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폐막한 ‘실크로드경주2015’에서 가장 하이라이트 인기콘텐츠이자 메인 콘텐츠를 손꼽으라면 단연 솔거미술관의 존재였다. 주말의 경우 하루 1500여 명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실크로드경주2015 폐막 이후에도 솔거미술관으로 향하는 순례와도 같은 관람자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채색에 길들여진 관람자들에게, 고요한 수묵의 대작들이 전하는 정신성 앞에서 울림이 컸던 관람자들의 안목이 입소문으로 이어진 것이다. 진정한 명작을 알아본 것.
금세기 화단에 다시 나오기 어려운 한국화의 거목으로 이름 석자를 걸고 신라의 화려했던 수 만명 창조의 혼신들을 접하는 즐거움으로 남산 자락에서 작업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소산 박대성 화백(70).
신라인으로 자처한 지 오래다. 박 화백의 작품은 ‘고대의 꽃’이라 할 신라 경주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가장 한국적이면서 경쟁력 있는 독특한 한국적 정신의 정수만이 모여져 있다.
우리의 ‘정신과 저력’을 믿는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역작들을 솔거미술관에서 보여주고 있다.
실크로드경주2015개막에 맞춰 개관한 솔거미술관은 60여 년 창작 여정의 결과물인 박대성 화백의 기증작품 830점을 기본 소장품으로 출발했다.
솔거미술관의 개관 기념전시는 ‘불국설경’을 비롯해 ‘독도’, ‘송(松)’, ‘남산’, ‘길오양도’등 최근작까지 망라한 대작도 그러하지만 아기자기한 소품과 박 화백의 소장품을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지난 9일, 박 화백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 솔거미술관은 연신 영탄사를 쏟아내며 작가의 작품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관람자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개관 이후 자주 미술관 찾아 불원천리 자신의 작품 감상하는 이들 맞아
엑스포 공원 내 경주타워 뒤편, 엑스포 정경 중 하이라이트지이자 자연미가 압권인 연못의 정경을 최대한 미술관으로 끌어들인 솔거미술관의 전모가 나타난다. 설계는 승효상 건축가가 맡았다.
화룡점정격인 천혜의 위치에 있는 미술관을 오고가는 길은 자연을 벗삼기 좋아 박 화백을 만나다는 즐거움은 배가된다. 박 화백은 개관 이후 거의 매일 미술관을 찾아 국내외 유명 인사들을 비롯해 불원천리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박 화백은 신작 ‘독도’에 대해 “길이 8m에 이르는 대작으로, 용의 오족이 붉은 여의주를 꼼짝 못하게 움켜쥐고 있는 모습에서 붉은 여의주는 일장기와 겹쳐져 한일관계를 암시하는 듯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아직도 망언을 일삼는 일본의 야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했지요”라고 전했다.
또 다른 신작 ‘송(松)’은 미술관의 이름인 솔거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린 소나무 그림에 새가 와서 부딪혔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박 화백은 “소나무는 우리 정서를 대변하는 대표적 자연이다. 소나무는 그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강한 기상을 나타낸다”며 “이 작품은 이번 전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라고 자신있게 피력했다.
-“‘압도’, ‘감동’이라는 말을 실감했죠. 영원의 한 순간이 포착된 것 같아요”
‘축복을 받은 듯한 상상밖의 그림’, 마치 신과 접속의 경지에 다다른 것 같은 작품 앞에 서면 박 화백에게 절로 헌사를 바치게 된다. 박 화백의 다양한 작품을 편안하게 마음껏 감상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것도 우리 지역에서...,
포항에서 온 이미정씨 부부는 “극사실적인 작품은 사진을 확대한 것처럼 리얼하게 묘사해서 경이로웠습니다. ‘금강역사’는 눈동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지요. 색이 화려한 서양화를 주로 접하다가 수묵화를 보는데도 생동감이 넘치고 역동적이어서 놀라울 뿐입니다”
또 대구서 온 양미란, 차동욱 부부는 “미술관에 처음 들어설때부터 소름이 돋아 지금도 가시질 않아요. ‘압도’, ‘감동’이라는 말을 실감했죠. 영원의 한 순간이 포착된 것 같았어요. ‘불국사 설경’에서는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작품 앞에 하루 종일도 서 있을 것 같았어요”라며 형언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전했다.
