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은 인류를 비롯한 모든 포유류의 복부에 위치한 장기로 무게가 1.5kg이나 나가는 가장 크고 무거운 그리고 신비로운 장기이다. 고대로부터 생명이 유지되는지 이미 끊어졌는지에 대한 가장 쉽고 확실한 판단은 맥박이었다. 심장이 뛰고 있으면 살아있는 것이고 심장이 뛰지 않으면 죽었다는 전통적인 판단법, 이는 첨단으로 치닿고 있는 현대 과학기술 속에서도 별 다르지 않다.
심전도상에 심장의 움직임이 전혀 체크되지 않으면 죽었다고 판단하고 의료인들은 사망선언을 한다. 고대인들은 심장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졌다. 생명과 직결된 장기에 대한 존경의 표시도 분명 있었으리라.
그런데 막상 사체를 파헤쳐 보니 직접 본 심장의 모습은 너무 왜소했다. 겨우 한주먹만한 크기에 울퉁불퉁하고 혈관들이 삐죽삐죽하게 튀어나온데다 한쪽으로 비대해져 대칭과는 거리가 먼 멋없는 모습, 게다가 속은 완전히 비어있어 무게도 형편없이 가벼웠다.
기대가 너무 커서였을까? 이에 대한 존경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사실 심장의 기능은 너무 단순하고 간단하다. 인체의 오장육부중 가장 먼저 인공장기가 탄생한 것도 그리고 심장외에 다른 인공장기가 없는 이유도 같은 이유다.
그런데 간은 달랐다. 일단 크고 굉장히 무거웠다. 빛깔도 붉은 색 일색의 다른 장기들과는 확연히 다른 군청색이다. 매끈매끈한 표면과 꽉 찬 속은 고대인의 눈에도 뭔가 신비한 기능들로 가득차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도 남았다.
그래서일까? 간을 영어로 하면 liver다 liver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면 살아있는자, 생존자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간은 바로 생명 그 자체와 동일시되는 그런 장기라는 믿음이 생겼다.
오늘날에도 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물질대사, 알콜분해, 해독작용, 혈액응고 작용, 항체 생산, 호르몬 대사등 간의 기능은 무궁무진하다. 간은 우리 몸의 모든 기능에 관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려 500가지도 넘는 일을 하며 1000가지 이상의 인체가 꼭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각종 물질들을 생산한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간에 대해서는 연구를 하면 할수록 지금껏 몰랐던 새로운 기능들이 속속 밝혀진다는 것이다.
간이 너무 중요해서일까? 간에는 다른 장기에는 없는 굉장히 독특한 특징이 있다. 신장을 이식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은 신장을 두 개 가지고 있으니, 한 개는 타인에게 이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간은 어떻게 이식이 가능한 걸까? 기능이 너무나 많아 인공간은 아직까지 상상도 해볼 수도 없을 정도로 복잡한 장기인데, 그런간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떼내어 줄 수 있는 것일까?
간은 스스로 증식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전체 간의 15%만 있더라도 다시 100%로 증식해 내는 기능은 참으로 놀랍다. 이 때문에 간은 이식이 가능하다. 만약 이런 기능을 다른 신체에도 활용할 수 있다면 교통 사고로 인한 사지 절단 환자라도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 말이다.
우리 옛날 이야기 중에 토끼전이 있다. 용왕님이 몹쓸 병에 걸렸는데, 토끼간이 치료제라 하여 거북이가 육지로 가서 토끼간을 구해오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모른채 바다로 간 토끼는 본인이 죽게 되자 내 간은 중요하니 우리집에 따로 모셔놓고 있다는 재치를 발휘하여 도망치게 된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토끼의 대답이다. 내 간은 다른 장소에 따로 보관할 수 있다는 대답 말이다. 우리 선조들도 간의 증식 기능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김민섭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