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첨성대 서편 왕릉 일원에서 열린 ‘제1회 신라임금 이발하는 날’은 근래 보기 드문 ‘메이드 인(made in) 경주’행사였다. 행사 제목부터 재미있다. 벌초를 ‘이발’에 비유했다. 왕릉의 꼭대기부터 풀이 마치 사과껍질처럼 깎여져 내려오는 모습 또한 흥미롭다. 하지만 그냥 재미로 끝날 행사가 아니다. 이번 행사로 신라임금 이발하는 날이 세계적인 관광 상품으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라 왕릉은 경주의 대표적인 고유자원이다. 거대한데다 밀집해 있다. 이런 특성이 2천년의 시간성과 더불어 신라 왕릉을 경주의 독보적인 자원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경주시민들에게 신라 왕릉은 특별하지 않은 것 같다. 늘 마주치다보니 특별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이번 행사의 최대 성과는 그간 이웃집 아저씨처럼 여겼던 신라 왕릉이 ‘특별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임금 이발하는 날은 이런 거대한 왕릉을 도대체 “어떻게 벌초할까?”라는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 필자는 왕릉벌초 모습을 처음 목격했을 때 너무나 재미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3인이 1조가 되어 마치 컴퍼스가 돌아가듯 풀을 깎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벌초기술은 현재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경주인의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 이 광경을 외지인이 본다면 직접 해보고 싶을 거란 생각이 강하게 스쳤다. 왕릉벌초는 성스런 의식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교육콘텐츠로도 기능한다. 온가족이 함께 벌초를 하면서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해 본다. 더운 날씨에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벌초를 즐기던 아이들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커서 신라 왕릉을, 왕릉벌초 행사를 설파하며 다닐 것이다. 신라문화의 전도사들이다. 신라임금 이발하는 날은 경주가 살아있는 도시임을 확인해주었다. ‘죽음’을 상징하는 고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여 현대인과 2천 년 전의 왕들이 생기발랄하게 소통하는 자리를 제공한 것이다. 그간 멀리서 보기만 했던, 즉 관망의 대상에 머물러 있던 신라 왕릉이 가까이서 만지면서 느껴보는 사랑스런 스킨십 상대가 되었다. 왕릉벌초 행사는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지상파 보도국과 뉴스전문채널의 기자들이 다녀갔다. 지상파 3사의 교양 프로그램 대여섯 곳에서 왕릉벌초 행사를 다룬다. 아리랑TV를 통해 전 세계 80여개 나라로 송출되었다. 아이들 사생대회 정도의 예산을 가지고 정말 큰 성과를 냈다고 할 수 있다. ‘신라임금 이발하는 날’은 이른 바 비용 대비 효과가 탁월한 행사였다. 이상 다섯 가지로 행사의 발전가능성을 타진해봤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첫 번째다. 즉 신라 왕릉이 경주의 ‘고유자원’이라는 사실이다. 나머지는 신라 왕릉이 고유자원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부수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다. 고유자원은 해당 지역만 가지고 있는 특유의 자원이다. 고유자원의 힘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고유자원은 외지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지역민을 결집시키기도 용이하다. 신라 왕릉이기에 천명이 넘는 주민들을 내발적(內發的) 의사에 따라 모을 수 있었다. 나아가 내발적이기에 행사가 즐거워진다.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함께하고 싶다. 세계적인 수준의 관광자원들은 대개 이런 선순환 과정을 거친다. 논어에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란 말이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는 뜻이다. 필자는 본래의 뜻은 아니지만 이 말이 고유자원의 힘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경주가 관광정책을 수립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첫 번째 덕목으로 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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