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우 강이 유유히 흐르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구릉지에는 풍력 발전소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지난 7월 25일 우리는 비엔나 숲을 거쳐 시가지로 진입했다. 삶의 질이 세계 1위인 도시, 지은 지 50~60년만 돼도 색칠도 하지 않은 채 무조건 보존하는 도시.
비엔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로 1세기에 로마 제국의 군영지가 축조된 이래 20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녔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650년에 걸친 영광의 도읍지로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오페라극장, 대학 등의 웅장한 건물을 간직하고 있다.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도로를 따라 관광명소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도나우 운하가 통과한다.
빈의 상징인 슈테판 성당은 137m에 달하는 첨탑이 있는 거대한 사원으로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의 건물로 모짜르트의 결혼식이 이곳에서 있었기에 더욱 유명해졌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여름 궁전으로 사용했던 건물로 매우 화려한 외관을 가지고 있는 쉔브룬 궁전 등 이 외에도 베토벤, 모차르트, 브람스, 요한스트라우스 등 음악 거장들이 남긴 발자취 만으로도 훌륭한 도시다.
-빈 시민들의 남다른 DNA...‘MQ’, 황실의 마굿간 개조·확장해 세계 최대 문화복합체로 구축
도시재생 및 도시유지에 초점을 맞춰 3시간 가량 소요된 현장투어와 인터뷰를 통해 부단히 애쓰고 보존하는 빈 시민들의 남다른 DNA를 느낄 수 있었다. 바로크시대부터 비드마이어 시기(1800년대), 1850년 전후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발전 과정을 거친 건축물들을 둘러 보았다. ‘MQ (Museums Quartier)’는 1700년대 바로크시대 건물로, 원래는 황실의 마굿간으로 건너편에 제국의 축이라 불리는 황궁(현재 대통령궁)이 위치한다.
이를 개조·확장해 문화복합공간으로 구축해 세계 최대 문화복합체로 현재 기능하고 있다. 24시간 개방해 지역의 청소년이나 젊은이들도 자주 찾아 즐기는 명소다. 이 마굿간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놓고 오랫동안 기획하고 연구해 1990년 문화복합공간 ‘엠큐’를 만들자는 의견을 도출하기에 이른다. 현재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클림트와 쉴레 등 비엔나가 낳은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역사적인 건축물들은 철거하지 못하며 보존을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
1850년대부터 성터를 갈고 닦아 150년 전 ‘링’도로가 완성됐고 링 도로 주변에는 부자들이나 귀족들이 살았다고 한다.
한편, ‘비드마이어’는 얌전하고 조용한 사람을 일컫는다. 서민주의 혹은 시민주의로 해석할 수도 있다. 18세기 말, 중산층들이 살던 집들을 둘러 보았는데 비엔나 시 문화국 공무원 수잔나 하이데씨는 “1980년대만 해도 폐허였던 이 건물의 통로를 지나 집을 갈 때는 언제나 무섭고 음습한 분위기를 느꼈다. 이 통로를 지날 때는 조명과 가로등도 없는 폐허였기 때문에 언제나 으스스해 모험적이었다”고 회상했다.
문화국에서 지원해 옥상 등을 신축했으며 현재 소유주들이 모두 다른 개인 주택이다. 현재 소유주들은 집을 고치거나 개량하는 데 있어 빈시 문화국에 접수하고 감정하는 단계를 통해 상의해야 하고 문화적으로 보존해야 하므로 빈시가 지원해줘야 한다.
역사적 건축물의 보존 실태와 관리법에 대해 그녀는 “1972년 구시가지 보존법 개정이 있었고 현재 비엔나 전체에 보호구역을 설정해놓았다. 역사적인 건축물들은 절대 철거하지 못하며 보존을 중심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했다. 보호구역 내 건물의 보수·개량에 관해선 시가 수리비 지원을 해야 한다. 이는 모두 역사적인 건물을 스스로 보존하게 하기 위해서며 건물이나 집들은 주민 개별적 소유다. 합리적인 보존이 아닐 수 없다.
보존정책 실행의 최초 구역이나 마찬가지인 ‘슈피텔베르크 가세(슈피텔베르크 구역, 작은 길)’로 다시 이동했다. 과거 옛 길의 블록들이 깔려있을 뿐, 아스팔트가 없는 길, 그 길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소시장을 열기도 한다고.
이 구역은 창녀들의 마을이라 불릴 만큼 어두웠고, 도둑이 들끓었던 빈가이자 범죄소굴이었다. 아주 작은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있고 집 안에 화장실과 수도 등의 시설도 없었던 매우 열악한 삶의 공간이었다.
1975년 유럽공동체에서 문화재를 보호·보존하라는 법이 발효되면서 이 구역의 개량·수리도 시작됐다. 빈시가 일부 건물들을 하나하나 매입하고 개량해 빈 시 소유의 건물들이 많다. 물론 개인 소유의 주택들도 많다. 아주 작았던 집들을 개량하면서 덩어리로 묶어 큰집으로, 공동주택으로 변모시키기도 했다.
