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마을 한 가운데 문화유산이 곳곳에 있고 그 문화유산과 어우러진 자연생태군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청명이었던 지난 4일, 최재영 교수와 삼릉에서부터 시작하는 ‘삼릉가는 길’일부 구간을 걸어 보았다. 삼릉가는 길은 월정교에서 도당산 터널을 지나 천관사지, 오릉, 김호장군고택, 일성왕릉, 남간사지당간지주, 창림사지, 포석정, 지마왕릉, 태진지 라는 작은 연못 등을 거쳐 서남산 기슭인 삼릉에 도착하는 8km에 달하는 길이다. 최재영 경주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는 문화유산과 함께 자연경관자원을 스토리텔링화해 문화콘텐츠로 개발하자면서 경주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생태관광 및 농촌관광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주에는 심미성, 역사성, 향토성, 자연성 등을 두루 갖춘 보존 혹은 이용할 가치가 있는 시각 대상이 되는 경관자원이 많으며 경관적 체험을 통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자연요소들이 많아 생태경관을 포함한 생태관광의 주요 테마가 될 수 있는 곳이라는 것. 삼릉 가는 길을 따라 걸으며 문화유산과 함께 생태 및 농촌경관에 주목했다. 이 기사는 최재영 교수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했다. -배동 삼릉숲...삼릉과 함께 노송까지 조명해야 경주 남산에는 신라의 영험한 정기가 서려있는 소나무 숲이 있다. 바로 남산 초입에 위치한 배동 삼릉숲이다. 신라 세 왕을 호위하고 있는 노송들은 도래솔로서 의연하고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가 넘친다. 소나무 사이로 봉긋하게 ‘살풋’ 보이는 삼릉은 도래솔에 안겨 있는 형상이다. 삼릉은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아래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해지고 있다. 최재영 교수는 “삼릉 주변의 노송까지 조명해야한다. 삼릉을 보러 오는 이보다 삼릉의 숲을 보러 오는 이들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재뿐만 아니라 자연경관도 함께 감상해야 한다. 소나무가 경주 남산에 잘자라는 이유는 소나무의 생리적 특성상 물빠짐이 잘되는 마사토에서 잘자라서다. 경주남산에는 마사토가 많은데 이는 화강암이 오랜 풍화 작용을 거쳐 잘게 부스러져 형성된 토양이다. 당시 능 주변에 심는 소나무를 도래솔이라 했다. 도래솔은 죽은 영혼을 위로하고 달래주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 이곳 소나무 수령은 대체로 150~200년 혹은 100여년 되는 소나무들이다. 소나무가 커갈수록 소나무 줄기가 불그스레해지는 것으로 보아 육송이면서 적송으로 보인다”고 했다. -배병우 사진작가 덕에 더욱 유명세 탄 삼릉 숲...재선충 예방에 최선 다해야 봄비가 내린 후 더욱 깊어진 삼릉 숲의 아름다움을 담으려는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촬영을 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 삼릉숲의 안개 자욱한 소나무를 찍은 배병우 사진작가의 작품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삼릉 숲이 유명세를 탄 도화선이 된 것이다. 삼릉 소나무숲을 담은 그의 작품이 2005년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가수 엘튼 존에게 고가로 팔린 이후부터 이곳의 사계를 담으러 오는 이들로 연일 붐비고 있는 것. 최 교수는 “이곳을 다녀가는 이들은 될 수 있으면 많이 밟지 않는 것이 좋다. 가급적 일정한 산책로를 내서 그곳으로 다니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소나무는 답압(踏壓)에 약하므로 소나무 숲은 덜 밟도록 하는 것이 생육에 이롭다”며 “산내, 내남, 강동, 안강, 양남은 재선충의 피해를 입고 있으나 이곳은 아직은 재선충에 안전하다. 재선충 예방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목의 무게를 지탱해주기위해 철제 버팀목을 해 두는 것은 물론, 경주국립공원관리공단과 경주시 산림과에서는 재선충 예방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또 “소나무가 호위하고 있어서 릉의 아름다움이 배가(倍加)되는 것 아닌가. 소나무가 없는 릉은 상상할 수 없다. 문화유산이 주변의 생태환경과 어우러져 경관의 효과가 더욱 발휘되고 문화유산도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또, 삼릉 주변 가로에 이런 소나무가 터널 형식으로 형성돼 있는 곳은 삼릉 주변뿐이다. 특이한 경관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가 내린 후 물기를 머금은 삼릉 숲 소나무의 수피(樹皮)는 더욱 극명한 명암대비로 나뭇결의 아름다움이 선명하게 돋보였다. 