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문화 예술에 대한 공적의 평가에 머물지 않고 경주신문 독자들과 함께 앞으로 경주 문화 발전을 위해 희생하면서 경주시민에게 행동으로 보답하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1988년 대통령 표창장, 1997년 국민훈장 동백장, 2009년 한국음악상을 수훈한 지역 음악계의 1세대 원로인 2015 경주시민상 문화상 부문 안종배(82) 수상자의 수상의 변(辯)은 격조가 남달랐다. 선생은 우선 수상자로 선정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를 새겨 정성을 다해 종신토록 경주 문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본사는 창간 26주년을 맞아 ‘2015년도 경주시민상 시상식’을 개최한 바 있다. 경주신문이 지역발전과 건전한 지역풍토조성, 문화예술창달에 기여한 시민들을 선정해 시상하는 2015년도 경주시민상 문화부문에는 완송 안종배(82)선생이 수상했다. 완송 선생은 음악의 본질에 몰두하고 음악을 깊이 사랑한 우리경주의 자랑스런 음악인이자 아시아인이 존경하는 음악인이다. 선생은 편찮으셨다. 선생의 빠른 쾌유를 빈다.
안종배 선생의 자신의 평생을 관통하는 신념과 음악철학은 너무나 확고했고 ‘누구보다 경주를 아낀다’고 자신했다.
사회적인 입지를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지 않았고 정형화된 과정을 답습하지 않았던 음악계의 원로로서 단지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일생을 음악에 관련된 일만 추구했다.
경주교향악단의 시립화를 염원하는 경주교향악단 명예지휘자인 안종배 선생은 교향악단의 활동은 그 지역 문화의 바로미터라며 경주가 가진 토양 자체가 음악적 자질을 키울 수 있었던 배양토였다고 했다.
선생은 1932년 노동리에서 출생하고 자랐다. 어릴적 경주제일교회근처에 살면서 교회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다.
당시 6년제였던 경주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악대부에 들어갔고 중학교 4학년(현재의 고등학교 1년)때부터 악장을 했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애착심은 남달랐다.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단지 음악이 좋아서 몰두할 수 있었다. 나의 음악적 감수성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음악적인 환경에 노출되면서 그 자양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경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과대학 예술학부 기악과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졸업 후 첫 직장으로 고향이 좋아 모교인 경주중고등학교에 3년간 1957년까지 음악교사로 부임한다. 경주음악계의 선구자로서 행복한 첫 직장이었다고 회고한다.
이후 대구시와 마산시의 시립교향악단을 창단하는 등 두 도시의 교향악단을 만든 음악인으로 음악을 가르치는 일로 평생을 살아왔다.
경남대학교에서 1997년 정년퇴직한 후 다시 경주로 돌아와서 특히 2000년부터 경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및 음악 감독을 맡아 20회의 정기연주회를 통해 지역사회 클래식 음악의 대부로서 크게 기여한 바 있다.
바람이 있다면 경주교향악단은 시립교향악단이 아니므로 시에서 보조금을 받아서 운영하는 단체가 그렇듯이 민간의 자발적인 지원으로 꾸려야 되므로 지금의 경주교향악단이 처해있는 상황이 어렵다고 했다. 하루빨리 시립화해야 하는데 경주시의 재정적인 상황으로 아직껏 지연되고 있는 것.
“포항, 대구, 김천시도 시립교향악단이 있는데 경주가 없다는 것은 문화도시로서 문화적 품격에 심각한 결격사유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선생의 공적은 나열하기 어렵다. 그 중에서도 1953년 경주최초로 경주합창단을 만들었으며 1963년 전국공모에서 ‘경북도민의노래’를 작곡해 지금까지 49년간 불리워지고 있다. 또한 아시아의 대표적인 음악인으로서 미국의 대표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창립한 일본의 홋카이도 PMF(태평양음악제)에 ‘아시아음악교육지도자’로 추대됐다.
해마다 페스티벌에 참여해 교육음악프로그램의 자문 역할로 프로그램 내용의 혁혁한 변화를 가져왔다.
또 한 가지는 2007년부터 동경에서 격년으로 치러지는 ‘국제음악회의’에는 세계적인 플루트의 현역대가들이 참여하는데 ‘제1회 국제음악회의’ 세계 4인 중 한 명으로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우리시대에 있어 원로 예술인에 대해 “우선 원로자체가 사회원로로서 존경을 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즉 원로는 말 그대로 원로다워야 한다.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는데 요즘과 같은 물질 만능주의에서 진정한 원로의 부재는 심각하다. 젊은 사람들과 자주 대화의 장이 마련되어서 단순히 음악적인 기술만을 전수하기보다 원로들이 살아온 경험이 녹아있는 인성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또 한가지는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평생을 지나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부끄럽지만 ‘음악의 팔방미인’이라 한다. 음악이라고 붙어있는 일에는 손을 안 댄 일이 없으니 그런가 보다”고 했다.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KBS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해 음악해설을 했다. 또 경남대교수로 재직하면서는 MBC, KBS 방송에 출연하면서 음악해설을 통한 대중화에 주력하기도 했다.
현재 선생은 경남대학교 명예교수, 일본의 나고야 예술대학의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경주교향악단과는 뗄 수 없는 분신과도 같은 것으로 음악감독, 명예지휘자며 그 외에 특강활동도 자주 한다. 아시아 21세기 오케스트라 프로젝트 한국대표, 대구 오페라하우스 자문위원, 한국 관악협회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종신토록 노력하겠다는 경주 음악계의 거장 안종배 선생. 빼어난 안목과 탁월한 감수성을 지닌 소유자로 음악을 통한 깊은 통찰력을 젊은 후진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하는 음악계의 소중한 원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