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해외 공동취재에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은 그들이 태생적으로 타고난 수많은 문화유산에 만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부잣집 장남’인 그들은 문화유산을 부단히 아끼고 보존하는 노력을 통해 지역주민으로서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생각하는 마인드와 미래의 자산으로 물려주려는 안목이 뛰어났다.
물론 행정적으로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 전문가와 기관의 협력이 그 근저에 있었음은 말할나위 없다. 이번호에서는 손명문 교수의 ‘도시 재생과 마을공간 재생을 위한 제언’이라는 학술자료와 인터뷰,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 허 권 사무총장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경주의 역사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 도시재생’에 대해 갈무리 해 보았다.
-성공적 도시재생 이룬 도시... 대부분 유산을 보존, 활용하면서 현대적인 개발과 연계한 도시들
현재 건축사무소 건.환 대표로 동국대학교에서 후학들에게 건축과 조경을 강의하고 있으며 경주시 지역고도보존심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손명문 교수는 ‘도시재생과 마을공간 재생을 위한 제언’에서 “성공적인 도시재생을 이룬 도시들은 대부분 과거의 유산을 적절히 잘 보존, 활용하면서 현대적인 개발과 연계한 도시들이다. 도시재생이란 오래되어 낡고 노후화된 기존 시가지를 모두 철거하고 그 위에다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공간을 역사와 함께 살아 숨쉬는 생명력 있는 유기체로 재생시키는 작업이다. 즉, 장점을 북돋우고 단점을 고치고 환원시키는 작업을 통해 도시를 가꿔나가는 것이고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다’고 전제했다.
손 교수는 무엇보다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 진정성 있는 평가를 통해 지속적으로 정비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경주에는 지금 당장은 오래되고 낡아 쓸모없어 보이지만, 머지않아 가꾸기에 따라 도시의 자산이 될 만한 건물과 시설물들이 많이 있다. 따라서 지역의 역사성, 장소성을 보존하면서 살기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도시 재생의 과정에 있어 경주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기인한 문화 콘텐츠를 구축하는 것은 우리 도시가 실행해야 할 지속가능한 도시디자인의 한 방법이다. 문화재구역 정비 사업이나 기존 도심 속에 무심하게 방치되어 있는 근대건축물과 개발사업 과정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몇 십 년 된 삶의 애환이 담긴 건축물과 마을들, 그리고 낡은 한옥이나 사용하지 않는 학교, 공장, 창고, 정미소건물들을 예술·문화 활동 공간이나 추억의 시간과 일상을 담을 수 있는 실효적인 상업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할 때다.
이 바탕 위에 시대의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역사적 건축물들의 현대적 재활용이나 새로운 건축물의 건립이 이루어지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경주의 묻혀진, 혹은 시민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역사문화경관 회복 절실
“자연경관, 문화경관, 생활경관 이 세 가지가 도시를 가꾸기 위한 원칙이다. 자연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보존하고 그 도시속에 역사문화가 소담스럽게 담겨져 있으며, 문화경관의 회복도 필요하다. 결국 좋은 도시란 역사문화예술이 흘러 기품이 깃든 도시에 자연의 아름다움이 더해지는 도시로 인간과 어울리는 생활 경관도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것이다”
또 “경주의 묻혀진, 혹은 시민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역사문화경관의 회복이 절실하다. 역사문화경관은 보존과 활용의 의미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 문화 경관의 회복은 신라 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 근현대까지의 잊혀진 문화 경관을 회복시키는 작업이다. 도시는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과거의 유산과 흔적을 보존하면서 여기에 새로움을 덧붙이는 것이다.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가 있는 것이며, 과거의 흔적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고 미래의 도시를 가꿀 수 있다”고 했다.