소나무의 수피가 거북이 등처럼 보이는데 옛 선조들은 거북이를 장수의 영물로 여겼고 그 무늬를 띤 소나무를 숭상시 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가지 위로 올라갈수록 끝 부분의 수피가 벗겨지는 것이 용의 비늘을 닮았다고 해 소나무를 더욱 숭상하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테레핀’은 송진에서 나오는 물질로 솔 숲의 향기가 진한 것은 이 테레핀 덕이라 한다. 그윽한 솔향을 들숨과 날숨으로 깊숙히 호흡해 본다. 삼릉 주변에는 과수원의 사과꽃을 비롯해 산벚꽃, 산복숭아, 진달래, 산철쭉 등이 산재해 있어 자연스레 소나무들의 정령과 교감하고 있었다. 최 교수는 경주 황성공원과 함께 이곳 삼릉 주변에도 후투티가 일부 서식한다고 귀뜸하면서 “왕릉 뿐만 아니라 경주 남산 전체에 소나무가 우거져있다. 낙엽수를 심어도 되지만 소나무가 지닌 오랜 시간성은 물론 사계절 푸르른 소나무의 기상과 고고한 아름다움에는 견줄수 없을 것이다. 소나무는 강단있는 선비와 같은 고고함을 지녔다”고 했다. -생태연못 ‘태진지’, 사계절 다양한 수생식물 볼 수 있어 삼릉에서 나와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 있는 입구쪽에서 포석정 가는 오솔길을 한참 걷자 ‘태진지’라는 생태연못이 나타났다. 이곳은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경주 시민들도 찾아 휴식하는 곳이다. 이 작은 연못에는 부들, 구상나무, 산철쭉, 꽃창포, 털부처꽃, 남개연(개외연꽃), 왕원추리, 부레옥잠화, 제비붓꽃, 세모고랭이 등 수생 생물들이 다양하게 자란다. 특히 개외연꽃은 노란 작은 꽃이 피는데 이곳에 개체수가 많아 인기몰이를 한다고. 이곳 식물군은 5월 이후부터 개화를 시작해 가을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사계절에 따라 다른 자연의 생태를 함께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연못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가 데크로 조성돼 있었다. 연못 저멀리 지마왕릉이 보였다. 삼불사에서 태진지로 이어지는 오솔길 어귀에는 소나무의 생장을 방해하는 등나무가 소나무를 휘감고 있는 상황이 심각했다. 이 지역 등나무 개체수가 특히 많았다. ‘태진지’를 살짝 돌면서 작은 과수원을 만났는데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를 볼 수 있었다. 15년 정도 자란 탱자꽃도 뽀얀 꽃망울을 막 틔우려 하고 있었다. 탱자길 옆으로 지마왕릉이 이어졌고 포석정 앞에서 남간 마을로 이어졌다. -곳곳에 신라 유물과 유적 남아있는 남간 마을 따라 농촌자연 생태군도 한 눈에 남간 마을에 도착했다. 남간 마을(월남마을)은 경주 남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곳곳에 신라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는 마을이다. 신라 육부촌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양산재를 비롯해 나정, 남간사지 당간지주, 창림사지, 일성왕릉 등이 남아있는 유서깊은 마을이다. 마을에는 벌써 못자리판을 위해 물을 대놓는 논도 보였다. 보리밭에는 연한 순들이 남실거리기도 했고 왜가리 한 쌍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다. 연한 쑥과 냉이를 비롯해 녹색의 풀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마을 보호수인 당수나무도 볼 수 있었다. 당수나무는 회화나무였는데 매년 정월 열흘에 동제를 지낸다고 하며 아직 금줄이 쳐져 있었다. 당수나무 아래 붉은 황토흙이 흩어져 있었는데 이는 악귀를 쫓는 주술적 의미라고 했다. 이 마을을 지나면 포석정과 이어지는데, 이 들길을 따라 걸으면 들 한 복판에 있는 남간사지 당간지주와 창림사지 등 다양한 문화유산 이외에도 농촌의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들길을 걸으며 자연 생태군을 자연스레 살펴 볼 수 있는 것.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 최 교수는 “최근, 문화유산 위주의 관광에서 생태관광으로 옮겨가는 추세이고 문화유산은 고정돼있는 자원이지만 생태자원은 살아 움직이고 계절마다 변화가 있는 살아있는 유기적 자원이다.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증폭시키는 장치”라며 “문화재와 함께 향토성과 역사성을 지니며 자리를 지켜온 보전가치가 있는 자연경관 자원들은 현황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자연경관 자원들은 살아있는 자연유산으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음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자연관광·녹색관광·농촌관광이라고 불리는 자연생태자원에 기반을 두는 생태관광이 각광 받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앞으로의 관광패턴일 것이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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