이는 모두 빈 시의 프로그램과 국가의 구시가지 보존법을 통해 관할, 지원됐다. 이후 이곳은 역사적 건물들을 보존한다는 전제 하에서 쇼핑센터, 문화시설, 주거공간들을 조성해 살기 좋은 곳, 찾아오고 싶은 곳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특히 야간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연극공연, 시장 등이 열리고 있는 것.
-‘내가, 우리가, 그 문화재 안에서 산다’는 자긍심 매우 커
‘쌍트울리히’광장 등의 길을 걸으며 여러 건물을 둘러보았는데 구시가지보호법으로 전부 개량하고 수리했다. 이들은 자신의 집을 수리할때도 동네 전체의 아름다움과 환경을 고려해 이웃과 논의한다.
기술적으로나 미학적, 역사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 이 동네는 성당. 성당부속사제단 등이 있는 문화재와 문화유산이 있는 동네로, ‘내가, 우리가 그 문화재 안에서 산다’는 자긍심이 매우 크다. 문화재는 그 속에 사는 우리가 사명감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문화재보호법이 있든 없든 크게 상관하거나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보호구역 아니어도 이후 역사적 유산 될 것이라는 선진적 인식으로 지원
‘16구역’으로 향했다. 16구 전체를 칭하는 이름이 ‘오타크링’이다. 이 구역의 8천여 명 주민 중 절반은 이민자들이다. 특히 작은 이스탄불을 보는 듯 터키사람들이 많다. 과거 여기 살던 비엔나의 가난한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거의 이주한 상태며 이곳엔 노동자, 전쟁피난민, 터키인 등 가난한 이주민자들이 다시 채우고 있다.
1973년 도시재생이 이 구역으로까지 확대돼 비엔나 23구 중 16구에 해당되는 이곳에서 비엔나 최초로 지역경제와 도시재생 테마의 접점에 해당되는 ‘구역케어’라는 중요한 프로그램이 생겼다. 그 구역 전체를 유지·관리·보존하는 역할을 스메타나씨가 하고 있었다.
스메타나씨는 1970년대 당시 슈피텔베르크 구역을 없애버리자는 의견에 반대운동을 벌였던 인물이다. 20대 청년이었던 그는 동료들인 대학생들과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지켜냈다.
공학석사이자 건축가인 그는 비엔나 시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폐쇄 위기의 엉망진창이었던 이 구역 주민들은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이곳을 떠날 준비만 했던 상황이었다.
스메타나씨는 “여러 빗발치는 요구 중 시민주도형의 스탠드 시장 활성화를 이끌어내보자는 운동도 일어나고 주택 개량, 스탠드부스 개량, 교통문제 개선, 문화예술적 프로그램 기획, 사회통합 유도 등 총 10개의 시민참여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행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지속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해 2005년 첫 실행을 했다” 면서 “주택은 개량하지만 그 중 계단이나 한두 가지 요소를 과거의 것으로 유지하는 식의 개량을 했으며 이에,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고 있다”고 했다. 보호구역이 아니어도 빈 시는 모든 주택, 건축물을 역사적인 유산으로 여기며 모든 개량을 지원하고 있다. 이곳 집들은 대부분 1880년대 지어진 것으로 문화재는 아니지만 문화재와 마찬가지인 것으로 여기고 이후 문화재가 될 것이라는 선진적 인식을 하고 있었다.
-보존, 활용, 또 활용...옛것과 새것의 조화, ‘공존’배울수 있어
이어 찾은 곳은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크렘스안데어도나우(Krems an der Donau)’로 도나우 강과 접하고 있는 항구도시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는 엄격한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관리된다. 10~12세기 중세시대 건물들이 남아있는 구시가지에는 1250년대 도미니카 수도원, 고딕식 성당, 바로크 성당이 있으며 1300년대 작은 기도소도 있다. 스트리치크 크렘스 시 관계자는 “크렘스 역시, 문화재보호법이 있어 구시가지 안 보호구역안에 들어있는 건물은 칠, 천장 보수, 창을 만들때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흉물로 존속했던 1850년대 담배공장을 재활용에 대한 움직임으로 지금은 뮤지엄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했다. 인근 양탄자 공장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운트’라는 수도원은 1787년에 폐쇄됐다. 현재는 바로크 회화가 남아있는 것이 인상적인 이벤트 행사장이나 결혼식장으로 쓰고 있다. 옛 수도원을 헐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 고건축물이지만 새로운 방식과 콤비네이션한 것으로 옛것과 새것의 조화, ‘공존’을 배울수 있는 공간이었다.
구시가지의 한 주택 안뜰을 둘러 봤다. 500년 된 집으로 가장 아름다운 안뜰을 간직한 이 집은 옛 우체국 건물이었다. 지금은 레스토랑과 호텔로 활용되고 있다.
크렘스는 도시 재생과 도시 보존으로 유명하다. 인구 2만5000명의 크렘스는 소도시지만 대학까지 있다. 수도 빈에는 없는 소박함과 정겨움이 거리에 스며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도나우 강처럼 천천히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