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작업’을 마치고, 오는 8일 서울 전시를 앞두고 있는 정미연 화백(소화데레사, 62)의 남산 아래 배동 작업실은 언제나처럼 성령과 함께 신라 선대의 영험한 기상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의 중심축에 하느님의 사랑이 있다는 큰 메시지를 전했다. 성화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그는 정점의 궤도를 순항하고 있었다.
정미연 화백의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 2016’ 전이 오는 8일~18일까지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지난해 1년 동안 주일마다 ‘서울 주보’ 1면 표지화를 그리고 동시에 ‘그림으로 읽는 복음’도 평화신문에 연재했던 작품 100여 점과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을 주제로 한 작품들, 바오로 사도의 자취를 밟은 작품들, 십자가와 예수님의 수난을 형상화한 14처(處) 등 작품 200여 점을 출품한다.
이번 전시는 국내외 순회전시로 이어진다. 서울 전시를 필두로 경주예술의전당 라우갤러리(4월 22일~5월 6일),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5월 13일~6월 11일), 해운대 오션갤러리(9월 22일~10월 6일)로 이어지는 것.
특히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 전시에 정 화백은 또 다른 기대감을 나타냈다. 전시에 맞춰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으뜸사랑)’도 펴냈다. 출판 기념회는 전시 첫 날 함께 열린다. 전시를 앞두고 전력을 다했지만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그를 만났다. 한국적 성화 구현을 위해 신라인의 정기를 융합한 성령 가득한 축복스런 작품을 감상하며 위안을 얻고 싶은 자여, 절로 미소가 번지리라.
-한국적 성화 구현... 한국적 예수, 한국적 성인, 민화와 함께 성모 표현
신작들은 주로 오틸리엔수도원전을 겨냥해서 그린 작품들이다. 우리 것인데도 현대적인 것으로의 전환을 위해 한지로 십자가를 만든다던지, 한국적이고 동화적인 천사를 표현하는 식의 실험적 요소도 많다.
예수님 일대기를 현대화하고 토착화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을 배경으로 한 최후의 만찬, 에밀레종 비천문양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예수 등으로 이미 신라적 요소를 구현한 바 있는 그는 이번 전시에서는 고려시대 복장의 예수를 등장시키고 석가의 십대 제자에 예수의 열두 제자를 오버랩 시키는 등 한국적 성화를 드러내는데 더 정성을 들였다.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과 ‘사도 바오로의 길’ 등에서는 하나의 대작으로, 혹은 여러 개의 각각의 작품으로 나눠지기도 하는 독특한 구성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 전시를 기획하면서 가장 첫 번째 그린 ‘예수님’과 ‘성모님’ 두 작품은 성화를 그리면서 ‘거룩한’ 체험을 하기는 처음인 작품이었다. 성모상에도 한국적인 문양을 가미했다. 예수님의 옷을 한 올 한 올 짜드렸다. 우리 고려시대 의상을 모던한 선으로 표현했고 가장 중요한 얼굴을 그리는 순간 심혈을 기울였다. 위안을 주는 눈빛과 미소를 표현하려 애쓰며 기도를 하고 간절히 염원했다. 손이 가는대로, 그러나 ‘내가 그린 것이 아닌’ 작업이었다. 그래선지 얼마간은 흡족하다”고 했다.
정 화백은 “한 해 전례시기에 따른 복음 내용을 그림으로 읽는 기회이기도 하다. 새롭게 피정하는 기분으로 주님과 만났으면 한다. 인쇄물에서 만나지 못한 ‘원그림’의 느낌도 체험해 보면 좋겠다” 고 전했다.
-“성화 작업, 내게는 불가항력적인 일”
“미술계에서는 성화를 그린다고 하면 한 쪽으로 밀어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작가들은 거의 이 분야를 잘 건드리지 않는다. 외도로, 성화를 그리는 경우는 있지만”
성화에 주력하는 그가 얼마든지 모던한 작업을 할 수 있고 ‘히트’ 할 만한 작업을 할 수 도 있다는 화단의 평에 대해 “내게는 성화 작업들이 불가항력적인 일이다. 극적인 어떤 큰 힘에 이끌리는 작업인 것 같다. 기도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목적이고 삶의 중심축이다. 그렇지 않은 일은 기쁘지 않은데 어쩌라고. 그것이 열일을 제껴두고 성화 작업을 하는 근간이다”고 한다.
그래서 성화 작업에 있어, 곰삭은 자신만의 감성을 풍부히하고 한국적 요소를 적절하게 배합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민화작업은 그런 한 방편이기도 하다.
“가슴에 와 닿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눈물이 뚝뚝, 소름이 돋게 그리는 것이다. 슬픔이 있는 이들에게는 더욱 슬프게 다가가 그 슬픔을 이겨내게하고 사랑에 있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 이상의 것을 표현해서 더욱 사랑하게 하고 싶다”고 성화의 역할을 염원하며 그린다.
경주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던 그가 배동 작업장으로 내려와 작업에 몰두하던 중 발목을 다친 일이 있었다.
“통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그림 그릴 때 ‘겸손’을 깨닫게 해주셨다. 육신의 불편을 통해 ‘낮아지고 작아지라’는 겸손을 배웠다”고 했다. 더욱 진하게 아픔과 고통을 절감하며 작품에 임할 수 있었다. ‘고통이 아니라 축복’의 순간이었던 것.
