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 갔더니 어린아이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시식코너도 아닌데 뭘까 가까이 가봤더니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아이들의 시선을 끌고 다닌다. 노랑과 빨간색의 물고기가 특히 인기가 많다. 웬 시커먼 녀석은 넓적한 입으로 온 바닥을 휩쓸고 다니고 있다. 마트 바깥은 낙엽도 거의 떨어지고 겨울의 문턱에 서 있는데 이놈들은 따뜻한 광선을 쬐며 아주 여름 한가운데에 있다.
그때 필자 눈에 들어온 것은 구피(guppy)였다. 서인도 제도산(産)의 열대어인데, 성(性) 유전적 제어 연구에 잘 이용되는 종이다. 집에서 키워 본 적이 있었던 터라 왠지 반가웠다. 구피의 천적은 펌프킨시드(pumpkinseed)같은 대형 육식 물고기란다. 호박씨라... 천적 치고는 이름이 너무 정감이 있다.
이 귀여운 녀석을 가지고 다양한 실험을 했다. 천적인 ‘호박씨’를 투명한 어항에, 구피를 또 다른 투명한 어항에 넣어둔다. 지켜보니 어떤 구피는 물론 다른 어항인데도 천적으로부터 멀리서 놀고 있었고, 또 어떤 구피들은 앞의 구피들보다 천적에 더 가까이 더 오래 머무르고 있었다. 반복 실험을 해본 결과, 이러한 경향은 각각의 구피들에게 일관성있게 관찰되었다.
이러한 특성에 맞춰 리 듀거킨(Lee Dugakin)은 구피를 강한 경계, 중간 경계, 낮은 경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그리고는 예상(!)한대로 각 그룹에 속한 구피 20마리씩을 실제로 펌프킨시드가 있는 어항에 넣는다.
36시간이 지나자 강한 경계에 속했던 구피 중 14마리가 살아남았고 중간 경계그룹은 7마리, 약한 경계그룹에는 5마리가 살아남았다. 60시간이 지나자 강한 그룹은 8마리, 약한 그룹의 구피는 모두 죽었다.
듀거킨은 포식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연선택은 경계성을 택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구피가 더 오래 살더란 말이다. 당연한 결과다.
비슷한 실험이 카리브 해의 섬 트리니다드(Trinidad) 전역에서도 진행되었다. 어떤 구피들은 물길이 좁아서 포식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상류에 살았고, 어떤 구피들은 포식 물고기가 사는 하류에서 살았다.
시릴 오스틴(Shyril O’Steen)은 서식지가 각기 다른 구피들을 포식 물고기가 있는 인공 풀장에 모두 넣어보았다. 그랬더니 포식자가 없는 상류 출신 구피들이 포식자가 있는 하류 출신들보다 더 많이 잡아먹혔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아무래도 천적을 봐왔던 놈들이 더 조심했을 테니 말이다.
과학자들도 굳이 예측 가능한 실험을 할 이유는 없다. 연구자들은 상·하류에서 잡은 구피들을 안전한 어항에 넣고 일단 그들이 새끼를 낳을 때까지 기다렸다.
실험은 천적을 경험하지 못한 새끼들을 대상으로 했다. 결과는 이 새끼들은 포식자를 경험한 적도 없고, 실험용 포식 물고기는 부모 구피들이 경험했던 포식 물고기와 달랐는데도, 포식자가 있던 하류의 구피 새끼들이 상류에 서식했던 구피 새끼들보다 포식자가 있는 풀장에서 더 잘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놀라운 결과는 포식자가 있을 때 갖는 경계심이 유전(遺傳)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아빠의 생존 과정에서 체득된 경험들이 자식의 몸속에서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이다.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종(種)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라면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도 당연해진다.
같이 열대어를 지켜보던 아들 녀석 손을 가만히 잡아당긴다. 도톰한 걸 보니 필자 아들 것이 맞다. 그 속에 손금을 읽어본다. 이 녀석의 모든 인생을 적어놓았을 그 손금을 해독할 능력은 없다.
하지만 아들 녀석 손바닥 어디엔가 분명 녀석의 아빠의, 그 윗대의 세월이 남아있다는 정도는 안다. 도톰한 손바닥 안에 녀석의 현재와 미래도, 자기를 있게 해준 과거도 동시에 자리 잡고 있다. 주름살은 세월이 그저 속절없이 흘러간 것이 아니라 흔적으로 쌓인다는 증거이듯 말이다. 붉은 색 구피 몇 마리에 갑자기 인생이 무거워진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