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집, 꿈, 희망 등 일곱 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일컬어 ‘7포’세대라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을 자조적으로 정의한 말이다. 흰 티에 색 바랜 청바지 하나만 걸쳐도 그저 이쁘기만 한 우리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은 커녕 연애가 사치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여자 친구 만들기조차 힘든 젊은이들이 혼자 라면을 끓여먹으며 대리만족으로 쳐다보는 게 소위 ‘먹방’ 프로그램이라는 자조 섞인 해석도 있다. 상황과 조건은 다르지만 우리 선조들도 이런 실존적 고민 앞에서는 오늘날 젊은이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팔자 좋은 사람은 이후후/그늘 속에 앉었그마는 이후후/우리들은 밤낮으로 이짓일세 이후후/세상에 불쌍한것 이후후/우리 농부밖에 없구나 이후후/한을 한들 무엇할꼬 이후후/없느나니 이 고생일세 이후후… 민요〈보리타작〉노래의 일부분이다. 팔자 좋은 양반들은 시원한 그늘에 앉아 고량진미를 즐기지만, 우리네 농민은 밤낮으로 이렇게 일만 하는구나 하고 신세한탄의 노동요다. 눈여겨 볼 대목은 ‘한을 한들 무엇할꼬’ 하는 부분이다. 한(恨)은 한국인의 피부 깊숙이 육화(肉化)되어 있는 개념이지만 굳이 사족을 달면 이렇다. 허신의 「설문자해(說文解字)」에는 한을 ‘怨極也’라고 정의한다. 원(怨)의 극(極)이라... 결국 한은 원망하고, 슬퍼하고, 후회하며 유감으로 여기는 감정이다. 한자 자전의 풀이로는 대체로 원지극(怨之極), 회(會)와 감(憾) 등으로 되어 있다. 근세로 내려오면 애달다(애달파하다), 슬허하다(슬퍼하다), 원망하다로 쓰이고, 현대어 사전의 풀이로는 원한, 한탄으로 되어 있다. 뉘앙스는 조금 다르지만 원자(怨字)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개념이다. 또 한자 자전의 회(悔), 감(憾), 고어사전의 애달다, 혹은 슬허하다, 현대어 사전의 한탄, 등도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좌절이나 상실을 당해 자신을 자책하고 한탄하는 감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탄(嘆字)자가 주축이 된다. 요약하면, 한(恨)이라는 감정은 두 개의 방향성이 있다. 먼저의 원망은 상대방을 향한 외향적이며 공격적인 감정이라면, 나중의 한탄은 무기력한 자아를 되돌아보고 자책하며 한탄하는 내향적이며 방어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이라는 한국적 정서에는 이렇게 심리적 맥락이 외부와 동시에 내부를 향해 있다. 노래에 적용시켜보면, 밤낮으로 농사일로 바쁜 우리와 비교되는 그늘에 누운 팔자 좋은 그들을 선명하게 나누어 원망을 구체화시킨다. 이내 외부를 향한 원망은 방향을 바꾸어 소위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우리가 한을 품어보면 무엇하겠는가 하고 한탄한다. 학자들은 원망보다 체념을 보다 상위의 감정이라 말하며 한(恨)이야말로 한국 정서의 꽃이라고 말하는 모양이다. 간절히 원했음에도 이룰 수 없어 체념하는 것이 한이 된다. 그것이 기어이 몸과 마음에 상처로 남기는 것이 화병(火病)이라면 서구 의학에는 없는 오직 한국 진단명이라고 자랑할 게 아니다. 체념은 퇴영적 자폐성 내지 허무주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옴짝달싹 못 하는 체념을 철저히 함으로써 일종의 달관의 경지로 승화하고 그것이 한이 가지는 아름다움이라 치켜세우는데 동의치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한의 내적 승화라는 고급진 변명을 늘여놓더라도 칠포세대는 수긍하지 못한다. ‘흙수저’는 ‘금수저’와 다르니까. 선택권이 있다면 누구라도 거부했을 아픈 현실이다. 더 노력을 하지 그랬냐는 기성세대에 ‘노오력!’이라고 냉소적으로 대답하는 7포세대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그걸 해결해야 한다. 인생은 이런 문제와 그 해결의 연속일 뿐이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집, 꿈, 희망, 이 중 어느 하나라도 포기할 정도로 덜 중요한 건 없다. 세계적 불황이라도 더 힘을 쏟으면 된다는 순진한 무한 긍정도, 사회 전반의 문제이지 일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도망갈 수도 없다. 새해는 한(恨)이 없는 무한 새해가 되길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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