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이 단돈 몇 천원으로 자주 찾을 수 있는 곳. 값 싸고 영양 많아 한국인이 사랑하는 곰탕. 서민들 애환 가득한 경주중앙시장 소머리곰탕집들을 지난 4일 찾았다.
경주중앙시장(지역민들은 ‘아랫시장’이라고도 함)에서는 예의 시끌벅적한 장터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해 중앙시장 상가시설 개선 사업을 마무리한 뒤 최근 더욱 활기찬 전통시장으로서의 모습을 띠고 있었고 얼마전 화재 후 더욱 정비돼 오히려 문자 그대로 ‘전화위복’이 된 듯 했다.
벌써 설 대목을 앞두고 갖가지 강정을 만드는 가게들이 눈에 띄는가하면, 김이 모락모락 피워오르는 소머리국밥집을 찾은 서민들은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마주앉은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몇 년전만해도 사실, 거미줄이 쳐진 환경보다는 훨씬 위생적이고 깨끗해 보이는 장터 국밥집 풍경이었다. 경주중앙시장 소고기 곰탕집들에서는 새벽 대여섯시 경부터 곰탕을 끓여 내기 시작한다. 인심 후하게 내어주는 서민적인 국밥 한 그릇은 겨울철에 제격이다.
곰탕과 함께 깍두기, 파김치, 멸치젓무침, 멸치조림 등의 반찬이 푸짐하게 곁들여 차려져 나온다. 입맛에 맞게 소금과 양념 다대기로 간을 맞추면 된다. 소머리 수육이 가득 들어간 뜨끈한 국물위에 굵은 파를 쑹쑹 썰어 얹어 준다. 찰진 밥을 말아 수육을 얹어 한 입 가득 먹으면 추위에 얼었던 몸도 사르르 녹고 고단한 심사도 한결 덜어진다. 고향의 맛을 간직하고 있는 경주중앙시장 곰탕이야말로 장터 국밥의 면모를 제대로 전해주는 장이었다.
-소머리국밥은 서민들 애환 달래주고 중앙시장의 대표 먹거리로 큰 몫 차지
경주중앙시장 상가번영회 정동식 회장은 “우리 시장은 원래 공설시장으로 100여 년의 시간성을 자랑한다. 시장이 민영화 된 것은 1983년 3월이다. 중앙시장의 주요 상품 브랜드로는 토종한우, 떡, 소머리국밥 등으로 최근 활어가 합세해 대표 먹거리로 인지도를 더해 가고 있다. 소머리국밥은 어린 시절 애환과 함께 중앙시장의 대표 먹거리로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편이다”고 했다.
“중앙시장을 다녀가 소머리국밥을 드신 분들이 맛있다고 해주신다. 요즘은 소머리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마진이 박해 소머리 국밥값을 1000원을 올리려고 한다. 현재 15일간 유예 기간을 두고 가격 인상에 관한 내용을 홍보, 고지하고 있다”
정동식 회장은 시설 환경 개선과 더불어 맛의 퀄러티를 보강해 젊은층의 유입도 적극 유도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서민들 자주 찾는 문턱 낮은 곳이지요. 값도 싸고 맛도 좋고요”
불국사 마동에서 온 친구사이라는 할머니 두분은 “시장에도 오고 병원에도 올 겸 해서 이곳을 찾았다. 우린 소머리국밥집 단골이야. 맛이 있으니 오지. 밥도 고봉으로 많이 주고...,”하며 새해 소원은 자손들 잘되는 것이 으뜸이라고 했다.
교동에서 온 김석순, 김양자 씨 자매와 남동생 삼남매는 다정하게 국밥을 먹으며 막걸리 한 사발씩 나누며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진주에 산다는 여동생 김양자씨는 “한번씩 경주에 오면 언니를 따라 여기를 찾는다. 2일, 7일 장날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이 찾는 걸로 알고 있다. 저는 소머리 국밥이 더 입에 맞아요”한다.
화천리와 포석로에서 왔다는 친구 사이 두 어르신은 “중앙시장에 오면 자주 이곳을 찾아요. 경주를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중앙시장인데 국밥집은 중앙시장의 먹거리 대표음식이고 곰탕도 좋고 국수도 좋다. 서민들이 자주 찾는 문턱이 낮은 곳이다. 값도 싸고 맛도 좋고요”하며 국밥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외지에서 오는 친구들도 중앙시장에 많이 데리고 온다.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권할 만한 음식으로 중앙시장 국밥을 권하고 싶다”
대구에서 온 김성호(25)씨는 지난해 직장 상사가 이곳을 권해 같이 다녀간 이후 출장을 오면 꼭 이곳을 찾게 됐다고 한다. “대구에도 국밥집이 있지만 이곳이 더 맛있어서 다른 먹거리 대신 곰탕을 먹는다. 맛도 맛이지만 어머니나 할머니 같은 주인들의 푸근한 인심이 더욱 좋다”고 했다.