인터뷰를 하는 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행복해 보인다. 웅장한 대작이면서도 매우 세심하고, 과감한 생략을 통해 더욱 돋보이는 극사실적 세밀함의 교차를 수묵의 농담과 거침없는 필치로 표현해 보는 이를 압도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작가들에게도 강한 영감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지초와 난초의 향기에 매혹되듯 예술의 궁극적 목적이 감동이라면 화백은 그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촌음을 아껴 작품에 매진하고 혼신을 다해 그릴 겁니다
“개관할때까지 마음 고생이 컸던 것은 사실입니다. 상처는 아물기 어렵지만 이렇게 연일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와줘서 매우 행복합니다. 요사이 작품에 결정(結晶)이 호흡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마도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촌음을 아껴서 작품에 매진하고 혼신을 다해 그릴 것입니다”며 한시도 마음을 풀어 놓은 적이 없으며 매일 새벽 세 시경 일어나 작품에 정진한다고 했다.
구상과 추상을 하나로 아우르는 세계, 양 극단을 적절하게 융합하는 경지, 글씨를 그림처럼, 그림을 글씨처럼 이룩하는 고도의 경지는 하루도 쉬지 않고 평생을 지향해 온 노력 덕분이다. 이제 만족하지않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늘 시간이 모자라 안타까울 뿐이라고 단언한다.
박 화백은 현재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매주 토요일 ‘우리 그림 교실’을 열어 11년째 후학들을 지도양성하고 있다. 이 수업은 신라의 뿌리를 찾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했다.
“솔거미술관에 전시하는 작품은 계속해서 1년에 두 세 차례 바꿔 전시할 계획이고 특별전을 통해 제 작품뿐만 아니라 국내외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공간의 일부를 할애해 직접 기획해 전시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관 내 후학을 지도양성하고 전통 서화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아카데미센터가 있었으면 합니다 ”고 전했다.
-주변 콘텐츠의 보강 어우러진다면 차제, 경주 대표할 수 있는 명품코스로 자리매김할 것
실크로드경주2015 관계자는 “솔거미술관은 경주와 실크로드경주2015의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효자상품으로 일찌감치 등극했죠. 헌정 위원, 유명 스타들, 각급 단체 기관장, 작가들, 전현직 장차관, 대구 경북의 명사 등 유명 인사들이 대거 다녀갔음이 이를 방증하지요”라고 했다.
박대성이라는 이름 석자를 건 미술관은 요원한가. 아직도 솔거 미술관의 위치를 잘 몰라 고생하는 이들이 많았다. 큰 콘텐츠에 대한 좀 더 자세한 가이드라인과 정보가 필요해 보인다.
또, 미술관 주변에서 커피 한 잔, 와인 한 잔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잠시 번잡한 일상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면 제대로 ‘힐링’을 하고 돌아갈 것이다. 애초 계획됐던 아트샵 구성도 절실해 보인다. 이러한 주변 콘텐츠의 보강이 어우러진다면 차제, 경주를 대표할 수 있는 명품코스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악예문빈(樂藝文彬,예술과 문화로 빛나는 아름다운 사회를 꿈꾼다)’을 강조했다. 마음의 바탕과 그것의 문화적 표출은 서로 잘 어울려야 한다는 측면에서 박 화백은 완전한 이다.
‘너무 오래 주무시는 신라의 잠을 깨우러’ 경주에 정착해 서서히 깨우고 있다고 말하는 박 화백. 신라의 선조들이 이 땅에 선생을 보내왔을까. ‘박대성’이라는 이름 석 자가 선연히 나부낄 수 있도록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