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나고,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여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그렇게 인간은 죽음이라는 최후를 맞이하면서도 종 전체의 유지는 가능해진다. 물론 다른 생명체의 멸종이라는 비극을 지구는 수도 없이 지켜보았고, 우리도 상상력 속 종말에 관한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간접 경험 해보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지구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인류는 전체인구의 50% 이상이 갑작스레 사망하는 혹독한 시련은 겪어보지 못한 채 생존과 번창을 이어오고 있다.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인류가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두 가지 기본적 본능 중에 성욕이 들어가는 것도 종족 번식의 본능, 더 나아가 인류의 존속이라는 대전제를 만족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본능임에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되면 사실 산모는 뱃속의 태아를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양보한다. 한 개체 입장에서 보면 본래 혼자서만 살아왔는데, 갑자기 몸 안에 다른 생명이 생겨버린 크나큰 사건인 셈이다. 처음에는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난자하나 정도의 크기(0.1mm정도)에 불과했던 것이 무려 40주안에 100조배 이상 커져버려 만삭의 산모는 뱃속의 태아 때문에 뛰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호흡도 마음껏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정도다. 기적이라고 표현해도 충분하다. 이 기간 동안 산모의 몸은 본인보다는 태아를 항상 우선적으로 다룬다. 산모와 태아 엄연히 두 개체가 한 몸으로 붙어있는 상황에서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필요한 물질은 우선적으로 산모보다는 태아에게도 간다. 태아에게 모자라는 영양은 산모 신체에게서 빼앗아간다. 하루에도 점점 커져가는 태아는 엄청난 혈액량이 필요하고 수분과 헤모글로빈 등을 태아에게로 줘버린 산모가 빈혈을 느끼는 상황이나, 태아의 골격형성에 무제한적으로 투입되는 칼슘을 산모가 충분히 섭취해 주지 않으면 산모의 칼슘은 태아에게로 옮겨가기에 임신중이거나 분만후 산모의 치아가 흔들거리거나 저절로 빠지는 모습은 주변에서도 흔히 관찰되기도 하다. ‘산모 입장에서 태아는 기생충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태아는 산모의 많은 것들을 빼앗아간다. 분만 후 첫 돌이 될 때까지 아기는 큰 병치레 없이 잘 큰다. 산모가 가진 항체 IgG가 아기에게도 전달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산모는 태아를 위해 진정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그래서일까? 분만이라는 커다란 이벤트를 겪은 후에는 본인의 면역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분만이라는 과정은 대체 뭘까? 따뜻하고 안전한 엄마의 자궁 속에 비해서 바깥세상은 두려움과 온갖 위험 일변도다. 임신기간은 40주 10달에 육박하지만 분만은 기껏해 봐야 하루다. 그렇게 온갖 정성으로 고이고이 키워온 태아를 단 하루 만에 바깥으로 쫓아내는 이유는 뭘까? 세상이 힘들다는 것을 이미 온몸으로 잘 알고 있는 산모는 태아를 왜 그 위험천만한 바깥으로 밀어내는 걸까? 어떤 메카니즘으로 분만이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는 현대의학도 잘 모른다. 아직도 정확한 분만시간 예측은 불가능하고, 임신 확진을 받았을 때 계산하는 출산 예정일조차 마지막 생리 월일에 일괄적으로 간단한 더하기 빼기를 몇 번 한 작업에 불과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분만은 태아를 한 몸으로 보지 않고 외부 이물질로 인식하여 체외로 밀어내듯 배출해 버린다는 이론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간도 쓸개도 다 빼줄 듯 고이고이 키웠지만 때가 되었기에 아예 타인으로 여기고 등 돌리는 과정이 분만이라는 것이다. 허무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을까? 극과 극은 인류전체의 존속이라는 크나큰 과제 속에서도 역시 통하나 보다. 김민섭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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