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호에서 ‘시험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고 했다. 정형화된 시험으로 우리는 인간을 평가 할 수 없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지금의 시험의 목적인 정형화된 암기식 시험으로 인간을 선택하고 구분하고 구별해 줄을 세우는 우생학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단순히 암기하는 시험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자체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평가하고 시험하는 일에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간의 능력을 평가하기에는 시험은 허점투성이다. 이러한 시험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보상을 주기에 이렇게 시험성적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것일까? 독자여러분들께서는 한번 종이에 적어보시기 바란다. 시험을 잘 치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좋은 점이 무엇인가를 100가지 정도를 적어보시기 바란다 -시험을 잘 치면 칭찬받는다 -시험을 잘 치면 기분이 좋다 -시험을 잘 치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 -시험을 잘 쳐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다 -시험을 잘 치면 행복하다? 우리사회는 시험 점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너무나 커서 새로운 혁명의 시험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 보상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사회는 시험이라는 늪에 빠져 들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삶을 살게 할 것이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공부를 해서 어떤 것을 얻었으면 좋겠는가? 많은 부모들에게 물어보았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바로 자녀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이러한 답변에는 커다란 오류가 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하여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우리아이들이 가장 행복해야 할 30년을 불행하게 살아간다. 우리 아이들은 누구를 위해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요구했을 때 어떤 답을 했을까? 독자여러분들은 어떤 답을 내놓겠는가? 열에 아홉의 아이들은 엄마를 위해서 공부하고 성적을 올린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을 지혜로운 아이로 키우려면 정해진 답을 찾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인간으로 키우는 것이 정답이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고 한다. 한가지의 답을 찾아 1, 2, 3번 객관식의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험을 통하여 자라나는 아이들을 완벽하게 평가할 수 있다’라고 믿는 것 자체가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인간의 고귀한 능력, 지금의 우리사회를 만들고 계속 만들어갈 능력은 바로 생각하는 능력이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시험의 목적이 이제는 생각하는 힘의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는 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2010년 혼자서 시작한 문화운동이 2016년 100여 명의 전문 운동가들이 현장에서 함께 펼치고 있다. 수많은 부모들과 학생들이 배우고 익혀 실천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서 실천하는 아이로 교육해야 한다’고 교육현장에서 항상 주창하고 있다. 질문을 통하여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고 의심하는 인간으로 자라기를 바라면서 작은 문화운동을 시작했다. ‘시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의 질문이 아닌 ‘시험이 인간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할 것인가?’의 물음에 대한 해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해답의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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