-“지역 주민들 의지와 자긍심 심어줄 수 있는 경주시 정책의 방향이 우선 정립돼야”
“문화경관의 회복의 예를 들자면 경주읍성의 복원 후 앞 광장에 새벽시장 등이 개장된다면 문화와 생활이 함께하는 예다. 지금은 가려져 보이지 않는 조선시대 초기 집경전지를 개방하고 동경관의 복원, 동헌, 법원 사거리 건너편 입구 쪽 읍성 남문 등을 복원하면 하나의 연결 고리가 이뤄져 관광객들의 시내권 유입은 저절로 이뤄진다고 본다. 그리고 읍성 안 야마구치 상구의원, 서경사 등 근대건축물과의 연결도 회복시켜야 한다”면서 그렇게 된다면 도시역사의 시간의 단면을 더욱 절실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봉황로 문화의거리와 황남동에 대한 지원을 하고는 있지만 선택, 방법, 제도적 장치와 더불어 보다 세밀하게 접목해 지원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도시재생을 통한 지속가능한 경주의 도시디자인이 이루어져야 한다. 세계문화유산과 인접한 주거지로 역사유적지와 주민의 삶터가 함께 이루어지는 품격있는 한옥 주거지인 ‘황남동 마을공간’의 경우 도시재생 차원에서 제대로 가꾸어 질 때 활력이 넘쳐 살아 움직이는 마을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손 교수는 “지역 주민들의 의지와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경주시 정책의 방향이 우선 정립돼야 한다. 아름답게 가꿔질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혜택을 누릴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야 경주 지역민으로서 자긍심도 수반될 것이다”며 각 전문가들의 리더로서의 시스템과 역할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과거의 문화유산은 미래의 축복이자 미래의 자원”...역사문화유산은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인식의 전환 절실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 허 권 사무총장은 ‘경주시민은 행복하다’며 왕도를 가졌던 주민들의 역동성을 믿는다고 첫 일성을 건넸다.
“우리나라 세계유산 12개중 경주는 세계유산을 3점이나 가지고 있는 지자체다. 지금까지 면면히 흘러오는 문화의 핵심들이 있는 역사문화도시에 만족하면 안된다. 역사창조 도시로 나아가야 하며 과거의 유적으로 만족하고 기능이 멈춘 도시가 아니라 창조적인 예술의 기능, 연구의 기능, 통신정보의 기능들이 함께 어우러져 한편으로는 지속가능한 발전, 한편으로는 창조적인 도시로 나아가야하는 역사창조도시로 발돋움해야 한다. 바로셀로나, 파리, 베를린 처럼. 과거의 문화유산은 미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보존을 위해 억압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계유산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발로인 것 같다. 문화 중심의 세계변화동향을 주시할 시점이다. 유산은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최근의 왕경 복원사업도 전문가, 지도자와 같이 시민이 동참해 메이킹해야 한다”고 했다.
각 지역사회가 잘 활용하고 가공함으로써 지역사회의 발전을 가져오는 근거를 마련해주므로 많은 나라들이 세계유산에 등재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과거의 문화유산은 미래의 축복이자 미래의 자원이다. 유산을 직접적으로 관리하고 보고 아끼고 향유하는 주체는 바로 지역 주민이다. 유적을 가진 도시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통해 창조적인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또 살아있는 세계유산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유산의 현상보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관습, 수많은 기억과 삶을 지키는 공간으로 살아있는 문화유산인 도시들에 생명을 공급하는 보존과 개발의 조화가 필요하다. 이를 통한 세계유산도시의 지속적 발전이 가능하다고 했다.
-문화교류에서 과감한 경주, 사람이 이끌어 가는 경주 필요
“경주의 가장 큰 자원은 문화유산과 함께 시민이다. 왕도로서 전통과 역사의 혼을 이끌어가는 것은 주민이다. 왕도 의식(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자신들의 문화유산으로 어떻게 지역발전을 유도하는지를 경주시민도 알아야 한다”면서 “경주는 천년동안 찬란했다가 천년동안 잊혀지고 천년동안 사라지는 도시가 될 수도 있다. 국제적인 교류에서나 문화교류에서 과감한 경주, 사람이 이끌어 가는 경주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경주는 왕도로서 유인책을 꾀하며 다시 한 번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 유물의 보존뿐 만 아니라 역사도시의 주민이 갖고 있는 문화적 감수성과 창의성의 문제가 동반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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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