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이 저물고 있다. 올해는 시성(詩聖) 박목월 선생의 탄생 100주기가 되는 해라 경주사람들에게는 특별한 한 해였다. 목월 선생은 한국 근대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큰 인물이라 한 해 동안 그를 기리는 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이 중에서 얼마 전 경주예술의전당에서 막을 내린 기념전시 ‘목월, 그림으로 환생하다’는 우리 지역에 꽤나 특별한 의미가 있어 소개한다. 목월 선생은 ‘시’로 명성을 떨친 문인이다. ‘소설’의 동리선생과 함께 가히 한국근대문학의 쌍두마차라 하겠다. 2013년 동리 선생의 탄생 100주년은 그의 대표작 ‘무녀도’를 각색한 창작뮤지컬 ‘무녀도동리’의 성공 덕에 유감없이 보낼 수 있었다. 그 때부터 2년 연하인 목월 선생의 100주기 행사에 대한 고민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문화재단에서는 작년에 목월 탄생 100주년 특별기획전을 열기로 계획했었다. 그러나 예산확보에 실패했다.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구세주가 나타났다. 구세주는 경주미협이었다. 경주미협이 2015년 정기전시회의 주제를 ‘목월’로 정한 것이다. 브라보! 그런데 이어서 또 하나의 경사가 났다. 목월 기념전시가 국비사업으로 선정되어 국비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아, 이 겹경사는 틀림없이 목월 선생이 도와주신 것이리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들에게 ‘목월’이란 주제의 설정은 창작의 범위를 한정하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목월의 후배 예술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 무려 74분의 지역작가들이 출품했다. 이들은 목월의 시를 읽고 떠오르는 영감을 회화로, 조각으로, 서예로, 공예로 표출했다. 글자(시)가 그림(시각예술작품)으로 변하는 마술이 일어난 것이다. 목월선생 기념전시에는 솔거의 후예들만 참가한 것이 아니다. 경주음협은 리셉션의 연주를 책임졌다. 경주사진작가협회는 참가작품을 앵글에 담아주었다. 동리목월기념사업회에서는 목월선생의 다큐영상과 육필원고를 빌려주었다.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배경음악은 지난 4월에 열렸던 경주시립합창단 정기연주회 ‘목월의 노래’의 실황음원이다. 경주의 대표적인 문화 주체는 대략 경주시(문화관광실과 시립예술단), 경주문화원, 경주예총, 경주문화재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단체들의 협업이 그간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단체 간 헤게모니 다툼에 원인이 있었던 건 아니다. 협업의 구심점이 되는 인물이나 사건이 부재했던 것 같다. 기념전시 ‘목월, 그림으로 환생하다’에서 단체 간 협업이 가능했던 건 다분히 지역의 예술가 대선배 ‘목월’이란 구심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예술단체의 협력은 불가능한 행사를 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경주미협이 문화재단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목월, 그림으로 환생하다’는 존재할 수 없었다. 또한 경주미협의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행사의 빛이 반쯤은 바랬을 것이다. 이어진 다른 예술단체들의 참여는 또 어떤가? 기념전시를 더욱 풍성하게, 의미있게 만들었다. 요컨대 목월 탄생 100주년 기념전시 ‘목월, 그림으로 환생하다’는 지역예술네트워크가 작동한 결과다. 그 결과는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모두에서 언급한 특별한 의미란 바로 이것이다. 언제 이런 행사를 다시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번 전시가 목월 선생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돌아가신 목월 선생이 살아있는 지역예술가들을 하나로 묶어 멋진 볼거리를 선사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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