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삶을 살면서도 공동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지식인 혹은 리더의 중요한 덕목이라면 이를 실천하는 이가 우리 곁에 있다. 공공의 사명감으로 고립을 자처한 경주에서 풍류도 이해의 핵심인 한민족 초기 고대사를 궁구하고 현재화해 미래의 새로운 틀을 제시하는데 몰두하고 있는 현우 정형진(57)선생이다. 선생은 또 남북통일 후 역사정체성 통합 문제와 유라시아 문명사의 관점으로 풍류도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우 선생은 바로 풍류도의 공공정신이 빛나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삶을 보여주는 이였다. 25년간 경주에서 매진해 온 연구결과를 토대로 저술 활동과 전국의 공공기관이나 기업등에서 강의를 하는 등 그간의 연구 업적이 큰 반향과 공감을 얻고있는 차제, 가을비가 내리는 지난 13일 시내 한 찻집에서 선생을 만났다. 선생과의 만남은 ‘현자’의 현시였다. 지난 3일 정부가 중·고교 역사교과서를 국정화(國定化)하기로 확정 고시한 가운데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는 즈음이라 현우 선생과의 인터뷰는 더욱 의미가 배가됐다. -한민족 초기 공동체 역사 완성... 단군왕검시대부터 삼한 형성과정 정리 현우 선생은 첫 일성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이 올바로 역사를 인식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최근 인터뷰를 인용하면서 “70년 분단을 극복하고 한반도 통일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도 올바른 역사관과 자부심은 매우 중요하다”며 뚜렷한 역사관이 필요하다는 데 맥을 같이했다. “박 정부는 한민족의 역사에 자긍심을 가지자고 한다. 그렇다면, 근현대사는 물론, 상고사는 더욱 중요하다. 뿌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실증사학이라는 미명하에 강단에서는 이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나는 조상들이 남긴 종교유적지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멀리는 만주와 중원 지역도 여러 번 답사를 했다. 2003년, ‘부여족의 기원과 이동’, ‘고깔모자를 쓴 단군(백산자료원)’을 발표하기 시작해서 지난해 5월 ‘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까지 5권을 발표했다. 이로써 한민족 초기 공동체의 역사를 완성했다. 단군왕검시대부터 삼한이 형성되는 과정까지를 정리했다” 신라사의 경우 삼국사기에 내용이 있음에도 실증사학자들이 내물왕 이전의 역사는 인정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한민족 초기 공동체를 주도한 사람들이 어떤 이들인지, 그들의 문화가 어떠했는지 연구해보고 싶었다. 이러한 큰 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990년 경주로의 ‘자발적인 귀양’을 자처했다”고 하는 선생은 이 주제로 거의 20여 년에 걸쳐 다섯 권의 책을 저술한 것. “15년 동안은 자료수집, 분석, 연구에만 전념했다. 이후 나름의 가설이긴 하지만 한민족 초기공동체의 형성을 밝힐 수 있었다. 이는 독자들의 긍정적 반응을 불러왔으며 나름대로 정리된 역사 흐름을 설명했던 것이 공감을 얻었던 것 같다” -역사문화 도시 경주... 정작 가장 중요한 신라 리더그룹의 정체성조차 합의된 부분 없어 “고조선 이전의 역사를 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논지와 주장은 단군 신화는 신화이지 역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뿌리가 없는 공동체다. 고대사에서 삼한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그것을 명확하게 밝힌 작업은 드물다. 신라는 박혁거세 집단 즉 진인 집단이 진한에서 출발했다가 김씨 변한으로 바뀐 정치체가 신라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어떤 학자도 설명하지 못했다. 경주의 경우, 단군왕검 사회의 맥을 이은 박씨계 진한과 마한 세력과 연결되는 고조선 계통의 육부촌 사람들, 이후 변한세력들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신라에 진한변한마한이 모두 유입돼 리더그룹이 형성된 특색 있는 공동체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민족 역사의 흐름을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이동한 관점으로 보면 신라에, 경주에 한민족사에서 가장 중추적 리더 그룹이 내려왔고 정신문화도 사실은 서라벌에 발아된 것으로 밝혔다. 박,석,김씨, 육부촌의 6성, 김수로왕의 후예가 인구의 52%나 된다며 단군신화의 주도층도 신라에, 고조선 세력도 경주에 왔으며 변한도 경주로 왔다는 주장이다. 한민족의 주도그룹이 들어와 그들이 모여 나라를 이룩한 것이 바로 신라라는 것. 이는 한국사의 흐름이 신라로 계승되었다는 역사적 근거를 마련한다. “신라가 역사문화 도시라고 자처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신라의 리더그룹의 정체성조차 합의된 부분이 없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그것을 만든 주체가 누군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고대문화는 더욱 그렇다. 왜냐면 고대 문화는 리더들의 의식이 반영된 흔적이고 경주 문화도 문화형성 초기 주체들에 대한 정체성 확인이 전제되지 않으면 신라 문화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측면에서 제가 한 공부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삼한이라는 공동체 이해하면 남북한 정체성 통합에도 크게 기여할 것 선생은 “상고사의 흐름에 대해 제 자신이 먼저 알고 싶었고 대한민국 공동체 정체성 이해에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도 아무도 제대로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에, 누군가는 제대로 정립해 놔야 되는 부분이라고 판단했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파악할 뿌리가 없지 않은가. 정부도 국사를 단일화하고 상고사를 강화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강화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하는 이는 별로 없다”며 다섯 권의 저술을 통해 시민이나 국가 리더들이 선생이 제기한 관점을 이해하면 통일시 남북한 정체성을 통합하는데 매우 주요한 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초로 삼한을 새롭게 정리하고 보니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 모두에게 삼한인들이 들어가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통일시 남북한 주민을 통합할 때 삼한이라는 공동체, 즉, 삼한일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삼국통일이라는 논리가 그대로 성립된다. 