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밖에도 안 나가고 밀린 원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벌 비슷하게 생긴 곤충이 베란다 방충망 주변을 하염없이 날아다닌다. 작업실 창문이 그 쪽으로 나 있어 이 녀석을 안 볼 수 없다.
글이 안 써져 인상 써가며 모니터만 노려보다 방충망 주변을 맴도는 걸 보니 마음이 좀 그래서 얼른 보내주었다. 좋은 일했다 싶어 기분 좋게 다시 컴퓨터에 앉았는데 웬걸, 아까 그 녀석하고 비슷하게 생긴 녀석이 또 불쌍하게 있는 것이다.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마음에 이 녀석도 방충망 너머 자유로운 세상으로 돌려보낸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막혔던 글이 풀리고 관련 자료도 읽어가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데 왠지 느낌이 이상해 고개를 들어보니 이젠 아예 두 마리가 어정댄다.
‘방충망 어디에 큰 구멍이라도 뚫렸나?’
‘벌은 아니지만 꿀이 있는 곳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듯 이놈들도 단체로 날아드나?’
혼자서 씩씩거리다 예전에 있었던 재미있는 실험이 문득 기억났다. 다릴 시덴톱(Daryl Siedentop)은 미국의 체육교육학자다. 그의 집 뒤에는 근사한 뒤뜰이 있는데, 동네 꼬마들이 매일 거기서 축구를 하는 바람에 잔디가 날이 갈수록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이 귀여운 악동들을 어떻게 했냐고? 축구 하지마라 혼내는 대신, 매일 뒤뜰에 와서 축구를 하면 일인당 1달러씩 주겠다고 약속을 했단다. 당연히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돌아간다. 신나게 축구도 하고 또 1달러도 벌고... 이런 신나는 제안을 아이들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약속대로 축구를 하고는 1달러씩 받아가기를 몇 주... 웬걸, 놀러오는 횟수가 점점 줄더니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아예 보이질 않는다. 축구하는 걸 멈춘 것이다. 1972년 출간한 《운동과 생리교육행위의 발전과 통제》에서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것은 그저 공을 차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축구를 한 후 돈을 받게 되면 그 동기(動機)가 변하게 된다. 다시 말해 공을 차는 내적 동기가 단순한 흥미에서 외부적 자극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공 차는 즐거움이 돈 받는 즐거움으로 바뀌다 보니 아이들은 어느새 공 차는 게 시들해졌다.’ 결과적으로 남이 시켜서 하게 된 축구가 이젠 재미없어진 모양이다.
시덴톱은 책에서 내부적인 동기로 인한 행동이 외부적인 상이나 칭찬으로 인한 행위보다 더 몰입력이 강하고 지속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 페이지에 파란색 펜으로 나는 이렇게 메모를 해놓았다.
‘요즘 컴퓨터 게임 중독이 범사회적으로 심각한데, 게임할 때마다 수고했다고 엄마나 담임선생님이 1000원씩 주면 어떨까?’
이게 웬 떡이냐 하던 중·고딩들이 나중엔 게임을 그만두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상상해 본다. 게임도 내가 좋아서 하는 거지 남이 하라고 하면 청개구리마냥 반대로만 하는 중고등학생의 심리를 역이용하는 방식이랄까. 온라인 게임이 거의 종교가 된 요즘 세상에 집집마다 한 번씩 해봄직한 시도다.
아무튼, 벌 닮은 곤충하고 축구가 시들해진 아이들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다. 그냥 뻔히 보이는 자유를 앞에 두고 헤매는 벌레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또 하고 싶은 걸 막기보다 더 하라고 부추기면 하던 것마저 싫어진다는 사례가 애들한테만 해당되는 건 아닐 테다.
어째 결론이 급조된 듯 어설프다. 그렇다고 벌에게 천 원씩 줘서 쫓을까 하는 상상은 더더욱 안 해봤다. 혹시 궁금해 하실까봐 참고로 말씀드리면, 그날 하루 벌 닮은 벌레를 열 마리 넘게 방생(放生)해 주었다. 아들 녀석은 우리 집 어딘가 분명 벌통이 있을 거라며 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