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구 우편함에 광고 전단지가 쌓여 있다. 치워야지 하면서도 번번이 까먹고 있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가 되어서야 행동에 옮기게 된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쌓이던 광고물이 어느덧 우편함 하나 가득이다. 무심히 치우다가 고급 화장품 광고인지 아름다운 여인이 비닐 껍데기 안에서 노골적으로 다리를 꼬고 묘한 웃음을 흘린다. 괜히 죄 지은 사람마냥 주위를 겸연쩍게 둘러본다. 사실 광고는 소비자중심주의를 견고하게 하는데 필요한 선망을 부추긴다. 어디서 읽었더라, 광고는 먼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미모의 모델을 내세워 화장품이 잘 팔리도록 한다고 한다. ‘이거 몇 통 바르면 내 마누라 얼굴도 이렇게 변한단 말이지?’ 하고 근거 없이 현실을 부정하고 내 여인과 저 여인을 등치시킨다. 중요한 건 이제부턴데, 그렇게 이성을 마비시킨 다음 화장품의 사용만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좌절감을 고객들이 계속해서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와이프도 노래 흥얼거리며 신나게 찍어 바르던 손은 점점 무거워진다. 드디어 내 화장품을 찾았다고 아침저녁으로 뭐 달라진 거 없냐고 물어볼 때 알아봤다. ‘아하, 이제 좌절을 맞볼 때가 왔구나’ 화장대에 앉아있을 때는 눈도 마주치면 안 되는 시간이 온 것이다. 본인은 절대 아니라 우기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오르락내리락 사이클을 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분 좋게 시작해 점점 초라하고 좌절하는 그 부침(浮沈)을 말이다. 그래서 광고전문가들은 ‘필요의 마케팅’ 이후에는 ‘좌절의 마케팅’이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딱 우리 집사람 이야기다. 《프린터스 잉크》에서는 이런 식으로 쓰러진 사람 목을 더욱 조른다. “광고는 대중이 자기 삶의 방식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추한 것에 계속 불만을 품게 만든다. 광고업계의 관점에서 보면 좌절하는 고객이 만족하는 고객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이 무슨 잔인한 소린가. 이거 바르면 예뻐진다며? 그래서 발랐더니 보이지도 않던 주름이 더 커져 있고, 한 평생 마지못해 만족하던 얼굴이 이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지경까지 추락했다. 화장품이 단점을 커버하기는커녕 그걸 더 도드라지게 했으니... 화장품은 미(美)가 아닌 추(醜)에 방점을 둔 고도의 심리적 맥락에 근거한 비즈니스란 말인가. 광고 전단지 속 연예인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산 화장품이 내 존재를 더 초라하게 만들고, 급기야 더 나약하지만 더 충성스러운 고객으로 만드는 뫼비우스 띠 같은 관계를 형성한다. 광고 기획자들이 처음부터 의도한 그대로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제품을 선택할 때 그 이유는 80%가 감성적이고, 20%가 이성적인 것이라고 한다. 사실 이것은 마케팅업계에서 오랫동안 인정받아온 것이다. 상식과 논리라는 방어막조차 의미 없을 정도로 ‘동경’이자 ‘질투’의 대상이기도 한 광고 모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우유부단해지는 게 여자다. 예뻐지려고 화장하고 잡지 속 여인과의 격차로 더욱 초라해져 또 덧바른다. 고등한 여성이 겪어야 할 딜레마다. 마케터에 따르면 남성은 그 비율이 정반대라고 한다. 구매에 의존하는 비율이 이성이 80%이고 감성이 20%라는 것이다. 남성은 이성을 근거로 구매 활동을 한다는 말인데 이 또한 호랑이 풀 뜯어먹는 이야기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건데 남자들의 구매 패턴에는 이성이고 감성이고 간에 최소한의 기준조차 없다. 정말이다. 왜 샀는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 고민도 없이 구매를 한다. 백화점 계산대 앞에서 와이프의 잔소리에 어설픈 웃음을 짓고 서 있는 남자들을 환기해 보시길 바란다. 이러니 무한경쟁의 상업 진영에서 고도의 심리전에 능한 코스메틱 비즈니스가 그 주 타깃으로 여성을 택할 수밖에. 구매 환경에 있어 남성의 몰상식과는 달리, 고등한 여성의 섬세하고 세련됨이 오히려 구멍이 되는 그 아이러니는 요즘 말로 아주 ‘웃프’다. 웃기는데 아주 슬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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