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심각한 청년실업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청년실업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 근래 우리 정부는 청년실업을 해소키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이나 정책을 발표하고 또 실행해오고 있다.
공익근로를 확대한다거나 인턴제 도입 내지 기업체에 대한 고용지원, 청년창업지원 정책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하나 같이 일시적인 효과로 실업률 통계수치에는 다소간의 변화를 줄지 모르지만,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된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우주라는 허공을 떠도는 한 개의 독립된 행성인 지구의 자원이 제한적이듯이 한 나라가 가용할 수 있는 자원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부의 양극화로 제한된 자원과 부의 배분마저 지역별, 계층별로 쏠림현상이 심화되면서 기득권과 비기득권 사이의 장벽이 높아지고, 기득권의 권리를 세습받을 수 없는 비기득권의 자녀들은 당연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작금에 청년들의 실업문제를 단순히 일자리 부족이라는 문제로만 보고 인위적인 일자리 창출에만 골몰하는 것은, 기본 자산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부도를 막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돌려막기를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에, 근본 원인을 좀 살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옛날의 치자(治者)들은 영토를 보호하고 백성을 먹여살리기 위해 치산치수(治山治水)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지만 오늘날 각국의 지도자들은 너 나 없이 부의 분배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문제에 골몰하고 있다. 즉, 인구는 팽창하는데 자원과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또 급격한 과학문명의 진보에 힘입은 자동화의 물결은 대다수의 사람들을 일터에서 몰아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싫든 좋든 근육으로 하는 노동을 기계로부터 인간이 다시 찾아오기는 어렵게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인간의 고유한 영역처럼 여겨졌던 두뇌노동까지 컴퓨터라는 기계가 빠른 속도로 잠식해오고 있다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육체노동시대의 교육체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의 사회환경에 아이들을 놓아둔 채, 지금 청년실업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터무니없이 남발된 학위와 자격증은 크게 인플레이션된 지폐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 수레로 실어가도 계란 한 알 사기도 어렵다. 아무리 인턴제를 장려하고 기업에게 고용 인센티브를 제시하여도, 기계에 비해 터무니 없이 경쟁력이 낮은 인간을 고용할 기업이 있을 것인가?
따라서 현행 교육체계는 어떤 부분적 개선책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반드시 혁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인간의 무한한 창의력을 발현시켜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인간이 아닌 기계와 경합할 수 있는 인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기에, 근래에 스스로 낡은 제도교육의 장벽을 뛰어 나와 셀프타트로 자신을 훈련시킨 청년들도 없지 않다. 소위 청년밴처기업가 들이 그들 중의 하나라 볼 수 있는데,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과연 기업을 할 수 있는가이다.
오늘날 미국경제를 이끄는 중요한 한 축이 실리콘벨리 등에서 탄생한 밴처기업 창업가들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IMF사태를 겪고 나서, 한 때 밴쳐창업이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지만 그야말로 어설픈 흉내였었다.
그리고 지금도 정부는 여전히 청년창업지원책을 말하고 있지만 이는 마치 어쩌다 새로운 신품종의 나무씨앗을 얻은 한 청년에게 한 동이의 물을 주면서 사막에 던져놓은 꼴이지 않은가? 그 한 동이의 물로 발아(發芽)에는 어찌 어찌 성공할지 몰라도, 그늘 하나 없는 메마른 사막에서 그 나무가 성숙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창업지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창업된 기업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신생기업 특히 청년기업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기업에 의한 도급이든, 정부 기관에 의한 용역이든 간에, 신생기업이 당연히 갖출 수 없는 서류들이 당연하게 요구되고, 아예 어떤 프로젝트에 참가할 자격요건을 갖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생기업이 실적이 있을 리 없는 데도 실적증명서를 요구하고, 청년이 자본이 있을 리 없는데도 재무제표를 요구하며, 이제 갓 시작한 기업에게 기업신용평가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신기술 창업자에게 보유기술 평가는 형식적인 절차이고 오히려 그가 가진 아무데도 쓸모가 없는 스펙이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작용되기도 한다.
또 보증회사에서도 자산이 없는 청년에게 쉬 보증서를 발급하지는 않으며, 보증을 위한 또 다른 보증을 요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밴처회사 창업은 허용하되 밴처 즉, 모험은 어느 누구도, 어느 기관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제도적으로 신생기업의 성장을 막아놓고 청년창업육성책이라니?
물론 밴처기업은 당연히 성공률이 높지 않다. 그래서 밴처라고 하지 않는가? 미국은 99개의 밴쳐기업이 실패해도 단 한 개의 기업만 성공한다면 그만한 투자가치가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어느 개인도, 어느 정부기관도 모험은 하지 않으려 하면서 밴쳐기업과 청년창업 육성책을 외치고 있다.
기득권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아무리 튼튼한 제방도 유입구만 있고 유출구가 없으면 결국 수압을 견딜 수 없고 둑의 이편과 저편사이의 위차가 클수록 한번 붕괴되기 시작한 둑은 내부에 마지막 한 방울의 남은 물까지 하류로 흘러보냄으로써, 이편과 저편에 고갈과 매몰이라는 공멸의 참사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그간 기득권이 쌓아놓은 높은 둑에 이제 유출구를 좀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조그마한 유출구라도 하류로 방류를 시작한다면, 둑 아래의 가뭄도 해소시켜주면서 자신들의 안위도 보장될 것이 아닌가? 우리는 베품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베품은 이와 같이 타인을 위함이 아니라 곧 자신을 위함이기 때문이며, 청년실업문제는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우리 모두의 심각한 문제임을 자각해야 그 해결책이 보일 것이다.
“메마른 사막에 아무리 씨를 뿌려도 숲이 만들어지지 않지만, 습한 땅에는 아무도 씨를 뿌리지 않아도 초목이 자생하여 숲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