이것이 공론화되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면 통일 이후 남북한 정체성 통합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풍류도의 핵심적인 사상 바탕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접화군생’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배는 고파도 기분은 좋은 거죠. 조금씩 공감하는 분들이 늘고 있으니까요. 통일과 통합의 과정에서 이런 정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특히 청소년에게 재교육을 시켜 공동체를 사랑하는 리더들을 길러내는, 경주신화랑풍류체험벨트 사업같은 형상적인 것으로 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정신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풍류도의 핵심적이고 사상적, 수행적인 면을 바탕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실천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며 접화군생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통일과 통합의 과정에서 풍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참여해 동북아 한중일 경쟁 구도에서도 좀 더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젊은이들이 리더가 되는 상황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며 이는 곧 선생의 꿈이라고 했다. -풍류도는 바로 박혁거세 집단이 계승해온 정신 그는 또 우리 조상이 가진 풍류도가 어떤 사상이었기에 유불선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던 것에 풍류도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풍류도는 우선, 박혁거세 집단을 설명이 전제돼야 한다. 진한 사로국의 초대 왕으로 추대된 박혁거세가 단군왕검의 제정일치적 종교문화를 계승하고 있고, 그의 아들 남해왕을 차차웅이라고 불렀으며, 통일신라 초기의 대학자 김대문은 차차웅은 무당이라고 해석했다. 풍류도는 바로 박혁거세 집단이 계승해온 정신이었던 것이다” “풍류정신의 핵심은 ‘홍익인간’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인데, 최치원이 쓴 난랑비의 서문에서 ‘접화군생(接化群生) 즉, 풍류도인은 지혜롭지 못한 중생들을 만나 교화시킨다’고 한 것은 바로 홍익인간의 다른 표현”이라고 했다. 한민족 초기 공동체의 형성과 초기 공동체 중에서 풍류도는 어떤 그룹의 정신세계이고 종교문화인지를 판단하고 이것이 해결되면 풍류 문화를 설명할 수 있다. 삼국유사 속에 숨어 있는 문화 코드를 이해하면 풍류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해진다. -경주는 한국의 정신적 고향, 새롭게 시민 교육하는 중요한 역할 할 수 있을 것 “한민족 초기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와 그 맥락 속에서 풍류도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사상적 의미를 밝혀보기 위해 보따리 싸서 여기 경주에 내려왔다. 경주는 원효, 자장, 고운 선생, 수운 선생, 범부 선생 등 한국 정신사에서 중요한 분들이 서라벌에서 나고 활동하신 곳이다. 경주가 무연고여서 공부하기에는 더욱 좋았다. 답사하고 독서하기 좋은 곳으로 전생에 이곳에서 몇 번은 살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곳이다” 경주 시민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경주 생활 25년 동안 고작 3년 정도라고 한다. 철저하게 ‘백수’로 고립을 자처한 것은 사람을 만나기 시작하면 공부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선생은 경주에서도 지난해 11월부터 현우(玄牛)역사문화연구원에서 경주 역사문화를 인식하고 공감하는 시민강좌 ‘문화 코드로 풀어본 삼국유사’30강을 해오고 있다. 또 ‘신라 얼 문화 연구원’ 이라는 임의 단체를 만들어 내년부터 본격적인 강의를 하고 답사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경주는 한국의 정신적 고향이다. 신라의 성립을 재해석하고 있고 그것이 통일이후 기저 정신으로 중요하므로 새롭게 시민 교육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문화운동부터 시작해 진정한 한국학 센터가 경주로 올 수 있는 계기로써 문화 운동이 결집되길 바란다. 풍류도는 문무를 겸비한 풍류정신을 가진 활달하고 호방하고 웅비하려는 의지를 지닌 인재를 길러냈다. 진정한 국학, 즉 풍류 정신의 기본 정신을 발현하기에 가장 합당한 경주에서 교육운동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간의 연구활동이 전 국민을 교육할 수 있는 뿌리 공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논리적인 보탬은 될 것이라 본다” #현우 정형진은 1958년 경북 문경 출생,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5년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한민족의 상고사를 주도한 지배 종족에 관한 연구서를 출간했다. 저서로는 한민족의 주요 구성 종족인 부여족의 기원과 이동에 관한 연구서인 ‘고깔모자를 쓴 단군’(백산자료원, 2003년), 신라 김씨 왕족의 뿌리를 밝힌 ‘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왕족’(일빛, 2005년),한민족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환웅족의 유라시아 이동사인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일빛, 2006년) 등이다. 논문으로는 ‘시경 한혁편의 한후와 한씨조선에 관한 새로운 견해’(단군학연구 13호)가 있다. 포항MBC라디오 열린 세상 코너 ‘정형진의 고대 문화 새로 읽기’를 진행했으며 GBN경북방송에서 ‘정형진의 역사 산책’을 연재 중이다. 또 부산KBS시민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선생은 올 가을 삼국유사 10강을 했으며 새로운 삼국유사 해설로 호응을 이끌어 낸 이 강의는 내년 봄에 다시 연속해 10강을 더 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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