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다 깜짝 놀라곤 한다. 분명 내 또래의 연예인인데 얼굴은 30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환갑을 넘은 나이인데도 피부는 거의 아가씨 급인 여배우도 있다. 도대체 늙질 않는다. TV가 배우의 땀샘 하나, 스튜디오의 먼지 한 점 조차 잡아내는 시대라서 얼굴 관리를 저리도 잘하는 것일까. 아무튼 부럽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동안(童顔)현상이 연예인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거다.
안티에이징 산업이 한창 뜨고 있다고 한다. 안티에이징(anti-aging)은 ‘나이를 거스르는’이란 뜻으로 보통 ‘노화방지’를 의미한다. 현재 약 12조원 정도의 시장규모로 성장률이 매년 10%이상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만약 진시황제가 다시 태어난다면 불로초(不老草)를 찾아 헤매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 보톡스만 잘 맞아도 젊은 황제 오빠로 행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티에이징 제품은 현대의 불로초나 마찬가지다.
예전에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 자체가 소망이었다. 그런데 의학기술의 혁명적인 발달은 사람들을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만들었다. 고령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게 된다. 건강한 장수에 더하여 ‘아름답게’ 사는 것으로 욕망의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이제 안티에이징은 아름다운 삶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고령화 사회의 경제력 있는 어르신들은 건강과 젊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외모 중시 경향도 한 몫 거든다. 이들에게 외모는 능력의 다른 표현이다. 여기에 각종 바이오 기술 혁신이 더해져 안티에이징 산업은 활황하고 있다. TV 밖에서도 연예인 같은 일반인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나이를 잊어버린 외모는 건강하고 세련되어 보인다. 하지만 영혼의 풍요로움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모는 껍데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안티에이징 산업에서도 정신건강의 노화방지 효과가 입증되면서 현대의학에 스파, 명상, 요가 등의 대체의학을 묶어 제공하는 웰니스(wellness) 서비스 사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와 예술의 감상도 정신건강에 명약이 될 수 있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교향곡이나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추상화는 이미 정평이 난 예술치유제이다. 굳이 유명한 음악가나 화가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예술적 표현을 음미하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 정도면 웰니스 서비스에 문화예술프로그램이 추가되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이처럼 문화와 예술의 ‘소비’를 통해 우리는 덜 늙을 수 있다. 색다른 볼거리와 편안한 소리는 무디어가는 감각들을 깨워 움직이게 만든다. 인간내면이 보다 젊어진다. 하지만 진정한 안티에이징은 문화와 예술의 소비와 ‘생산’을 통해 더 가능한 것 같다.
요셉 보이스(Joseph Beuys)가 말한 대로 인간은 누구나 예술가다. 그러나 제도화된 교육에, 끔찍한 생활고에 지쳐 우리는 예술적 본능을 잃어버렸다. 겨우 겨우 예술의 소비자가 될 뿐이었다.
필자는 올해 오십 줄에 들어섰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젠 본능에 충실한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그림을 그리든 악기를 만지든 춤을 추든 말이다. 몇 년 전에 꽃 중년 밴드를 꾸려 틈나는 대로 공연하는 내 친구들이 부럽다. 그들은 분명 늙어가는 기술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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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