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토리텔링만큼 진부한 단어가 있나 싶다. 곳곳에서 스토리텔링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경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야기 한 타래가 한 도시나 국가를 먹여 살리기도 한다.
타 지역에 비해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한 경주는 스토리텔링의 수요가 가장 많은 지역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이런 수요에 대응하는 이야기의 공급이 과연 일어나고 있는지를.
근래 경주에서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별로 없었다. 필자는 그 이유가 공급 유인 부족에 있다고 조심스레 진단한다. 간단하게 말해 역량 있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의 참여가 부족했던 것이다. 이들이 경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야기보따리를 스스로 풀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필자의 위와 같은 판단은 21세기 디지털 혁명에 기인한 환경의 변화에 근거한다. 지금은 ‘클릭’ 하나로 순식간에 세계인과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놀라운 시대다.
포털사이트 네이버(naver)만 해도 수 만 명의 이야기꾼들이 현재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경주의 역사문화자원에 익숙한 지역인사들이 주로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이야기 작업을 꼭 경주에서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 작업은 더 적극적인 탈경주(脫慶州)가 요청된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천재 이야기꾼들, 심지어는 재기발랄한 외국작가들도 얼마든지 우리 경주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이야기꺼리가 존재하는 것과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완성도 있는 이야기는 이야기꺼리에 상상력과 창의력이 가미되어 탄생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앞서 말한 탈경주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지역 자원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내외에서 아웃소싱을 하자는 거다.
그럼 우리 경주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경주에 파편처럼 산재하는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원형을 만드는 일이다. 천재 이야기꾼이나 외국작가들은 이런 이야기 원형을 원할 것이다.
따라서 이야기 원형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하고, 공유하여야 한다. 동시에 이야기 원형이 완성도 있는 이야기로 진화되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공모전을 통한 금전적 동기부여도 좋고, 작가 레지던시 사업도 좋다. 현재 계획 중인 신라스토리진흥원의 역할도 이와 다름 아닐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꾼들 사이의 경쟁을 통해 탄생하는 경주의 이야기는 의도하진 않더라도 ‘상업성’을 가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스토리 라인업이 좋은 1차 저작물(텍스트)은 드라마, 영화, 공연물, 게임, 전자출판 등 다양한 형태의 2차 저작물로 확장이 가능하다. 만약 경주시가 앞의 활동을 통해 1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엄청난 액수의 저작권료를 챙길 수도 있다.
경주시가 ‘리지니’와 같은 블록버스터급 게임의 이야기 원형을 만들어 엔씨소프트에 팔수도 있는 것이다. ‘10만 스토리텔러 양성 프로젝트’라고 하면 다소 과장된 표현일까? 10만명의 이야기꾼을 불러 모아 신라의 이야기 원형에 스토리를 입힌다면 경주를 대표할 수 있는 걸작 한두 편쯤은 반드시 나올 것이다.
20세기에 불가능했던 이 프로젝트가 요즘에는 큰 비용을 치루지 않아도 가능하다. 더욱이 천년왕국 신국의 땅 신라의 이야기는 천재 이야기꾼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매력적인 이야기 원형과 이를 뒷받침하는 디지털 환경이 바로 눈앞에 있다. 이젠 다음에 할 일이 자명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