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페이스북에서 첫사랑을 발견했다. 사춘기의 풋풋한 사랑이었지만 기억만큼은 강렬했는지 그녀의 이름 세자는 보는 즉시 팝업(pop up)되어 내 눈에 꽂혔다. 30년이 넘도록 볼 수 없었지만 내가 그랬듯 그녀도 자신 나름의 삶을 살고 있었다. 참 신기하다. 대면(對面)한 건 아니지만, 페이스북이란 물건은 30년이 넘는 시간의 벽을 순식간에 허물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페이스북은 필자에게 너무나 많은 그녀의 신상정보를 제공한다. 15살 시절 아련한 기억 속에 머물러 있던 그녀가 이젠‘현실’의 그녀가 되어버렸다. 환상이 깨졌다. 나이 50을 바라보는 아줌마의 모습을 목격해서가 아니다. 가물가물했던 기억이 말랑말랑해서 좋았는데 한순간의 충격으로 너무나 선명한 잔상을 보게 된 배신감이라고나 할까. 페이스북은 첫사랑의 감정을 허무감으로 바꾸고 말았다. 페이스북이 아니었다면 그 신비로운 느낌을 평생 간직하고 있었을 터다. 일부러 만나려고 노력하진 않겠지만,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 준세이와 아오이처럼 기적 같은 만남을 꿈꾸면서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페이스북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이 디지털 시대의 히트작품은 필자에게 다른 도움을 너무나도 많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1980년대에 중(中)고(高)대(大)의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10년은 아날로그 시대였다. 그 후 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디지털라이징(digitalizing)은 세상을 급격히 바꿔놓았다. 필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변곡점에 해당하는 세대다. 그래서 기술이 풍요로운 디지털 시대의 결핍 속에서 아날로그를 향수하곤 한다. 양쪽을 모두 경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필자는 디지털 시대의 최고 히트작품을 이메일(e-mail)과 모바일 폰(mobile phone)으로 뽑고 싶다. 이메일은 우표(비용) 없이 거의 무한대의 실시간 통신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한편 모바일 폰은 70년대 인기영화 007시리즈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이동통신을 가능하게 했고, 지금은 똑똑함이 더해져 스마트 폰이 되었다. 만약 지금 전자메일과 이동전화가 없다면 세상은 너무나 불편할 것이다. 필자의 집에는 2~30년 전 편지들이 있다. 작년에 어머님이 집안 정리를 하다 넘겨주신 것이다. 이 중에는 러브레터도 있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그 편지지엔 향기가 그윽하다는 사실이다. 살짝 뿌린 향수가 종이에 배어 오랜 시간을 연정(戀情)과 함께 했던 것이다. 이건 전자메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요즘엔 종이에 손으로 쓴 편지가 그립다. 제아무리 디지털 세상이라도 아날로그 손 편지의 가치는 절하되지 않을 것 같다. 신촌의 독수리 다방은 휴대용 전화가 상용화되기 전인 1980년대에 약속장소로 유명했다. 다방 입구 메모판에는 메모지가 항상 빼곡히 꽂혀 있었다. 예를 들면, “00고 27기, 보단호프로 와라!”이런 식의 메모다. 약속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친구들을 위한 장소 공지다. 휴대폰이 없으니 간혹 친구가 늦더라도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장소를 옮기면서 메모를 남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메모판이 사라졌다. 전화 한 통화면 금방 해결되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디지털이 선사한 편익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수십 년 전 향수가 배인 편지지가 그립다고 해서, 다방 게시판의 정겨운 메모지가 사라졌다고 해서 우리는 이메일과 휴대폰이 없는 아날로그 미개인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또한 페이스북이 첫사랑의 신비스러움을 앗아갔다고 해서 이를 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끔씩은 손 편지를 쓰는 것이 좋겠다. 자신만의 글씨 모양과 행을 바꿔 쓰는 취향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이메일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특별한 가치를 가진다. 약속시간에 늦는 친구를 위해 진심으로 걱정하며 기다리는 시도도 뜻 깊겠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는 모두들 느긋했다. 급하게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가끔은 이런 덜떨어진 아날로그 행동으로 여유를 찾아보자. 이것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의 지혜로운 일탈일지어니.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