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주에는 마을마다 전해오는 수많은 옛이야기가 있고, 조상들이 남긴 문화재가 셀 수 없이 많다. 지금까지 이와 같은 문화재나 향토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대해서 낡은 것,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이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가장 지역적이고 향토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들 한다.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팟 등을 만든 스티브 잡스는 그와 같은 제품을 만든 배경이 인문학이라고 했다. 인문학이란 문사철(文史哲) 즉 문학과 역사, 철학을 의미한다. 향토의 문화유산은 이런 인문학의 뿌리가 된다. 또 경쟁력 있는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문화콘텐츠가 되고 고품격·명품 관광자원으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를 창출하고 있다./필자 주
경주 구석구석 골짜기마다 옛 사람들의 자취가 없는 곳이 없다. 비록 송화산(松花山)은 옛 신라의 사령지(四靈地)도 아니고 오악(五嶽)과 삼신산(三神山)과도 관련이 없지만 예사롭지 않은 유적들이 더러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유적들로는 신라 삼기팔괴의 하나인 금장대, 그 아래에 있는 선사시대의 암각화, 삼국통일의 영웅 김유신 장군묘와 그 분의 위패를 봉안한 숭무전, 신라 최고의 조각가로 알려진 양지 스님이 주석한 석장사지 등이 있다. 그 외에도 금장사가 금장대 부근에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송화산에 대해서 『삼국유사』에 ‘백 가지 꽃이 화려하게 피고 송화(松花)가 골짜기 안 숲속에 가득했다. 골짜기 어귀에 암자를 짓고 이름을 송화방(松花房)이라 하여 전해온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었으리라. 안타깝게도 1996년 산불로 김유신장군 묘역 전체가 타 버린 적이 있지만 현재 어느 정도 복원되어 옛 모습을 거의 되찾아 송화산이란 이름에 걸맞게 되었다.
송화산의 한 봉우리인 옥녀봉은 경주 시민들이 즐겨 찾는 등산 코스의 하나이다. 또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 운동 기구가 설치되어 있어 건강관리를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안개가 짙은 날에 이 봉우리에 오르면 주위가 온통 안개로 덮여 흡사 절해고도에 서 있는 듯하다.
이 옥녀봉이란 이름의 산봉우리는 전국적으로 참 많다. 옥녀(玉女)는 옥(玉)과 같이 몸과 마음이 깨끗한 여자로 흔히 선경(仙境)에 있는 여자 즉 선녀(仙女)를 일컫는다. 빼어난 경치를 지닌 봉우리란 그 의미가 좋아 여기저기 옥녀봉이란 이름의 봉우리가 많이 생긴 것이리라.
그런데 필자는 이 옥녀봉에서 옥녀가 아닌 귀신을 조우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성건동에 거주할 때이다. 매일 새벽 4시 경 집을 나와 옥녀봉을 오르곤 했다. 그 시각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일어나 옥녀봉을 오르는데 앞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평소 걸음이 빠른 편이라 그 사람을 지나치다가 얼굴을 보고는 심장이 멎어버렸다. 코와 입이 없는 귀신이었다. 귀신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이렇게 귀신을 만날 줄이야!
그런데 귀신이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여자의 목소리이니 여자 귀신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겁에 질려 다시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요즈음은 그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당시에 얼굴 전체를 가리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던 터라 놀랄 수밖에. 그것도 밤중이었으니…. 그러고 보니 복장도 흔히 귀신이 입는다는 소복이 아니고 머리도 산발을 하지 않았다. 옥녀봉에서 본 것은 귀신이 아니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