“작품의 주제 자체가 워낙 방대하고 표현해야하는 부분도 무척 많았다. 참으로 힘든 1년이었다”고 했다. 전시 준비 막바지 작품을 완성하고는 “쌓아둔 작품 100여 점이 펼쳐지자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기쁨의 눈물이자 회한이 서린 감사의 체험이었다. 한 작품, 한 작품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고 말했다.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묵상 그림집으로 성과 속 넘나들면서 그간 집필한 글
성화를 그려온 기쁨의 세월을 작품과 함께 글로 엮은 새 책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 에서 정 화백은 “보잘것없는 인간의 시간 위에 하느님의 시간이 포개어지는 순간, 삶은 신비로 가득하다”고 설명했다.
서문에서는 “태곳적 인간에게 주신 땅의 웅위함 위에 시간을 주재하시는 창조주를 오마주 처리했고 하느님을 둘러싼 무한한 우주의 상징을 금분으로 한 점 한 점 정성껏 찍었다”고 했다.
이 책은 신앙 단상과 함께 실크로드와 아프리카, 인도를 다녀오며 엮은 산문과 작품이 실렸다. 회화뿐 아니라 십자가를 조각한 작품이야기, 명상을 한 이야기, 진한 삶의 이야기도 녹아 있다. 성과 속을 넘나들면서 그간 집필한 글을 실은 것.
‘그의 글은 그의 그림에 울림을 더해주고 그의 그림은 그의 글에 빛을 더해 준다’는 이주헌 미술평론가의 평처럼 명상록과 같은 그의 글은 쉬이 읽히다가도 호흡을 가다듬게하는 서늘한 긴장을 준다. 그리곤 치유라는 울림으로 평온케한다. 그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글과 작품을 통해 대신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외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 전시를 열기까지
작품에 몰입하던 와중, 남편인 박대성 화백의 뉴욕 전람회, 경주 첫 공립미술관인 솔거미술관 개관 등의 거사들이 이어졌다. 지난해 솔거미술관 개관 당시, 독일 갤러리의 요청으로 갑작스레 전시회를 가졌다.
성화와 함께 민화를 선보였는데 체화된 동양적 영감 없이는 탄생하기 어려운 수작들로 독일인을 매료시켜버린다. 오틸리엔 수도원 신부가 전람회를 보고 큰 감화를 받았고 그 인연으로 수도원에서의 전시를 요청받게 됐다고 한다.
“이 전시는 그간 열심히 작업한 것에 대한 천주님이 주시는 보너스로 생각해요” 유서깊은 오틸리엔 수도원전에 대한 화백의 감사와 기대는 컸다.
-정미연 화백은
1995년 서울 세검정성당의 기공 기념전으로 첫 작품전을 가졌다. 1997년 Art Student of League 수학(뉴욕), 이후 충주 연수동성당의 14처, 세계평화미술전(예술의 전당), 예수 수난 2인전을 가졌고 성당 14처 감실 성모상 등을 제작했으며 신달자 시인과 함께 예수님의 일생을 45점의 그림에 담은 묵주기도서 ‘성모님의 뜻에 나를 바치는 묵주의 9일기도’, 묵상 그림집 ‘내가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그리스 수도원 화첩 기행’, ‘이육사 탄생 110주년 기념 시화집’ 등을 출판했다. 2014년엔 실크로드·인도 여행의 경험을 정리한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이란 주제의 전시회를 가진 바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내게 있어 앞으로의 계획은 있을 수 없다. 이끄시는대로 모든 걸 맡길 뿐이다”라고 말하는 정 화백과 인터뷰 하면서 기자는 힘이 쭈욱 빠졌다. 그의 기운을 미처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손을 유심히 봤다. 야윈 손은 흔한 네일아트는 고사하고 손톱은 닳아서 뭉특하고 물감의 때가 거무스레 배여 있었다. 치열하게 작업하는 화가 정미연의 손이었다. 성화 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와의 인터뷰를 지면에 자세하게 소개하는 것은 자칫 종교색을 짙게 반영할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
그러나 보편타당한 ‘감동’과 ‘위안’이라는 진리를 소개하고 싶었다. 때로는 호쾌하게 웃어재끼며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도, 팽팽하게 긴장하며 서늘하게 스며들기는 화선지 같은 ‘여자’였다. 감정 이입이 잘 된다는 그는 명상프로그램인 담마 체험시에도 몰입해 무아의 경지에 이르기도 했다고. 작품에 있어서는 철저한 완벽주의자. 배동 작업실에서 아직 물감 냄새도 가시지 않은 원화를 감상하는 것은 ‘영광’이었다.
작업실 가득 한 작품씩 펼쳐 일일이 환희와 힘들었던 순간들을 교차시키며 되뇌이는 그는 처연했다. 그의 대작 앞에선 잠시 호흡이 멈춘다. 실제화된 자기 방어기제로서의 평화였을까. 정 화백은 이미 수호 천사였다.
그의 작품을 보고 말을 나눴을뿐인데 수호천사가 기자를 지켜주는 것 같았으니까. 인터뷰는 네 다섯 시간 이어졌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의 사랑스런 천진함에 함몰됐다. 작가와의 내밀한 교류는 더없이 행복했다. 기자의 우문에도 사랑으로 열심히 인터뷰에 응해준 선생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