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딛고 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Edison, Thomas, 1847~1931), 그는 곧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도대체 어떻게 미국 전역에 이 멋진 전구를 보급하지?’ 오랜 생각 끝에 일단 발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하지만 그 당시 발전기라 하면 너무 비싸 보통 사람들은 엄두를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또 머리를 감싸 안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그의 머리에 스친 것은 생뚱맞게도 나이아가라 폭포였다. ‘그래, 폭포의 엄청난 물이라면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을 거다’ 폭포를 이용한 수력발전에 생각이 닿았다. 그럼 일이 다 끝났냐고? 아니다. 나이아가라 급의 댐 건설이라는 새로운 미션이 생겼다. 조그마한 전구에서 시작된 일이 댐 건설로 이어진다. 댐이라는 거대 국가사업에는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많았다. 그 중 폭포에서 떨어지는 엄청난 물의 압력은 희망이자 동시에 고통이었다. 수압이 너무 세기에 웬만한 댐은 견뎌내질 못 하는 것이다. 에디슨은 그래서 또 생각해야 했다. 댐을 만들기 위해서 일반 시멘트를 뛰어넘는 엄청 강한 놈을 만들어야 했다. 결국 그는 무기화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강화시멘트를 개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거대한 폭포에서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뽑아내기 위한 거대 공사에는 몇 년씩 매달려 일할,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필요했다. 이들이 먹고 쉴 숙소는 물론이다. 또 에디슨은 연구했다. 유기화학과 건축학을 연구하여 베니어판을 이용한 간이공법의 개발은 필연이었다. 이런 눈물 나게 힘든 과정을 거쳐 드디어 댐이 완성되었다. 이제 제일 먼저 발명한 전구의 불을 밝힐 차례라고? 어림도 없다. 왜냐, 댐을 이용하여 전력을 얻는다 하더라도 송전(送電)을 하려면 도선절연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디슨이 식물학을 연구해야만 할 이유다. 그 과정에서 브라질에서 수입한 고무나무로 절연체를 만들고야 만다. 그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당시 미합중국 대통령인 후버 대통령에게 강화시멘트를 활용한 고속도로망 구축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전구 하나 밝히려고 고속도로까지 깐 장본인이 바로 에디슨이다. 자신이 발명한 전구를 온 세상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발전기에다, 강화시멘트, 베니어판, 절연체, 그리고 고속도로까지 연이어 만들어낸 토마스 에디슨, 과연 그는 직업란에 발명가로 적어 넣어야 할까?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아이디오(IDEO)의 CEO 팀 브라운은 이렇게 말한다. “에디슨의 천재성은 단순히 전구를 발명한 것이 아니다. 전구를 유용하게 해주는 전력 생산과 공급시스템을 함께 개발하여 완벽하게 새로운 시장을 만든 데 있다.” 이것은 사용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또 무엇을 선호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에디슨은 손톱만한 전구를 발명했고, 거기에 불을 밝혔으며, 그 빛은 전 지구를 비추었다. 전구도 만들고 도로도 깔아야만 할 정도로 개발의 여지가 있었던 시절이라 말해도 좋다. 사실 흥분할 일은 아니다. 그가 아니더라도 에디슨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여기서 환기하고 싶은 것은 전구, 그 밑의 발전기, 그 밑의 댐 식의 ‘인프라(infra-structure:기반)’와 에디슨의 ‘완성에 대한 집중력’이 만나 인류에 큰 차이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사다리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높이 올라가려면 땅에 닿는 밑의 지지대를 더 넓게 펴야 한다. 에디슨은 전구 하나로 이 사실을 담담하게 밝히고 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