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VP. 초대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알파벳 네 글자다. 프랑스 말 ‘repondez s’il vous plait’를 줄인 것인데, 우리말로는 ‘회답 주시기 바랍니다’정도 된다. 초대에 대한 회답. 어찌 보면 쉬운 일이지만 우리 경주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RSVP를 요청받는다.
회사 회식이나 동창회 모임이 그렇다. 작은 모임이라도 음식점 예약과 같은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임에서도 제때 의사를 알리지 못해 눈총 받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필자가 일하는 문화재단에서도 초대장에 RSVP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지만 회답율은 10%를 밑돈다.
초대에 대한 회답이 없어 공연장이 겪는 어려움은 많다. 초대권 자리는 보통 블록(block)을 만들어 놓는다. 다행히 초대받은 사람들이 대부분 오면 블록이 채워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블록이 듬성듬성해진다. 마치 탈모증에 걸린 환자의 머리모양 같다.
참석여부를 미리 알려주면 자리 조정을 통해 못 오는 사람대신 누군가가 공연을 볼 수 있어 좋다. 물론 객석 탈모현상도 막을 수 있다.
뭐니 뭐니 해도 RSVP가 지켜지지 않는 대표사례는 결혼식 초대일 것 같다. 결과는 대략 둘 중 하나다. 음식이 모자라 하객에게 불평을 듣거나 반대로 음식이 남아 낭비를 하게 된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후자가 훨씬 흔한데 그 낭비의 국가적 총액이 만만치 않다는 분석을 본 적이 있다. 참석여부를 미리 알려주면 이런 불합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초대를 하는 입장에서 몇 명이 올 것이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음식의 양을 정해야 하고, 자리 배정도 신경써야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예산의 문제이고 후자는 의전의 문제다.
이처럼 초대자는 늘 예산과 의전에 대한 불확실성을 부담하게 된다. 하지만 초대를 받는 입장은 다르다. 덜 절박하다. “설마 나 한 사람 회답 안한다고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치랴.”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떤 사람은 RSVP를 요청하고도 초청대상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하기도 한다. 피곤한 일이지만 불확실성이 크게 줄어든다. 하지만 필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초청받는 사람이 다수이기에 초청하는 소수(또는 1인)에게 미리 연락을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진상들도 있다고 한다.
전화를 해도 “좀 두고 봅시다.”하면서 즉답을 미루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치고 다음 확인전화에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드물다. 누구나 초대를 해 본 적도 있고, 초대를 받은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해결책은 분명하다.
초대받는 사람이 초대하는 사람의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헤아리면 된다. 아마 결혼식을 한 번쯤 경험하면 상대방 마음 헤아리기가 조금 더 수월해질 것이다.
초대에 대한 회답은 낭비를 줄이는 소극적인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시간과 비용을 행사의 다른 부분에 쓴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행사의 질이 더 높아질 것이다. 이는 십중팔구 행사의 성공과 직결된다. 이처럼 초대에 대한 회답은 예측가능성을 높여 낭비 방지와 행사 성공에 기여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타고난 본성이 아니고 길들여지는 습성이다. 따라서 교육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학교에서는 에티켓 교육으로, 사회에서는 캠페인으로 RSVP 습관을 들이는 것이 어떨까? 품격 있는 도시, 경주에서 특히 필요한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