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수원(주) 월성원자력본부는 다사다난한 일들로 가득했다. 설계수명 30년을 채우고 중단됐던 월성1호기가 논란 끝에 지난 6월 23일, 946일 만에 전력생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6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22년 11월 20일까지 10년 연장토록 ‘계속운전’ 허가를 승인했었다.
또 지난 11월 9일 한국표준형 원전 OPR1000 모델로 건설된 신월성 1·2호기 준공식을 개최, 국가전력산업의 큰 축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나지 않은 논란도 있다. 원전 주변지역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병률을 둘러싼 논란이 식지 않고 있는 것.
일부 주민들이 수차례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갑상선암 관련 집단소송을 제기한 이후 한수원이 항소하는 등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논란의 핵심은 원전에서 배출되는 방사성물질로 인해 갑상선암이 발생했는지다. 국내 일부 원전 인근 주민들은 암 발병이 특정지역에서 집중되고 있으며, 원전 배출물질이 주민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제2민사부는 지난해 10월 고리원전으로부터 10㎞ 안팎에서 20년가량 거주하다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박모 씨가 한수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상관관계가 있다’고 판결했다. 박씨의 손을 우선적으로 들어준 것.
원전 거리별 여성 갑상선암 발생률이 통계적으로 유의한 경향이 있다는 서울대 역학조사보고서가 발표됐다는 것이 판결에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이다. 한수원 측은 재판 결과에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판결의 근거로 삼은 연구 결과의 해석이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당시 한수원 측은 “재판부가 인용한 서울대 의학연구원의 역학조사 보고서의 최종결과는 ‘원전 방사선과 갑상선암 발병의 상관관계가 통계적으로는 유의미하나, 그 인과관계는 밝힐 수 없었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이 같은 판결로 촉발된 원전 공동 소송은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기도 했다.
고리·월성·한빛·한울원전 인근지역에 거주하는 갑상선암 환자와 가족들이 지난해 12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총 596명이 한수원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소송의 주요 쟁점은 원전에서 배출하는 저선량 방사선과 갑상선암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규명이 쉽지 않아 판결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 관련 학회 원전과 갑상선암 무관 과학적 사실 밝혀
원전 인근주민들이 제기한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원자력 관련 기관들이 설명회 등을 통해 원전과 갑상선암의 무관함에 대한 과학적 사실관계를 밝힌 바 있다.
대한방사선방어학회와 한국원자력학회, 대한핵의학회 등 13개 방사선·원자력 관련 단체는 지난 1월 28일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갑상선암이 원전과 연관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들은 “원전 주변 방사선량은 일반인의 법적 연간 선량한도인 1m㏜(밀리시버트)보다 매우 낮은 약 0.01m㏜ 정도로 관리되고 있다”며 “누구나 자연으로부터 연간 평균 3m㏜ 정도의 방사선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근거로는 서울대 의학연구원에서 20년간 실시한 역학조사 연구결과를 들었다. 연구원이 1991년 12월부터 2011년 2월까지 원전 주변 주민 3만6000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결과 원전과 주민의 암 발병 위험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 원전 주변 지역주민 중 여성에서만 갑상선암이 유독 높게 발견됐고, 갑상선암 발생률이 원전 주변 거주기간과 비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한국원자력학회와 대한방사선방어학회가 지난 5월 6일 제주 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는 재판부의 판결내용을 반박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미 지난 1월 발표한 공동성명의 내용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여성 갑상선암의 경우 ‘방사선 이외의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추론 분석했다. 갑상선의 80∼90%는 아직까지 그 근거를 알 수 없으며, 유전적 소인, 요오드 섭취 과다 혹은 결핍, 다출산, 유산경험, 다이어트, 인위적 폐경, 조기검진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학회들은 “만약 방사선 피폭이 원인이었다면 갑상선암 외에 방사선 피폭과 인과관계에 놓여있는 위암, 유방암, 폐암, 백혈병 등 다른 암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어야 하나 유독 갑상선암의 비율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국내 갑상선암의 무서운 발병률이 과도한 검진에서 비롯됐다는 전문가들의 주장과 국제논문 등은 과다검진에 따른 원인일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이들 학회는 원전주변 주민들이 한수원과 지자체가 제공하는 건강검진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타 지역 주민들에 비해 갑상선 검진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갑상선암이 검사빈도가 높을수록 많이 발견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원전 주변의 높은 검진률과 발병률을 따로 떼어놓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 의대 갑상선센터 정재훈 교수는 지난해 5월 발표한 ‘최근의 갑상선암 과잉진단 및 과잉진료 논란에 대한 고찰’에서 “우리나라에서 최근 10년간 19세 미만의 소아암 발생을 보면 갑상선암을 제외한 다른 암들은 증가가 없는 반면 갑상선암은 약 2.3배 증가했다”면서 “이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쉽게 검사를 받을 수 있고, 2002년 이후 모든 병원이 건강검진 프로그램에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포함시켜 조기진단이 가능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벨기에 역학조사 ‘암 발생과 관련 없다’ 결론
실제 원전과 암 발생의 상관관계에 대한 역학조사는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조사됐다. 미국은 1990년 미국국립암연구소(NCI)가 주관해 62개 원자력시설 주변 지역 주민에 대한 암 사망률을 조사하는 역학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연구팀은 1950~1984년 원전 및 원자력시설 주변지역 주민의 암 사망자 90만 명과 대조지역 주민의 암 사망자 180만 명의 자료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백혈병과 암 사망률 증가는 방사선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2002년에는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와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센터에서는 핸포드(Hanford) 원자력시설 주변 주민들의 갑상선질환을 연구했다. 그 결과 원자력시설 방사선 방출량과 주변 주민들의 갑상선암과는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2년에도 비슷한 연구가 시행됐다.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학교에서 미국 내 65개 원전주변 지역을 거리별로 나눠 갑상선암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이 연구에서도 원전으로부터 거리와 갑상선암 발생과는 관련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벨기에도 2014년 원전 주변 주민의 갑상선암 정도를 조사했다. 벨기에 공중보건과학연구소와 정부원자력통제기관에서 진행한 이 연구는 벨기에의 원전 4곳 주변과 프랑스와의 국경지역(3km 거리에 프랑스 원전 위치)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원전 반경 20km 이내에서 갑상선암 발생률이 증가하지 않았다.
-정확한 정보와 해외사례 제공해 주민피해 최소화
원자력 관련 학회 등은 원전과 갑상선암의 과학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이지만 인근 주민들이 납득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아직까지 명확한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갑상선암의 80~90%는 그 원인을 알 수 없으며, 유전적인 이유나 해조류에 함유된 요오드 과다 섭취 혹은 결핍, 여성호르몬 부족, 면역력 약화, 심각한 방사선 노출 등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확한 이유가 현재까지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갑상선암이 걸리는 데는 원전 방사선 이외의 영향이 있을 거라는 추론만 있을 뿐이다.
원전 주변 일부 주민들의 주장처럼 명확한 인과관계에 대해 밝힐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한수원 측이 이를 규명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월성원전 관계자는 “갑상선암 발병 등과 관련, 사실과 다른 정보로 인해 원전 인근 주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만큼 정확한 정보와 해외사례 등을 제공해 나가겠다”면서 “방사선의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조사를 확대하고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통해 방사선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과 불안감을 해소시켜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