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화학자 케큘레는 꿈속에서 뱀이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 탄소화합물의 분자구조를 밝혔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케큘레의 벤젠고리’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밥을 먹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늘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 천 삼백년 전의 서라벌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수 년 전 경주시가 천년고도 신라왕경 디지털 복원 시범사업으로 의뢰하여, 어설프기 짝이 없는 신라왕궁영상을 제작한 사람으로서 그 때부터 신라왕경은 내 남은 여생의 화두가 되었기에 어쩌면 나는 케큘러처럼 꿈속에서라도 신라왕경의 모습을 한번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간 해당 영상작업을 계속해 오면서 현재의 경주시민을 모두 소개시킨 다음, 시가지를 모두 철거하고 수 백 년에 걸친 대규모의 발굴작업을 시행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신라왕경에 관한 정확한 고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한계에 절망했다. 고고학자도 아니요 사학자도 아닌 일개 디지털 화공에 불과한 내가 감히 건방지게도 혹 다른 사람들이 놓쳐버린 흔적을 찾을 수는 없을까? 아니면 어떤 영감이라도 얻을지 모른다는 기대심리로 그간, 수 없이 심야에 월성을 걸어 보기도 하고 월성의 토성에 올라가 경주시내를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했으며, 최근 발굴된 모량지구를 비롯하여 경주 인근의 많은 문화재 지역을 나름대로 탐사도 하여 보았지만 얻은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이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수 개월 쯤 전인 것 같은데,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잠이 몰려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잠시 비몽사몽 헤맨 적이 있었는데, 독자들이 믿거나 말거나 그 때 나는 너무도 선명한 서라벌의 도시 상공을 마치 독수리처럼 비행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수 년 전, 월성과 안압지 사이에 있는 그 초라한 신라왕궁 영상관에 그 허접한 십 여분 짜리 영상을 올려놓고 불안초초하여 한동안 영상관을 자주 방문해 관객들의 반응을 훔쳐보곤 했다. 한 번은 점잖게 생긴 노년의 서양인 부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천년왕국의 부활’ 영상을 다 관람하고 나에게 질문하기를 “훌륭한 그래픽이긴 한데, 저게 다 사실이냐” 고 하길래 순간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즉시 나는 다시 그에게 반문하였다. “혹 여기 오기 전에 신라왕관을 보았느냐?” 했더니 천마총을 거쳐 박물관에서 신라왕관을 포함한 유물들을 보고 오는 길이라 했다. “당신은 다른 나라에서 우리 신라 왕관만한 크라운을 본적이 있는가?” 라고 다시 질문 했더니, 그는 그토록 화려하고 정교한 크라운을 일찍이 본적이 없고, 대단히 아름다운 왕관과 황금장신구 들을 보고 크게 감탄하였다고 하며 연신 “소 뷰티풀!”을 연발한다. 나는 다시 그에게 말했다. “그토록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쓴 신라왕이 당신이 본 저 영상에서 보다 더 초라한 왕궁에 살았다고 하면, 그게 논리적인 생각인가?”라고 했더니 그는 즉시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I agree your opinion “ 즉, 당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수 억년 전, 정말 까마득한 고대 생명체인 ‘공룡’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수 억년 동안 바위돌로 굳어진 뼛조각 화석이 더러 발견되었을 뿐이지만 지금 세계 여러나라에 공룡박물관이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으며 3차원 영상속에서는 인류가 이 지구상에 출현하기도 훨씬 전인 고대의 밀림 속을 각종의 공룡들이 포효하며 뛰어 다닌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 긴 학명을 가진 공룡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기도 한다. 또한 미국의 헐리우드에서는 공룡을 디지털 복원한 영화 ‘쥬라기 공원’ 시리즈로 우리나라가 수년 동안 자동차를 수출하여도 벌어들이기 어려운 막대한 수입을 가져갔다. 우리는 지금 수 억 년이라는 지질학적인 시간에 비하면 바로 잠시 전이나 다름없는 불과 천 년 전의 신라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복원 내지 재현해 보려하고 있지 않은가? 역사의 진실은 진실대로 당연히 지속적으로 연구 규명되어야 하겠지만,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어떤 학문과는 별도로, 선조들이 이 땅에 남겨놓은 역사와 문화유산을 잘 활용하여 상품을 만들고, 부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다름 아닌 경주의 미래이자, 관광한국의 미래가 아닐는지? 누가 나에게 시킨 사람은 없지만, 나는 지금 꿈속에서 본 신라왕경을 완성해 가고 있으며, 언젠가 전세계의 관광객들이 비록 가상현실 속일지라도 서라벌의 저자거리를 걸으며 신라인들을 만나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쥬라기 공원의 공룡들 이름을 외우듯 신라 역대왕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게 되는 날까지 나는 역사의 날조(?)를 지속해 갈 생각이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 이란 격언을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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