해 금관총 이후 두 번째다. 서봉총 북분은 일제강점기인 지난 1926년 조선총독박물관이 조사를 진행했었다.
당시 조사는 학술 목적이 아니라 경주역 기관차고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흙을 구하기 위해 이뤄졌다.
일제는 공사에 필요한 흙과 자갈을 봉분에서 채취해 현장으로 보내고, 유물은 유물대로 조사한다는 명분으로 무덤을 파헤친 것이다.
당시 높이 35㎝, 지름 18.2㎝인 금관을 비롯해 금공예품, 토기, 철기, 장신구 등 유물 570여 점이 출토됐다. 경주 고분에서 금관이 나온 것은 금관총, 금령총에 이어 세 번째였다.
또 서봉총 조사 책임자였던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는 평양부립박물관장으로 재직하던 1935년 금관을 기생의 머리에 씌운 뒤 사진을 찍어 큰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일제는 서봉총에 대한 보고서를 남기지 않았고, 금관을 비롯한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됐다. 박물관은 지난해에야 발굴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서봉총은 일본에 머물고 있던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경주를 방문해 금관을 수습했는데, 스웨덴의 한자 표기인 서전(瑞典)과 금관의 봉황(鳳凰) 장식에서 한 글자씩을 따 무덤의 명칭을 지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또 남분은 1929년 영국인 데이비드(Devid)가 경비를 부담해 발굴 조사했다는 이유로 데이비드총이라 이름 붙여지기도 했다. 박물관은 이번 조사에서 무덤이 어떻게 조성됐는지 확인하고, 시신이 묻힌 매장주체부 주변에서 유물을 찾아낼 계획이다.
특히 서봉총은 지난해 금관총 발굴과는 달리 완전해체한다는 계획이어서 신라시대 무덤의 특성인 적석목곽분의 비밀을 풀어낼지 여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물관은 11일부터 지중 레이더 탐사를 벌인 뒤 정확한 발굴계획을 수립한 뒤 고유제를 시작으로 본격 발굴에 들어갈 예정이다. 발굴현장은 지난해 금관총 조사처럼 일반에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조사에서 나무 덧널을 덮은 돌무지를 얼마만큼 해체했는지 알 수 없어서 조사 기간을 예상하기 어렵다”면서 “만약 일제 조사단이 돌무지를 완전히 걷어냈었다면 기간이 짧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관총 발굴전시관 건립 추진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경주박물관이 지난해 발굴한 뒤 복토한 금관총에 (가칭)발굴전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일 경주시 등에 따르면 현재 금관총을 실물크기 형태의 봉분을 만들고 내부는 천마총처럼 전시관을 갖추는 등 발굴전시관 건립을 위한 기본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내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내년부터 전시관 건립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기본설계가 진행 중이어서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전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천마총과는 다른 형태의 전시관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또 “금관총 발굴전시관이 건립되면 경주 도심에 새로운 볼거리가 조성되는 만큼 관광 및 도심활성화에도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주시의회는 지난해 6월 3일 금관총 관광자원화와 관련해 문화재청에 건의서를 제출한 바 있다.
건의서에는 금관총 발굴 후 현장을 덮지 말고 천마총과 같이 복원 또는 재현해 관광자원화하고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공개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출토된 유물을 전시 보관할 오픈식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향후 발굴하는 고분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관광자원화하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건의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