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해(55)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가 인솔한 경주시평생학습센터 야생화 답사반 30여 명 회원과 건천읍 모량리 삼봉산 야생화 탐방을 다녀왔다. 지난 21일은 춘분을 하루 지난 날이선지 황량하기만했던 이른 봄의 산야에는 떡버들 등에 물이 오르고 있었다. 삼봉산에는 개암나무도 지천이었다. 탐방객 중 누군가는 ‘봄에는 몸살 날 겨를도 없이 자연에 유혹된다’고 했다. 갖가지 풀들과 나무에 대해 해설하는 백승해 교수의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회원들의 표정에도 이미 봄이 와 있었다. 겨우내 헐벗은 산 여기저기에는 눈에 잘 뜨지 않을 만큼 작은 꽃들이 바위 틈에서, 혹은 길 섶에서 꽃 봉우리를 내밀고 있었다. 작을수록 강인한가? 그것도 보호색일까. 어떤 개체의 생명보다 그 작은 미물들이 먼저 봄을 알리고 있었다. 청량한 3월의 햇살은 맑고 싱그러웠고 과연 야생화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금새 기우로 끝났다. 한참 걷다가 만난 분홍색 노루귀와 뽀얀 바람꽃이 천연덕스러웠으며 산수유와 거의 흡사한 생강나무는 연두빛을 살짝 띄고 있어 더욱 선명했다. 백 교수는 경주의 야생화 자생지는 개체의 보존을 위해 구체적인 위치를 발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굴취나 훼손에의 우려 때문이란다. 건천출생으로 유년부터 자연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과 애정이 있었다는 백 교수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생명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너무 좋았다는 그에게서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사랑과 나아가 대자연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소홀하게 여겼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찌든 삶속에서 만나는 작은 위안과도 같은 기쁨 주는 존재 진분홍 참꽃도 화들짝 건조한 산색에 홍조를 보태고 있었고 둥근털제비꽃, 바람꽃, 노루귀, 현호색 등 깨알같이 자잘한 야생화들은 별빛같이 앙증맞았다. 현호색의 청보라 빛은 채도가 다양했는데, 영양상태에 따라 꽃들의 색도 달라진다고 하니 사람의 안색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꽃은 잎이 갈라진 것도 있고 그렇지않은 것도 있었는데 이는 자연 상태에서의 잎의 변이라고 했다. 관상 가치가 높은 희귀식물 중 하나인 가침박달도 20여일 개화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한 회원은 “야생화의 매력은 돌봄도 전혀 없이 주어진 자연 환경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피워 내는 것이다. 산 기슭이나 높은 고도 등 자신의 자리에서 꽃이 피고지는 것에서 경외감도 느낀다” “야생화들은 다른 풀들과 잎들이 무성해지기 전 서둘러 꽃을 피워댄다. 겨우내 움츠러진 산야의 낙엽들 속에 뾰족하게 나온 생명의 신비를 통해 기운를 얻는다. 찌든 삶속에서 만나는 작은 위안과도 같은 기쁨을 주는 존재”라고 했다. -“경주가 야생화 자생지로는 좋은 조건 가지고 있는 셈, 그러나 경주에서만 자라는 개체는 거의 없어” 백 교수는 “탐방지는 매주 바뀐다. 답사를 한 것은 12~3년 정도다. 혼자서 골짜기를 찾아 다닌 것은 35세부터다. 인근의 경주 울산, 포항 지역은 섭렵했다. 산을 찾아 다니다가 차가 빠져서 긴급출동을 부른 것은 보험가입의 한계를 넘어 아내의 한도까지 다 사용할 정도였다(웃음). 그 세월이 벌써 20년 넘었다. 골짜기만 있으면 들어갔을 정도다. 특히 경주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하게 알고 있다” “경주가 야생화 자생지로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경주는 영천, 포항 위도권이 골고루 분포하고 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만나는 토함산, 함월산 골짜기에서 자라는 야생화가 있고 단석산,오봉산 골짜기 등에는 여름에도 서늘한 추운 기온으로 북방한계 식물 등이 산재한다. 단석산의 만주바람꽃은 백두산 천지에서 본 꽃이다. 그만큼 단석산은 겨울이 춥고 여름도 서늘하다는 것이다”고 했다. 이로써 경주는 다양한 야생화들이 자생하는 환경이 되는 것. 즉, 해양성과 내륙성이 공존하는 것이다. 울릉도, 제주도, 홍도 등지는 그 지역에서만 자라는 식물군이 있겠지만 경주에서만 자라는 개체는 거의 없다고 한다. “경주에서 보기 어려운 것은 주로 멸종 위기 종들이다. 이 종들을 보려면 적어도 심산유곡으로 들어가야 한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곳에 희귀식물들이 있다. 