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파리바*트 같은 빵 가게에 가서 “생일 케이크 하나 주세요” 하고 주문하시나요? 요즘은 이런 사람 분명 없겠지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입니다. ‘빵 가게에서는 빵만 팔지 생일 케이크는 팔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요?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펴봅니다. 여기는 어느 가정집 거실. 시간은 저녁 7시 즈음. 엄마와 누나 그리고 막내인 아들이 거실에 모여 있습니다. 꼬르륵~ 배가 고파 배에서 요동을 치는 아들 녀석은 집요하게 엄마를 괴롭힙니다. “엄마, 나 이거 한 입만 먹어보면 안 돼?” 하니까 엄마는 “안 돼, 아빠 곧 오실거야, 조금만 더 참자 응?”하며 막내를 다독입니다. 남자들은 보통 여자들보다 배고픔에 더 취약하잖아요. 아들은 아빠가 퇴근하고 벌써 오셨을 시간인데도 아직 소식이 없자 조바심에서 하는 말임을 잘 아는 애 엄마는 그저 아들을 구슬릴 뿐입니다. 엄마도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애들만큼이나 조바심이 나 연신 벽시계를 쳐다보고요. 기다림이 지쳐갈 무렵, 문밖 엘리베이터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따각~따각 그 구두소리는 방향이나 세기로 봐서 분명 아빠란 걸 애들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드디어 아빠가 오셨다! “누나 얼른 불 꺼, 불” 동생은 누나가 이게 깜짝 파티(surprise party)란 걸 벌써 까먹은 게 아닐까 의심하며 얼른 불 끄라고 몸짓을 크게 합니다. 누나는 더 커진 눈과 더 작아진 목소리로 “네가 먼저 촛불을 켜야지 인마! 불만 끈다고 서프라이즈 파티냐?” 눈을 부라립니다. “아, 맞다. 흐흐 누나 말이...” 엘리베이터에서 집까지 30초면 족할 거리라 집 안의 긴장감은 배가 됩니다. 깜깜해진 집 안은 키득키득, 후다닥~ 소리짓과 몸짓이 마구 뒤섞입니다. “어? 집에 아무도 없나?” 잠시 후 낮은 아빠의 목소리가 열린 문 사이로 새어 들어옵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막내 녀석은 준비된 폭죽을 터트립니다. 그 소리보다 더 큰 축하의 박수와 노래가 열쇠를 들고 엉거주춤 서 있는 아빠를 맞이합니다. 아빠는 비로소 상황이 파악됐던지 팔을 벌려 가족을 꼭 껴안습니다. 장황한 묘사로 뭘 이야기하고 싶었냐고요? 밀가루 빵이 생일 케이크로 바뀌는 과정을 설명하는 중이었습니다. ‘케이크’와 ‘생일 케이크’는 완전히 다릅니다. 빵에다가 조바심, 기쁨, 사랑, 행복이 더해야 생일 케이크가 완성되는 겁니다.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살짝 맛만 본다 해도 그것은 그냥 케이크입니다. 불을 껐다 켰다 하고 촛불도 켰다가 끄지 않으면 그저 희멀건 빵 덩어리일 뿐이란 말입니다. 빵집에서 산 빵은 집(외국에서는 home sweet home이라고 하겠죠)에서 생일 케이크로 변해갑니다. 그러고 보니 빵집에서 “저 케이크로 할게요.” 하지 “저 생일 케이크로 주세요.” 주문하지는 않네요. 국악기 중에 대금이라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그 악기 말입니다. 그냥 밑 부분에 구멍 뚫린 나무 사이로 군데군데 작은 구멍 몇 개 뚫린 게 다지만, 대금 독주곡인 청성자진한잎[(청성은 높은음을, 자진한잎은 빠른 곡을 의미한다. 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이라고도 한다.]을 듣고 있노라면 이게 대나무 소리 맞나 싶을 정도로 입에 높고 절절한 쇠맛이 느껴집니다. 나무에서 어떻게 쇳소리가 나는지는 대금 내부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는데요, 침이 대금 취구(吹口)를 통해 관 내부를 태우고 또 태웁니다. 침이 독하다보니 대금 속은 그야말로 까맣게 타들어 간 거죠. 그 결과 대금에서 쇠고리가 나는 겁니다. 갈대 청(淸)이 떨려 매력적인 소리를 만들지만 젓대 소리에 침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플루트 같은 서양악기에서 침은 무용지물이라 무조건 피하지만, 동양악기에서는 평범한 나무 작대기가 오히려 악기나 명기가 되는데 침을 필수조건으로 꼽습니다. 의미 부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지요. 밀가루 빵이 살아 숨쉬고, 나무 조각이 악기가 됩니다. 의미가 부여되면 지금 사는 여기가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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