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문학의 거목인 박목월 선생과 김동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문학상인 동리목월문학상에 올해도 두 명의 수상자가 각각 선정됐다. 제18회 동리문학상에는 권여선 소설가의 장편소설 ‘토우의 집’과 제8회 목월문학상에는 문정희 시인의 시집 ‘응’이 각각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 올해는 목월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해로 2015동리목월문학상의 의미가 더욱 빛났다. 두 수상자를 서면으로 미리 만났다.
제18회 동리문학상 권여선 소설가-“인혁당 사건 자체보다 개인들 고통에 더 집중했죠”
-동리문학상 수상자로서 수상소감은?
빈말이 아니라, 정말 의외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동리문학상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제가 받을 가능성이 가장 적은 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 상을 받기에는 연륜도 부족하고 문학적 지향도 좀 다르지 않나,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을 주신다니 어리둥절하고 제 단견이 어리석게도 느껴지고, 또 심사위원들이 ‘토우의 집’의 어떤 부분을 보고 상을 주셨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특히 ‘토우의 집’이 평자나 독자들에게 별로 주목받지 못한 터라 더 기쁨과 고마움이 큽니다.
-1970년대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을 배경으로 삼은 이번 수상작, ‘토우의 집’의 집필 배경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주십시오.
인혁당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느낌이 왔습니다. 소설가가 되기 전이었는데도, 언젠가 이 사건에 대해 쓰고 싶다, 써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등단한 후에도 쉽게 써지지 않았고 또 쉽게 써서도 안 될 것 같아 오래 품고만 있다가 2년 전쯤에 이제는 써야겠다 싶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한 자료와 작품들이 있었기에 저는 사건 자체보다 그걸 겪은 개인들의 고통에 더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만은 않았는데, 그들의 고통을 전시하거나 과장하거나 이용하는 건 아닐까 두려워, 순간순간 멈춰서 돌아보아야 했습니다.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 것은, 우리에게는 누구나 그것을 상실하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목숨 같은 뭔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권력도 그것을 빼앗을 수 없고 빼앗아선 안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당하게 빼앗긴 사람들이 겪는 고유하고 내밀하고 치명적인 상처에는 무한한 위로와 보상과 사과가 주어져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명령은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동리 선생의 단편에 대한 논문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에 대한 소논문을 쓰기도 했는데 동리 선생이 작가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말씀해 달라.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동리 선생의 소설이 삶의 본질을 핵으로 틀어쥐는 강렬하고 순수한 형식미가 있다면, 저는 반대로 현실의 자질구레한 부분을 놓지 못하는 편입니다. 소설세계로 보면 대척되는 스타일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한때 동리 선생의 작품에 매혹되었고, 지금도 그분의 미학에 경외심을 품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집필 계획과 행보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내년쯤에 단편집을 묶어 낼 예정입니다. 다른 소설가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의 일상은 무척 단순합니다. 청탁이 오면 소설을 쓰고 겨우 마감에 맞춰 보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 다시 쓰고, 그런 식입니다.
청탁이 많아 혹사를 당하지도 않고, 청탁이 없어 판판 놀고먹지도 않으니, 소설가로서는 제법 행복한 상태라고 할 수 있지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계속 단편도 쓰고 중편도 쓰고 장편도 쓸 생각입니다.
기왕 쓰는 김에 끊임없이 어떤 변화를 꾀해보고 싶습니다. 적게 변하든 많이 변하든, 좋게 변하든 나쁘게 변하든, 복제보다야 나쁘겠습니까.
제8회 목월문학상 문정희 시인-“생명의 야성성을 노래하는 시로 매혹을 선물하고 싶었죠”
-목월문학상 수상자로서 수상소감은?
아름다운 시인 목월의 이름으로 상을 받게 되어 기쁘고 뭉클합니다. 목월 선생님께서 추운 층층계를 밟고 올라가 밤 깊도록 시를 썼듯이 저도 죽는 날까지 추운 층층계를 밟고 올라가 시를 쓸 것입니다. 오래 전 발표한 나의 시 중에 “첫 만남” 이란 시가 있습니다. 가을 날 머리를 상고로 깎은 목월시인이 눈이 큰 동구의 시인을 소개해 주었다는 시입니다. 그 시인은 릴케이지만 말하자면 시입니다. 목월은 일찍이 내 열일곱 살 소녀 안에 살아있는 시인을 꺼내준 시인입니다.
-수상시집 ‘응’은 독특한 제목부터 눈길을 끕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이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감상의 코드를 말씀해 달라.
‘응’은 너와 내가 해와 달이 되어 지평선에 함께 떠있는 눈부신 언어의 체위를 말합니다. 한국어지만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문자요, 대답이 ‘응’입니다. 시가 차오를 때 시인의 대답도 ‘응’이 아닐까 합니다.
-시집 속에 나혜석 등 선배 여성을 주제로 쓴 시가 있는데 이유가 있는지?
이번 시집은 남녀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생명의 본질로서의 여성성이 주제입니다. 자궁은 여자의 몸에 있지만 인류의 자궁이지요. 여자는 그 자체로 철학이요, 현재입니다. 현재는 영원한 알몸이구요. 마음이라는 과거가 아니라 몸과 감촉의 현재로 불러낸 여자들입니다.
-시집 ‘응’은 원초적이고 야성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나의 펜은 피입니다. 자본과 속도와 경쟁이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는 시대,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모태와 사랑을 노래하고 싶었습니다.
-이 시집이 2000년대의 독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 평론가가 말했죠. “문정희는 항아리만한 몸뚱어리로 생명의 언어를 줄줄이 낳은 대지모(大地母)를 꿈꾸는 시인이다. 기존의 것들에 대한 저항정신과 대결의지로 남녀 차별로서의 페미니즘을 넘어서서 여성의 정체성을 생명의 징표로 끌어 올린 시인이다” 라고요. 이 시대의 언어는 흙탕물처럼 더렵혀져 있고, 불안하고 산만합니다. 싱싱한 생명의 야성성을 노래하는 시집으로 메시지나 감동보다 매혹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목월 시인과의 인연은?
목월은 미당과 함께 스물 두 살의 나를 문단에 등단시킨 심사위원입니다. 젊은 날 뉴욕 퀸즈의 한 고등학교에서 얼굴색이 다른 학생들에게 한국시 특강을 하며 목월의 시를 읊다가 그만 그 쓸쓸하고 아름다운 시의 가락에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목월은 천부의 시인으로 해방 공간의 혼란기에 민족의 슬픔과 격앙을 시로 승화시켜준 시인으로, 한국 서정시의 큰 물줄기입니다.
-시인에게 문학이란?
문학은 영원한 질문이 전부입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오늘도 나는 씁니다. 오직 쓰는 것으로 존재합니다.
-앞으로의 집필 계획과 행보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시인이 바쁘다고 대답하는 것은 외롭고 불행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11월 초 스웨덴이 준 시카다상 일본 수상시인의 초청으로 도쿄에서 한중일 시인이 만나 ‘세계에 표류하는 포에지’를 주제로 청중과 함께 시 축제를 펼칠 계획이 있습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의 임기가 내년 봄까지입니다. 이것을 마치면 다시 떠돌이, 외톨이, 독립군의 작가로 돌아가 자유와 고독을 포식하고 싶습니다. 나의 시집이 번역 출판된 외국에서의 시낭송 초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