복주머니난, 애기송이풀, 만주바람꽃, 변산바람꽃 등은 상당한 발품을 팔아야 볼 수 있다” -‘복주머니난’이나 ‘애기송이풀’ 등은 경주에서도 자생하나 매우 희귀종 경주라는 지역이 도서 지방도 아니고 고도도 높지 않고 기후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특별한 환경은 아니다. 그러나 희귀성을 가진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1,2급으로 나눠 80~90종에 대해 관리해왔다. 멸종 위기나 멸종 위기에 근접한 종인 법정보호종 중 1급 종은 경주에 거의 없고 2급 종은 경주에도 5월경 피는 ‘복주머니난’이나 4월 중순경부터 볼 수 있는 ‘애기송이풀’ 등이 있다고 한다. 이들 종이 있기는 하지만 매우 희귀하다. 백 교수는 “전문적인 탐사를 다니는 나도 일 년에 한 두 번 볼까말까 하다. 주로 봄의 한창 때인 4~5월이 가장 많다. 이 넓은 경주에서 ‘복주머니난’의 경우는 5개체(5포기) 뿐일 정도다. 애기송이풀은 이보다는 좀 더 많이 볼 수 있다”고 했다. 그 외 ‘노랑무늬붓꽃’ 경우는 다른 지역에는 잘 보이지 않는데 의외로 경주에서는 자주 눈에 띄는 종이라고 한다. 이 꽃은 북방계 식물인데 남방한계가 경주로 추정되는 꽃이라고. -산에서 캐오는 순간 야생화는 아니다 “4500여 종의 식물 중에서 1700여 종의 목본 식물과 2700여 종의 초본 식물이 있다. 그 중 경주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대략 절반은 되지 않고 3분의 1은 좀 넘는 정도로 본다. 그 중 사람의 관심을 끌면서 귀하고 예뻐서 그 꽃을 찾아 산을 찾을만한 종을 흔히 ‘야생화’라 부른다면 목본류를 합해서 300여 종 정도라고 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사실은 야생화 아닌 것이 없다. 식물은 자신의 환경에서 자라야 그 크기와 색깔, 성질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했다. 경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희귀 야생화는 북방계식물인 참좁쌀풀, 우리나라 영남권 특산 식물이면서 경남북 경계산지에서 자라는 종인 꼬리말발도리, 저수지나 논에서 자라는 수생식물인 매화마름 등이다. 한편, 경주국립공원에서 멸종위기종을 포함해 휘귀이며 보호가치가 있는 특정 관심종으로 지정한 23종 정도를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깊은 골에 희귀한 식물이 많다. 다행히 경주의 깊은 산은 대부분 국립공원 구역이다. 경주의 희귀식물 90%는 국립공원 안에 있다. 국립공원 탑방로 몇 개 구간은 열어두고 있으므로 이 탐방로만 따라가도 어지간한 야생화는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경주국립공원 관계자는 시부거리 탐방로쪽이 야생화 여러종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시부거리는 계곡과 함께 4월 중순경에는 큰 앵초 군락이 탐방로 옆에, 노랑무늬붓꽃 등을 볼 수 있다고. 현곡 구미산 쪽에는 참작약과 노랑무늬붓꽃 등을 오는 6월경까지 즐길 수 있다. 탐방 제한은 없고 탐방로는 상시 열려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모든 식물은 구매를 할 수 있어, 눈치 보면서 몰래 캐지 말아야 식물종이 줄어드는 가장 큰 원인은 사람이다. 멸종 위기식물 중 가시연꽃 등 수생식물도 상당하다. 이는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는 시점인 30~40여 년 전부터 굴취를 해가는 것에 기인한다. 백 교수는 “무분별한 개발사업, 자연 환경의 변화도 원인이다. 야생화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가장 원론적으로는 사람이 그들과 같이 살기 위해 보호해야하는 것에 기인한다. 예쁜 꽃을 기르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있다. 꽃이 피어 있을때는 출산을 앞 둔 만삭의 임산부와 같다. 가장 영양을 많이 필요로 하고 안정을 요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 때 억지로 캐서 심더라도 바로 죽어 버린다”고 했다. “우리나라 모든 식물은 구매를 할 수 있다. 귀한 종의 야생화도 포트로 집까지 배달되고 있다. 이것이 눈치 보면서 몰래 캐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멸종위기 종도 분양 시 확인서만 쓰면 재배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야생화 보존 노력들 민간단체의 노력 이외에도 국가적으로 천재지변 등으로 멸종위기종이 사라질 경우를 대비해 전국의 식물원에서 미리 식물의 종자를 받아서 증식을 하고 있다. 포항의 기청산 식물원이 인근의 예다. 또 종자를 비롯해 미세한 포자까지 질소충전해 밀봉상태로 보관해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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