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8일 발생한 근대등록문화재 제 292호 ‘우안양수장’의 완전 붕괴 소식은 경주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괴감마저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다. 참으로 황당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95년 된 목재에도 영혼이 있습니다. 오래된 기계에 조차 영혼이 깃들어있습니다”고 한 관리인 박원달씨 부부의 말은 가슴을 친다. 박 씨는 평생을 바쳐 우안양수장 일을 한 탓인지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기자는 세 차례에 걸쳐 양수장의 보존 가치와 보수 정비의 시급함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여러 붕괴의 조짐이 보였고 이미 우려됐던 상황이었으므로 조치를 촉구했었다. 2011년 취재 당시 국도비를 확보한 상태에서 문화재청 지정 설계사가 자재와 설비를 최대한 보존한 상태에서 복원시킬 예정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돌아온 기억이 있다. 그런데 시비를 확보하지 못해 결렬되고 말았다.
우안양수장은 양수기 시설로서 이미 기능을 멈추었고 그 가치와 자산이 등록문화재로 이양된 상황에 경주시, 경주시의회, 농어촌공사는 상호간 엇갈린 주장을 하며 이번 붕괴에 대한 책임 전가를 하고 있어 그 안타까움은 더하다.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한편 문화재청 담당자도 문화재청은 이미 설계를 끝내고 예산까지 보냈다며 해당 지자체에서 지원을 하지 않고 적극성을 띄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으며 우안양수장이 행정구역상 경주시에 있으므로 문화재 소재지인 경주시가 책임져야 한다고 전한 바 있다.
2011년 12월, 당시 박 씨는 “올해 당장 폭설이라도 내리면 지붕붕괴의 위험마저 있다. 조속한 대처를 해야 하는 절박한 시점인데도 시의회는 예산부족이유와 포항시로의 전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개탄했다.
양수장 옆에 적재된 붕괴된 목재들은 포장을 단단히 해 놓아서 사진촬영이 어려울 정도였다. 황량하고 쓸쓸하기 이를데 없었다. 우안양수장의 재료와 건축양식이 그나마 보존되어 있을 때 보수가 이뤄져야 의미있는 작업이 됐을 것이다.
이미 무너져버린 건축재를 과연 얼마나 쓸 수 있을 것인가. 95년간 든든한 울타리를 잃어버린 양수기들은 또 어떠한가. 맨 몸으로 눈비를 맞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근대등록문화재라는 타이틀은 어디로 갔는가. 근대문화재에 대한 인식의 부족은 아닌지, 고대 신라 문화재에 비해 소홀히 여겨지는 것은 아닌지 반추해 볼 시점이다.
경주는 근대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대구의 근대문화골목, 대전 원도심, 군산이나 목포, 구룡포 등 다른 지자체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각 지자체의 관심과 활용의지는 대단하다. 경주에 산재한 근대 문화유산은 훌륭한 것이 많다. 그런데 등록문화재는 단 두 점이다. 국당리에 있는 우안양수장을 찾아가는 길 내내 아직도 그 흔한 문화재 안내표식도 없다.
이번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경주에서 근대문화유산의 의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타 시도의 그것과는 분명히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고대 신라 문화재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근대사의 유물로서 근대문화재의 지정은 그래서 더욱 값진 것이었다.
특히, 우안양수장의 경우 문화재로 등록됐을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2곳 밖에 없기 때문에 교육 및 관광자원으로도 그 활용가치가 높다. 가장 중요한 것은 향후 복원의 문제다. 한시 바삐 경주시 예산확보로 전화위복이 되는 기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