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중 하나인 ‘신라왕경 중심구역 방(坊) 복원·정비’ 사업 추진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 신라왕경 모습을 추론할 수 있는 왕경중심구역의 방에 대한 현황과 향후 정비 및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향후 사업 추진방향 등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 10일 보문단지 내 드림센터에서 ‘신라왕경 중심구역 방 정비 및 활용’을 위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기반 연구로 전덕재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신라 왕경의 방에 대한 종합적 고찰’, 황인호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이 ‘신라왕경 중심부의 방리 구조와 변천’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고증 연구로는 양정석 수원대 박물관장이 ‘통일신라 왕경의 도시체계’, 김도경 강원대 도시건축학부 교수가 ‘신라방의 도시 공간 구조’를 주제로 발표했다.
또 정비 및 활용연구로 류성룡 계명대 전통건축학과 교수가 ‘신라시대 건축의 구조 특성’, 이정미 중부대 건축학과 교수 ‘도시주택의 배치와 평면유형’, 김규호 경주대 관광레저학과 교수가 ‘탈근대관광 관점의 신라방 재현과 활용’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이어 박언곤 홍익대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한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신라방 복원·정비 사업은?
신라왕경 중심구역 내 방, 즉 신라방의 복원·정비 사업은 통일신라 왕경의 1360방 가운데 일부 도시유적지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 대상지는 인왕동 일원(동궁과 월지 북쪽 선덕여고 인근) 총 111필지, 16만9473㎡.
시는 특별보존지구 30필지에 4만6704㎡를 먼저 매입하고, 잔여 81필지 12만2769㎡는 문화재보호구역 추가 지정 후인 오는 11월경부터 매입할 방침이다.
총 사업비 620억원(국 434, 도 56, 시 130)을 들여 부지 매입과 함께 발굴조사를 거쳐 신라왕경 중심구역 방 복원·정비 실시설계 후 2025년까지 복원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신라의 화려한 주거형태 및 생활상 복원을 통해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는 것이 사업 목표다. 특히 신라의 생활상 연구를 토대로 신라의 도시와 거리를 재현해 시민과 관광객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다는 계획이어서 다른 문화재 복원사업과는 차별화되고 있다.
신라왕궁 복원 등 상징적인 차원의 복원·정비 사업에 비해 시민 및 관광객들이 복원된 신라방 내에서 신라인의 생활상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이 가능하다는 것.
경주시 관계자는 “향후 발굴 성과를 토대로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신라방 내 방문객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장 조성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며 “신라방 복원을 통해 황룡사지, 동궁과 월지, 첨성대, 월성, 월정교 등 동부사적지 전체를 잇는 새로운 관광코스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포지엄을 통해 본 신라방은?
전덕재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이날 ‘신라 왕경의 방에 대한 종합적 고 찰’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방의 기능과 규모 등에 대해 설명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신라는 530년대 중앙집권적인 영역국가체제를 정비했고, 이때 지방의 복속소국이나 읍락집단을 주, 군, 촌으로 재편하고 기존 6부 지역을 지방에 대비해 왕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어 689년 신문왕은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달구벌(대구)로의 천도를 계획했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포기하고, 대신 왕경의 영역을 오늘날의 경주 시내 범위로 축소 조정했다는 것. 이와 더불어 신문왕은 당나라에서 방제(坊制)를 수용해 왕경을 대대적으로 재편하는 사업을 전개했다.
‘방’은 리(里)의 하위 행정단위이자 남북과 동서의 직선도로로 구획되고 외곽을 담장으로 둘러친 일정한 주거공간이었다는 것이 전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신라방의 기능에 대해서는 치안유지와 부분별한 왕경유입 차단 등의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동서와 남북도로로 구획돼 바둑판과 같이 규격화된 방을 중심으로 주민들을 통제하거나 감시하는 등 치안을 유지했다. 또 부랑자가 방내에 거주하는 것을 차단하고, 지방민의 무분별한 왕경으로의 유입을 차단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고도 설명했다.
