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의 역사는 음반의 역사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주에서 이 박물관을 시민여러분과 함께 오랫동안 향유하고 싶습니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유충희 관장(55)의 말이다. 지난 4월, 보문단지에 국내 최초, 최대 규모의 대중음악과 오디오 관련 전문 전시관인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이 개관됐다. 유 관장은 개인적인 취미 정도의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공적인 마인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다.
유관장과 한국대중음악 박물관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의 문화적 기여는 지대하다. 박물관에는 수식어도 화려한 유물의 반열에 드는 명기가 상당수다. 값으로 매길 수조차 없는 한국대중음악사적 자료와 명기들이 즐비하다. 이것이 경주 시민이 복된 이유다.
유 관장과 만난 ‘랩소디 인 블루’는 초대형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1층 음악카페로 이 공간만 하더라도 엄청난 명기들이 가득하다고 귀뜸했다.
소설(小雪)을 지나 두툼한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겨울의 초입이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을 찾아 우리 삶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수많은 우리의 상처와 이별을 보듬는 노래와 음반을 만나는 호사를 누려보시라.
-‘미쳐야 미친다’...“저도 반풍수가 다 된 거죠”
“음악에 관심이 있으니 관련서적을 보게 되고 관련전문가를 만나 대화를 하고 음악적 지식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반풍수가 다 된 거죠. 하하”
소장하고 싶으면 딜러에게 연락을 취해 기다려 구하고 그렇게 하나둘씩 30여 년 음반 수집을 한 것.
유 관장은 부산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면서 그저 ‘노래 듣는 것이 좋아’ 많지 않은 월급을 쪼개 음반을 하나하나 사모았고 이후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도 틈틈이 한국대중음악사를 공부하며 희귀 음반과 대형 스피커 수집으로 폭을 넓혔다.
유 관장의 이야기를 듣고 ‘미쳐야 미친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이렇게 유 관장이 30여 년간 모은 자료는 한국 대중가요 음반 5만여 장을 비롯해 악보, 무대의상, 축음기, 사운드 시스템 등 7만여 점이다.
“이런 자료를 모은 것이 소중합니다. 1907년 첫 유성기 음반은 구할 수 없는 귀한 것이라 봅니다. 최초 대중가요가 부활하기 시작했던 1920년대 ‘희망가’나 ‘사의 찬미’, ‘낙화유수’ 등의 음반들은 최초의 대중가요 효시지요. 또 최초 창작동요 ‘반달’ 등의 음반은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손기정의 감격의 목소리를 녹음한 것, 1940년대 ‘귀국선’, ‘가거라 삼팔선’, 1950년대 ‘굳세어라 금순아’, ‘비내리는 고모령’ 등 한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음반으로 한국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기록으로서의 음반들입니다”며 아끼는 음반을 소개했다.
-가수 한대수 씨, 유 관장의 진정성 알고 다른 무대 고액 개런티 고사하고 경주 무대에 서
이 박물관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도움없이 설립한 개인박물관으로, 지하 1층·지상 3층(층당 1020㎡ 규모) 규모다. 1층에는 초대형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직영 음악카페(랩소디 인 블루), 2층에는 시대별로 엄선한 1000여 점의 음반 상설 전시실, 3층에는 오디오 관과 시청각실을 갖췄다.
또한 지하에는 유물 수장고와 연구공간, 창조적 체험학습관, 야외에는 데크형 공연장(1500㎡ 규모)도 갖췄다. 전시공간이 부족해 소장품 7만여점 가운데 명음반과 희귀 음반 등 1000여 점을 현재 전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민족의 노래를 최초로 녹음한 실린더 음반을 국내에선 처음으로 전격 공개하고 전시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공개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던 이 실린더 음반은 미국 국회 도서관에 전시중인 원본을 어렵게 복제해 온 것.
