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중 뜻밖의 유물이 출토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대릉원 근처 계림로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발견된 황금보검이다. 이 보검의 재질과 형태는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런 유물이 아니었다.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흑해 연안이나 중앙아시아 어느 지역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1980년 복원된 금장대 부근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과는 전혀 다른 문양이 조각된 석상이 발견됐다. 가운데에는 탁자 위에 뚜껑 덮인 그릇이 놓여 있고, 그 주변으로 상반신이 사람 형상을 한 가릉빈가(迦陵頻伽)와 함께, 그릇을 향해 합장하는 천인(天人) 열 분이 좌우대칭으로 묘사돼 있다. 가릉빈가는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한 상상 속의 새로 그 자태가 매우 아름답고 소리도 묘해 한 번 지저귀면 극락정토에 깃들인 듯하다고 하여 극락조라고도 한다. 그 위로는 여의두문(如意頭紋)과 꽃무늬로 장식하고 있다.
여의(如意)란 고승이 설법이나 법회 등을 할 때 손에 들어 권위를 상징하는 의식 용구로서, 그 머리 장식의 모양과 유사한 무늬를 여의두문이라고 한다. 원형이 확실치 않으나 구름 또는 꽃잎의 변형으로 여겨지며 테두리 문양에 자주 쓰인다.
이 장면의 주제는 대개 가운데에 놓인 그릇을 불사리기(佛舍利器)로 보아 사리를 공양하는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를 사리공양석상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릇을 향로로 간주해 향로공양 장면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이후 2011년 계림문화재연구원이 실시한 금장대 발굴조사에서 또 다른 사리공양석상 1점과 거북문양석상 1점이 조선시대 건물터의 주춧돌 자리에서 출토됐다. 이때 발굴된 사리공양석상은 이전에 발견된 문양과 비슷하고 다만 기둥 윗부분의 파손 정도에 차이가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비석의 받침돌로 귀부(龜趺)는 흔하나 거북문양석상은 아직까지 비슷한 예가 발견되지 않은 독특한 형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물결 위에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거북을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는데, 물결이 구름 문양이라는 견해도 있다. 거북 머리 윗부분의 일부가 파손됐으나, 목 뒤에 달린 불꽃을 내는 보주와 양 발이 특히 생동감 있게 표현됐다.
이 3점의 석상은 도상(圖像)과 구조도 흥미롭지만 통일신라 8~9세기 부조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사리공양석상의 경우 현재 거의 전하지 않는 통일신라 회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 석상의 출현으로 금장대에 통일신라의 사찰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 사찰이 문헌상의 기록은 찾을 수 없으나 구전으로 알려진 금장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사찰의 법등이 끊어지고 그곳의 초석과 터를 이용하여 정자를 건립한 후 금장대라고 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상들의 통일신라 제작 당시 용도에 대해서는 목탑의 중심기둥을 세웠던 받침대로 추정하기도 한다. 윗부분이 파손되어 본래의 기능은 알 수 없지만 어디엔가 끼워 짜맞추는 구조물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고는 있지만 이와 같은 양식의 유물이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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