-울산소머리곰탕집 박해경 씨, 34년째 이곳 지켜온 터주대감...명찰 달고 당당하게 일해
울산 소머리곰탕집은 자매(박해경, 동생 박말경씨)가 운영한다. 34년째 이곳을 지켜 온 박해경(71)씨는 ‘원조터주대감’이다. 이 시장에서 조그마한 반찬집부터 시작해 60년 넘게 시장에서 일해 잔뼈가 굵은 이였다.
“국밥집 주인들은 모두 가슴에 명찰을 달고 일한다. 당당하게 좋은 물건을 팔기 때문에 실명을 밝히고 장사하는 것이다. 동생은 새벽 다섯시경에 나온다. 그래야 고기를 삶을 수 있다”
“소머리국밥은 무엇보다 대한민국 사란들의 보신을 책임지는 고기 아닌가. 보신에는 최고으뜸이다. 소머리국밥은 담백하고 개운하다. 반면 돼지 국밥은 낭낭한 편이고요. 요즘은 돼지 국밥도 뻑뻑하면 손님들이 찾지 않는 추세지. 맑게 끓여야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소고기곰탕이 50그릇 팔린다면 돼지국밥은 한 그릇 정도 팔린다고 한다. 대신 돼지머리는 수육으로 많이 팔린다고.
“아무래도 국밥은 겨울철이 나은 편이다. 이 가게들은 모두 네 칸이다. 장사가 잘 되지않자 국밥집주인들은 하나 둘 씩 가게를 떠났고 남은 이들이 네 칸씩을 합해 운영하고 있다. 30년 전에는 지금보다 가게가 훨씬 많았다.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 방위병, 배고픈 대학생들이 많이 찾았다. 그때는 국밥 한 그릇에 500원, 수육도 600~700원, 정식 500원, 뻘건 소고기 국 500원 등으로 아주 쌌지”
당시에는 순대, 뻘건 소고기국, 비빔밥, 정식 등 지금은 없어진 메뉴도 다양했다. 그때는 자리도 지금보다 협소해 서서 먹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고. 1983년 시장이 민영화 되면서 입점을 시작했는데 당시는 국밥집만 해도 24개 업소였다. 현재는 아홉집이 소머리곰탕집 영업을 하고 있다.
“요즘 장사가 제일 잘 되는 것 같아.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온다. 오전 11시 40분부터 오후 2시경까지 가장 손님이 많이 몰린다. 오후 5시부터 6시 30분까지 도 제법 오고요. 백발이 성성한 점잖으신 분들은 물론, 맛있다고 대학생 등 젊은층도 자주 찾아 와”
이곳의 업주들은 제공하는 모든 메뉴를 직접 만들고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양념들도 여기서 만든다. 박씨는 올해도 김장을 400포기나 했다고 한다.
“가게를 물려 줄 자식이 없다. 그런데 가게 문의를 하는 이들은 많다. 이 장사는 정말 유망하다고 본다(웃음)”
이곳 국밥집 주인들은 한결같이 장사하면서 손님들이 맛있다며 노고를 알아줄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 씨는 “이제는 점포들 환경과 위생도 정비됐으니 의심 가지지말고 안심하고 믿고 먹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이곳 주인들이 다들 나이가 많은 노인들인데 절대 날치기로 음식 만들지 않아요. 그릇 하나도 싸구려가 아닌 다 좋은 걸로 제공해요. 우리 ‘할매’들을 믿고 이곳을 찾아 주시는 손님들께 늘 감사하게 생각해”했다.
-“남녀노소 이곳을 찾아줘 즐거운 마음으로 일합니다”
소머리곰탕집들은 ‘감포’ ‘양북’, ‘안강’, ‘울산’,‘건천’, ‘할매’, ‘모량’, ‘서울’ 등의 상호로 대부분 지역의 지명이었다. ‘30년 전통’ 이라고 명기돼 있는 식당들이 많았다.
안강국밥집 전종노 사장도 이곳에서 장사한지 30년 넘은 초창기 멤버다. 서울 식당 박향숙씨(62)는 운영한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들은 하루 종일 일하고 8시경 이들은 문을 닫는다. 매월, 1일 15일은 쉰다고.
이들은 “남녀노소 이곳을 찾아줘 즐거운 마음으로 일한다. 꾸준하게 손님이 들고 있는 편이다”고 했다. 이 곳을 다녀간 유명인사와 스타들도 많다고 한다. 가족 단위와 단체손님도 자주 찾는다. 수육 등 포장으로도 판매가 많다고 한다. 성건동에서 오늘 처음 왔다는 대학생은 ‘집밥을 먹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기자도 소고기 수육에 소머리곰탕과 함께 막걸리도 주문했다. 인심 후한 주인장은 국물도, 밥도 자꾸 더 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