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이라는 장기가 있다. 길이가 10 -15cm 너비 6 - 8cm 무게는 10 - 130g 밖에 되지 않는 한 주먹만한 크기에 왼쪽 옆구리의 윗부분에 위치한 암자색을 띠는 장기다. 우리 몸은 보편적으로 좌우대칭을 지향한다. 두팔과 다리, 두 눈과 두 귀의 외부 기관은 물론이고 비슷한 기능과 모양인 두 개의 신장, 두 개의 허파, 양쪽의 대뇌 같은 내부기관들. 물론 하나뿐인 장기도 많다. 식도, 위, 심장, 방광, 갑상선, 이자, 내부 생식기 등등. 그렇지만 이들은 중심을 향해 위치하고 있어 몸의 양쪽 끝과의 교통에 있어 한쪽으로의 치우침이 되도록 생기지 않게 하고 있다. 소장과 대장은 한 개지만 복부 전체를 채워주고 이에 따른 균형을 보여주는, 모두 좌우대칭과 가까운 장기들이다. 그런데, 비장은 사뭇 다르다. 독특하고 특이하다. 작지만 왼쪽으로 지나치게 쏠려있다. 우리몸에서 거의 유일한 확연한 비대칭속 기관임에 틀림없다. 비장의 다른 용어는 지라다. 지라는 순우리말이다. 신체 기관을 나타내는 용어는 대부분 다 한자용어다. 남아있는 순우리말 용어는 허파, 염통, 쓸개, 지라와 더불어 몇 가지 되지 않기에 그만큼 더 특별한 느낌도 준다. 심장, 신장, 폐장, 간장과 더불어 오장안에 포함된 장기인 비장의 기능은 뭘까? 혈액의 여과와 저장, 낡은 적혈구를 비롯한 백혈구나 혈소판 등의 혈액 세포들을 제거하는 역할, 또 체내에 들어온 세균이나 이물질들을 혈류로부터 제거하는 면역기능 등이다. 면역기능은 특히 비장을 절제한 환자들이 세균성 감염질환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의학에서는 사뭇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한방에서 말하는 비장은 이자와 포함시켜서 바라보기에 비장은 소화 작용도 관여하는 걸로 인식한다. “비는 혈(血)을 통섭(統攝)하고, 전신의 운화(運化)를 주관한다” 이때 전신의 운화가 바로 소화작용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비위가 상한다’ 는 표현에서 비는 바로 비장을 뜻하는데, 이도 소화작용과 관련된 의미라는 것을 반증한다. 이런 비장의 여러 가지 기능들을 수행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혈류량 공급이 풍부해야만 한다. 실제로도 비장은 비장 정맥이라는 비장만을 위한 단독 혈관이 연결되어 있으며 비장을 거친 혈액은 문정맥(portal vein)이라는 이름 그대로 간의 대문 역할을 하는 혈관과도 닿아있다. 왼쪽 옆구리라는 피부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했기에 그 지역을 칼에 찔리는 등의 외부 손상을 받으면 과다출혈로 사망할 수도 있는 부위다. 가끔 미국의 갱스터 영화나 우리나라의 조폭영화에서 사람의 옆구리를 칼로 찌르는 장면이 있는데, 왼쪽을 찌르는지 오른쪽을 찌르는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옆구리는 가슴처럼 갈비뼈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복부나 등처럼 크고 강한 근육으로 이뤄져서 단련이 가능한 부위도 아니기에 쉽게 공격받고 또 그 공격에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비장이 있는 왼쪽에 비해서 오른쪽은 간만 피한다면 그 위험도가 훨씬 낮아지기도 한다. 오른쪽 옆구리는 소장과 대장으로만 채워진 부분이니 칼에 찔리더라도 지혈만 잘 된다면 사람이 급사하는 상황만은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옆구리를 칼에 찔리고도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며 끝까지 뭔가 해내는 눈물겨운 화면속 주인공들도 있다. 이때는 왼쪽 옆구리인지 오른쪽 옆구리인지 한번 눈여겨 보자. 비장이 있는 왼쪽 옆구리 윗부분을 칼에 찔리고도 별다른 출혈없이 말하고 움직인다면 이는 너무 비의학적, 비현실적인 장면임에 틀림없으니 말이다. 김민섭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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