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은 아직도 휘영청 밝은 달이 경주 하늘을 낮처럼 밝게 비추고 있다. 경주로 둥지를 튼 이후로 이곳저곳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달과 관련된 곳이 적지 않다. 신라의 옛 왕국인 월성(月城), 안압지의 본래 이름인 월지(月池), 최근 복원된 월정교(月淨橋), 그리고 기림사가 깃들어 있는 함월산(含月山) 등이 대표적이다. 정월대보름 세시풍속은 신라시대부터 시작됐다.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날 남산 기슭의 천천정(天泉亭, 지금의 서출지)으로 행차하였을 때 까마귀와 쥐가 나타나 울더니 쥐가 사람 말을 하며 까마귀의 가는 곳을 찾아가 보라고 하였다. 왕이 그 말대로 까마귀를 쫓아가던 중 한 노인이 나타나 편지를 주었는데 편지에는 ‘당장 궁전으로 돌아가서 내전 별방에 있는 거문고 집을 쏘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소지왕은 바로 궁전으로 가서 거문고 집에 대고 활을 쏘았더니 궁녀와 승려 두 사람이 쓰러지는데, 이들은 소지왕을 해치는 역모를 꾸미던 자들이었다고 한다. 이후로 왕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까마귀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매년 1월 15일을 까마귀 제삿날(烏忌日)로 정하고 약밥을 지어 제사를 지냈고 이 풍습이 오늘날 정월 대보름날 오곡밥을 지어 먹는 유래라고 한다. 지금도 매년 정월 보름이면 신라문화동인회가 경주문화원 앞마당에서 오곡, 오채, 오과로 오기일 고사를 지내고 있다. 어린 시절 새벽부터 오곡밥에다 잘 씹히지도 않는 묵은 나물반찬을 억지로 먹고 나면 어머님이 이웃집을 돌며 오곡밥을 얻어 오라고 바구니를 챙겨주신다. 우리 조상들은 대보름에는 다른 성씨를 가진 세 집 이상의 밥을 먹어야 그해 운이 좋아진다고 하여 이웃집에 오곡밥을 얻으러 다녔다. 바구니를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다 보면 친구들을 만나는데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내 더위, 니 더위”하고 소리치고는 귀를 닫고 후다닥 도망쳤다. 바로 더위팔기다. 나눔의 지혜로 이는 최소한 셋 씨족 이상과 화합하고 살아야 한다는 큰 의미가 담겨 있어 오늘날 혼밥족들에게도 이런 풍습이 이어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해가 어스름해지면 본격적으로 정월대보름 행사가 시작된다. 달집 태우는 어른들 틈에 끼어 아이들은 철사줄로 깡통을 매달아 그 안에 솔방울이나 광솔을 넣고 들녘으로 나아가 쥐불놀이를 했다. 집에 돌아와 보면 깔깔이 잠바는 구멍이 숭숭 나있고, 얼굴은 굴뚝 청소를 하고 나온 강아지 마냥 새까맣고 한쪽 눈썹과 머리카락은 고스라져 있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형산강 위에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빛을 벗 삼아 신라의 달밤 야경투어를 즐긴다. 신라의 왕들이 누워 있는 노서동 고분과 대릉원을 걷는 동안은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선조들과 담론을 하고 월정교, 월지, 월성에서는 과거 역사를 되새겨 본다. 그러다 첨성대 앞에 서면 천문대의 관측사가 된 기분으로 하늘에서 쏟아질 듯한 별빛을 가슴에 담아 본다. 달집태우기 행사도 서천 둔치에서 수천 명의 경주시민과 함께하는 가장 큰 대보름 행사로 해마다 열리고 있다. 한해의 액운을 날려 보내고 새해의 안녕을 기원한다. 상대나무의 폭죽 터지듯 나는 소리와 함께 소나무 가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이 수십 미터 하늘로 치솟는 광경을 보며 우리 경주의 미래를 본다. ‘신라의 달빛 기행’은 경주의 핵심 관광상품으로 인기가 많다. 신라의 달밤에 보는 달빛은 오늘의 달빛이 아니라 천 년 전 그 달빛이라 혼자 보기에는 아깝다. 흥에 겨워 ‘신라의 달밤’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올해는 준공된 방폐장이 안전하게 운영되고, 공단이 경주시민과 함께 하는 공공기관으로서 지역사회와 상생발전하는 길을 더욱 넓힐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아∼ 신라의 달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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