끝으로 전 교수는 “현재까지 진행된 고고학 발굴성과를 기초로 해 신라 왕경의 모습을 복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 “앞으로 몇 개가 서로 연결된 방들을 발굴 조사하고, 연구가 더 성숙된다면 방의 규모와 모습의 변화와 보다 넓은 범위의 다양한 구획의 모습과 성격 등을 구체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결론지었다.
-‘신라 중대 360방에서 하대 1360방으로 확장’ 주장
학계에서는 현재 신라 왕경의 범위를 파악할 수 있는 신라방의 숫자가 1360방 또는 360방이라는 엇갈린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 문헌 기록에 따라 리(里)와 방의 숫자가 55리 또는 35리, 1360방 또는 360방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기 때문.
이에 대해 김도경 강원대 도시건축학부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신라 중대 35리 360방에서 하대에 55리 1360방으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8세기 경덕왕대 신라왕경의 범위는 남북 3075보(약 5424m), 동서 3018보(약 5323m)로 현재 경주 시가지 영역에 해당되며, 그 안에 35리, 360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후 신라 하대인 9세기 헌강왕대에는 방제가 경주 시가지를 벗어난 영역으로 확장돼 55리, 1360방 규모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는 신라 하대에 중앙집권력이 약화되면서 지방민의 왕경으로의 유입이 급증했고, 그 결과 왕경영역의 팽창현상이 나타났다는 전덕재 단국대 교수의 발표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김도경 교수는 “최근 건천읍 모량리 일원에서 방제 유적이 발굴됨에 따라 방제가 시행된 범위 또는 왕경의 범위는 현재의 경주 시내에서 벗어난 외곽지역으로 지속적으로 확산됐음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기록에 보이는 것처럼 신라 중대에서 하대로 넘어가면서 왕경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왕경은 주변지역으로 지속적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삼국유사의 1360방과 360방 관련 기록에서 동일하게 당시 가구수 17만호를 언급하고 있어 의문으로 남는다”고 밝혀 향후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방의 숫자를 규명해야 할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신라시대 생활상 재현해 체험하는 공간으로 조성해야
“신라방의 재현과 활용은 궁극적으로 신라인들의 생활문화를 재해석해 현대적 관점에서 관광객들이 과거로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김규호 경주대 관광레저학과 교수는 이날 ‘탈근대관광 관점의 신라방 재현과 활용’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이 같이 강조했다.
김 교수는 향후 왕경지역에 대한 발굴을 통해 신라방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찾기 전인 현재시점에서 고고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원형복원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한 뒤 “원형복원에 집착하는 것보다 현대인들이 흥미를 갖고 문화유산을 탐방할 수 있도록 의미를 재해석해 문화상품을 개발한다는 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가칭 신라왕경 민속촌이나 신라왕경 역사촌과 같은 명칭으로 재건의 의미를 갖는 신라방을 재현하는게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신라방의 재현과 활용은 관광객들에게 신라시대 생활상을 느낄 수 있도록 주제공원(Theme park) 형태로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신라방은 과거 주거, 종교 기능과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생산 활동과 일용품을 구매하는 시장이 있었다고 유추할 때, 신라인들이 생활문화를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신라방은 지금까지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신라시대 생활상을 재현해 현대인들에게 과거에 대한 향수를 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는 신라방에 신라인들의 생활문화를 재현하기 위한 도입 기능으로 신라인들의 주거기능을 대신한 관광객을 위한 숙박기능을 도입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는 신라시대 존재했던 ‘사절유택’과 ‘금입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한옥숙박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
또 재현된 신라방의 생산과 소비활동은 공방, 음식점, 전시 및 공연장으로 구분해서 구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김 교수는 신라방 조성에 대해 “단순한 관람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향수를 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특히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래관계를 연결시키는 문화 중개자 역할을 담당하는 문화유산의 정비와 활용”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