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보행은 인간을 가르키는 가장 쉽고 일반적이며 일찌기부터 기준이 되어왔던 조건이다. 호모 에렉투스(직립보행 인간)가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와 더불어 인간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어주는 단어로 소개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직립 보행이 우리 생활에 어느정도의 심리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까? 사실 다리에 문제가 생겨 휠체어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장애우들은 다리도 다리지만 그네들의 자존감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단순히 다리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가치 자체를 훼손당하는 그런 느낌을 호소한다. 다른 사람을 볼 때 항상 올려다본다는 것, 그 씁쓸한 감정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잘 모른다. 그들의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면 다른사람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하고 싶다는 것. 비장애우들이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직립보행이 되지 않는 사실에 굉장한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뼈가 약해진 노인들이 넘어져서 가끔 대퇴골(허벅지에 있는 강한 뼈) 골절이 생기기도 하는데, 수술후 뼈가 붙어도 장기간 누워서 생활하는 환자들이 종종 있다. 그런데 이렇게 누워서 지내는 환자들은 대퇴골이 다 나아도 치료 후 1년이내 사망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필자는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다. 연로해져서 누워서만 생활하는 수많은 노인환자들을 보아왔다. 그네들은 움직일 수 있는 환자들에 비해 수명이 훨씬 짧아진다. 누워서만 있다면 몸을 자극하는 외부요인도 줄어들테고 그만큼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생각할수도 있지만 결과는 오히려 반대로 나타난다. 그 역시 직립보행으로서의 인간의 역할을 이제 포기해야한다는 자괴감이 삶의 희망에서부터 멀리하게 한 것은 아닐까. 이처럼 똑바로 서서 걷는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우리의 저 깊숙한 내면속에 훨씬 더 뿌리박혀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직립보행했던 것은 분명 아니다. 원숭이처럼 네 발로 허리를 숙이고 걷다가 뒷다리로만 서게 되었다. 현대 인간의 몸에도 꼬리의 흔적은 존재한다. 두발로 걸으며 이제 필요가 없게 된 꼬리는 미추라는 흔적만 남은 뼈로 그 존재감을 증거하고 있고, 다른 네 발로 걷는 포유류들의 구조와 척추나 근육, 신경의 해부학이 너무나 닮아있는 것으로 봐도 인간도 네 다리로 이동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다. 표현이 잘못되었을까? 네 다리로 이동하던 어떤 생물체가 두 다리로 걷게 되면서 비로소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건 아니었는지. 사실 최초의 인간이라고 부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직립보행이다. 직립보행을 하지 않은 인간의 조상이 있을지언정 그네들은 차마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두 발로 서서 척추와 머리를 곧추세우는 자세는 정말로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일지도 모르겠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지구상에 첫발을 디딘 시기도 무려 500만년 전이라 추측한다. 그보다 더 예전은 사실 알아보기도 어렵다. 공룡처럼 덩치가 엄청나게 크거나 암모나이트처럼 개체수가 전 지구를 뒤덮을만큼 많으면 그 화석이 지금까지도 보존될 가능성이 높아 존재를 증거할 수도 있겠지만, 네 다리로 걸었다는 인류 이전의 그 생명체는 틀림없이 현재의 침펜지같은 크기에 먹이사슬의 정점에 오르지도 못한채 개체수도 그리 많지 않은 한낯 보잘 것 없던 포유류의 한 종에 불과했을 거다. 그렇게 대단한 인류사의 사건이 직립보행이고, 이는 인류의 탄생을 알리는 시작인 셈이다. 그런데 그 대단한 직립보행은 과연 인간에게 어떤 혜택을 준걸까? 직립보행하게 되면서 인체에는 어떤 변화가 생긴 걸까? 그리고 두 다리로 걷는 것과 네 다리로 걷는 것이 과연 고혈압과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김민섭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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