또, 올 크리스마스엔 경주 최초로 한국 포크 록의 전설 한 대수 씨를 만날 수 있다. 25일, 이미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단독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SNS를 통해 먼저 한대수의 경주 공연소식이 알려지면서 박물관 사무국에는 티켓 오픈 이전부터 공연 관련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대수 공연의 경우 그가 여러곳에서 섭외를 받은 것으로 압니다. 다른 곳에선 수익사업으로 하지만 우리는 수익사업으로 이 공연을 올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어선지 ‘이 좁은 무대’를 기꺼이 수락해 주었습니다. 300명을 초대해 무슨 수익이 있겠습니까?”
대중음악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런 공연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유 관장의 순수한 진정성을 알고 한대수씨도 더많은 개런티를 제공하겠다는 무대를 고사하고 경주 이 무대에 서는 것.
-대중음악박물관으로 경주시민과 국민들이 많이 올 수 있는 공간으로 활성화 해야할텐데...,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은 최근 국내 최초 대중가요 관련 박물관으로, 까다로워진 박물관 등록을 통과한 대중음악계 최초 1종 전문박물관으로 지정되는 경사를 맞았다. 여러 박물관이 있는 지역에서 경주국립박물관과 함께 유일한 전문박물관이 탄생한 것.
“30여 년 수집했던 어려운 과정이나 전시 공간을 개관했을때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말로 본격적인 난관의 시작인 것 같아요. 활성화는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경제성(수익성)을 염두에 뒀다면 대도시에 개관했을 것입니다. 경주에 터전을 잡기 전부터 경주에 자주 오곤했는데 천년 고도 경주는 제게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보문단지의 관광 인프라와 고도라는 점 등은 박물관의 조건을 갖추기엔 적소라 판단했지요. 경주를 선택한 이후도 전혀 후회 한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혹자들은 오해를 하기도 한다. 부산서 사업하며 돈 벌고 경주에서 박물관 티켓 팔면서도 돈을 벌려고 한다는. 그런 오해를 받을때면 너무 서운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전국의 애호가, 음대생들, 관련학도들은 엄청나게 찾아온다. 아쉽게도 경주시민들의 입장료는 40% 할인인데도 관심도가 낮아 아직 많이 찾고 있지 않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수익사업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경주시민부터 우선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경주시민의 입소문이 절실합니다. 수 천만원의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여러 귀한 공연 콘서트를 기획하는 것도 홍보 마케팅 차원에서 준비하는 것이고 경주시민 속으로 파고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경주시의 고급한 문화 장치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운영 철학은
“앞으로 현재의 소장유물들을 DB화 해 한국대중음악대백과 사전을 만들려 합니다. 아직 이런 예는 없으며 최초의 작업이 될 것입니다. 한국음반 100년사 동안 대중음악이 어디서, 어떻게, 누가, 몇 곡이나 불렀는지에 대한 정리조차 안돼있지요. 1896년부터 지금까지의 대중가요들을, 소장하고 있는 유물과 가지고 있지 않는 유물들까지 발굴해 집대성 할 예정입니다. 이것이 한국대중음악이 지금까지 눈부신 발전을 이룬 기초토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며 운영의 어려움도 산재해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작업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아카이브 작업은 공적인 신념 없이는 추진하기 어려워 보였다. 또 희귀음반에 수록된 가요를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과 한국대중음악 발전을 위해 체계적으로 대중음악사를 배우는 6개월 과정의 단과대학(한국 대중음악 아카데미)과 성인 가요제, 대학가요제 등도 열고 싶다고 했다.
“저는 부산에서 중소기업 (주)한국코아엔지니어링)을 운영합니다. 기업인으로서 문화사업도 사회환원사업의 일환으로 봅니다. 오랫동안 이 박물관을 여러분과 함께 향유하기 위해선 연구나 토대가 마련돼 있지 않으면 금방 어려움이 올테고 힘들어질 것입니다. 애초부터 후원을 바라거나 조건부는 결코 없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시는 경주시와 시민들의 격려는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