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자리 잡은 습관은 웬만해서 안 바뀐다. 양치를 할 때 왼쪽 어금니를 닦으려면 왼손이 가까이 있어 더 편할 텐데도 늘 오른손을 고집했다. 오른손잡이이기도 하겠지만 왠지 왼손을 그것도 양치처럼 정교(!)한 작업을 하는데 쓴다는 게 좀 부담스럽다. 인류의 다수를 차지하는 오른손잡이가 ‘바르다’는 인식에 따라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 부르는 문화사적 근거도 있다. 이건 좀 오버지만 아무튼 습관은 잘 안 바뀌기에 무섭다는 이야기다. 한편, 우연한 행동이 습관이 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정말 우연히 한 행동이 절대 안 바뀔 것 같은 습관을 수정하기도 한다. 요즘은 머리를 감을 때마다 온몸으로 후회를 한다. 며칠 전 한 운동이 너무 무리였던지, 허리가 아파 대야에 물 받아놓고 웅크리고 머리를 감으면(사실 이 자세가 한국인 표준 자세 아닌가?) 허리가 너무 아프다. 그냥 서서 샤워하고 면도하면 될 텐데 매일 아침 끙끙 앓아가며 머리를 감는다. 나도 그렇고 습관도 참 미련하다. 그러던 중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었으니, 무릎 하나를 꿇었더니 정말이지 머릴 감는 게 하나도 안 아팠다. 그 다음부터는 예상대로 무릎 꿇고 머릴 감는 게 습관이 되었다. 함부로 무릎 꿇는 게 아니라고 배워왔건만…. 한문사전으로 병(病)이라는 글자를 찾아보면, 제일 먼저 통증, 질환 등의 정의가 나오고 바로 다음 나오는 게 ‘나쁜 버릇’이라는 정의다. 이 얼마나 철학적인 정의인가! 질병이나 앓는 것이 병인 건 다 알지만 병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버릇, 곧 생활 습관 또한 병으로 정의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병에 대한 원인과 결과 전체를 아우른 정의다. 영어사전에는 이런 건 없다. 만약 뚱뚱한 사람이 있다면,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살이 찐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 먹는 습관 때문이다. 비만으로 야기되는 각종 질병 또한 먹고 움직이는 습관에서 시작된다. ‘I am what I eat’라는 말이 있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인 히포크라테스가 한 금구(金口)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살아가느냐, 다시 말해 내 식생활 습관에 따라 내가 건강할 수도 병에 취약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먹는 습관만 중요할까. 어떤 생각[I am what I think]을 하는지, 어떻게 걷고[I am how I walk] 어떻게 행동[I am how I behave]하는지도 다 나를 만드는 습관이고, 그것이 만든 나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지만 잘 모니터링해도 내 미래가 어떨지 알 수 있다. 용한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습관은 고스란히 나를 구축하고 있으니 이것만큼 내가 누군지 알려주는 확실한 정보가 있을까. 습관이 대를 이어 전염되기도 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습관은 본인 뿐 아니라 자녀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구부정하게 걷는 아빠 뒤로 애답지 않게 구부정하게 걷는 아이를 보며 ‘씨도둑은 못 한다’고 웃어본 경험들 있으리라. 이것은 애교라도 있지 습관의 심각한 경우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대학살(Holocaust)의 생존자들은 그 후유증을 한 평생 겪는다는 건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부모들의 그 정신적 외상(trauma)이 다음 대(代)로 대물림된다고 전문가는 경고했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연구진은 나치 수용소에 억류돼 고문을 당했거나 숨어서 한 평생을 살았던 유대인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보니, 유전자 변화로 인해 어른이든 자식이든 스트레스 장애 위험이 크게 높아져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자녀 세대의 스트레스 장애 위험이 높은 것이 부모의 부정적 경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상이 굳은 사람만 보더라도 자기를 잡으러 온 비밀경찰이 아닐까 겁먹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인간에 대한 믿음이 건강하게 자라리라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하는 모든 행위들을 모방하면서 커가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습관과 태도는 그들 삶의 규칙이고 기준이다. 사소해 보이는 습관이라도 나뿐 아니라 우리, 나아가 자식들에게까지 전염된다면 습관, 그냥 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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