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易經) 계사상전(繫辭上傳)에 ‘이인동심기리단금(二人同心其利斷金)’이라는 구절이 있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예리함이 쇠라도 끊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합심하면 안 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금장대 부근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임신서기석과 그 탁본.
일찍이 신라 때 두 젊은이가 이와 같은 맹세를 한 유물이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 바로 그것인데 보물 제14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현재 계림초등학교의 전신인 경주보통학교 교장으로 경주 고적보존회* 회장을 지낸 오사까긴따로(大阪金太郞)가 이곳 금장대 부근에서 글씨가 음각된 돌을 수습했다. 이 돌의 길이는 약 30㎝, 너비는 윗부분이 12.5㎝이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돌의 첫머리에 ‘임신’이라는 간지가 새겨져 있고, 또한 내용 중에 충성을 서약하는 글귀가 있어 ‘임신서기석’이라 불리어지게 된 돌이다. 비문은 구획선 없이 5행 74자를 새겼다.
“壬申年六月十六日二人幷誓記天前誓今自(임신년6월16일2인병서기천전서금자)
三年以後忠道執持過失无誓若此事失(3년이후충도집지과실무서약차사실)
天大罪得誓若國不安大亂世可容 (천대죄득서약국불안대란세가용)
行誓之又別先辛未年七月卄二日大誓(행서지우별선신미년7월22일대서)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시상서례전륜득서3년)”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다음과 같이 다짐을 하고 하늘에 서약한다. 지금부터 3년 동안 충성의 도를 굳게 지녀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를 어기면 하늘에 대해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만일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크게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모름지기 다짐한 바를 반드시 실천할 것을 굳게 서약한다. 또한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다짐한 시경·상서·예기·좌전을 3년 내에 모두 익힐 것을 또한 맹세한다.
여기에 보이는 임신년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그 내용이 화랑도의 기본정신에 따른 충도(忠道)의 실천을 서약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화랑도가 번창하던 552년, 또는 612년으로 추정된다. 학자에 따라서는 내용 중에 시경·상서·예기 등 신라 국학의 주요한 교과목의 습득을 맹세한 점으로 미루어 국학이 설치된 이후 체제를 갖춘 682년(신문왕 2) 이후의 어느 임신년, 아마도 732년(성덕왕 31)일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신라의 젊은이들이 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실천하고자 하는 바를 돌에 새겨 꿈을 이루고자 했던 이런 사실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이리라.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있다. 굳게 다짐한 일이 겨우 사흘을 넘기지 못하는 세태를 꼬집는 말이다. 우리 모두 옛 신라의 이 두 젊은이들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신라 문화유산의 보존을 명분으로 설립된 조선총독부의 관변 단체로 조선시대 경주부 관아의 내아 건물 등을 이용해 신라 문화재들을 전시하는 진열관을 지난 1913년에 만들었다. 이 진열관이 경주 최초의 ‘박물관’이며 경주시 동부동에 있는 현 경주문화원이 바로 그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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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