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유치지역지원사업과 관련, 경주시의회가 방폐장 준공식 불참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부부처가 전에 없는 회유책을 펴자 시민들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다. 방폐장이 경주에 유치된 지는 올해로 10년째.
그동안 정부가 약속했던 지원 사업이 지지부진해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정부가 갑작스레 유치지역지원 실무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상반된 움직임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모양새는 산업통상자원부가 1년여 동안 열지 않던 중·저준위 방폐장 유치지역지원 실무위원회를 지난 19일 개최하면서 확연히 드러났다.
산자부는 이번 실무위원회 개최목적을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준공식 이전에 지원 사업을 관계부처와 점검하고 미흡사항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28일 황교안 국무총리 등이 참석하는 방폐장 준공식을 염두에 두고 실무위원회를 열어 불만을 잠재우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 뿐만 아니다. 시의회에 따르면 20일 방폐장 준공식 불참 결정 발표 전후에도 산자부 관계자가 지원 사업 관련 경주의 입장을 청와대로 보고하고, 국무총리와의 간담회도 마련하겠다는 등의 제안을 해오면서 준공식 참여를 권유하기도 했다.
이는 산자부가 방폐장 준공식을 앞두고 경주시의회 의원 전원이 불참하는 사태만은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 사이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경주의 한 시민단체 간부는 “그동안 방폐장 유치에 따른 지원 약속 이행이 늦어지면서 국책사업에 대한 불신감을 지속적으로 표출했지만 정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면서 “경주시의회가 준공식을 불참하기로 한 뒤에서야 관심 갖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경주시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특히 “최근 취임해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황교안 국무총리를 의식해 이 같은 회유정책을 펴는 등의 눈치보기식 행정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분개했다. 방폐장 준공식 불참을 결정한 시의원들의 입장은 더욱 단호했다.
엄순섭 국책사업추진 및 원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방폐장 준공식을 불과 열흘 앞두고 유치지역지원 실무위원회를 개최하는 것은 뻔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행동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약속했던 지원 사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한 2단계 방폐장 사업은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의원은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약속한 지원 사항을 지키지 않는다면 향후 사용후핵연료 관리 등 원전정책에도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그동안 방폐장유치지역지원사업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온 정부부처가 경주시의회의 이번 결정에 회유책을 펴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향후 시의회와 시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편 방폐장 준공식은 28일 오후 2시 30분부터 양북면 봉길리 방폐장 현장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경주시장, 유관기관 관계자,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될 예정이다.
-경주시의회 전원 방폐장 준공식 불참 왜?
경주시의회는 28일 열릴 예정인 방폐장 준공식에 21명 의원 전원이 불참하기로 했다. 시의회는 지난 18일 의장단 간담회를 열고 지지부진한 방폐장유치지역지원사업과 관련 정부에 항의차원으로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경주시의회 국책사업 및 원전특별위원회는 지난 6일 간담회를 열고 준공식에 불참하거나 참석해 현장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등의 안건을 정하고 의장단 간담회에 회부했었다.
원전특위의 이번 결정은 국책사업유치 후 10년이 지났는데도 정부가 약속한 55개 방폐장 유치지역지원사업 중 첨단 신라문화체험단지조성 등 6개 부진사업을 비롯해 장기 검토사업으로 분류된 원자력병원 분원 건립 등 7개 사업 등은 정부에서 지원 및 사업시행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또 전체 사업비 중 지난 3월말 기준 국비확보율이 50.7%에 그치는 등 지원 사업이 전반적으로 부진하다는 것.
이에 따라 정부의 지원 사업에 대한 의지 결여와 부진한 실적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성의 있는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불참을 결정한 것.
권영길 시의회 의장은 “시의회 차원에서 국책사업인 방폐장유치지역지원사업이 부진한 실정을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고자 준공식에 전원 불참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권 의장은 또 “방폐장 준공식 현장에서 피켓시위를 통해 지원 사업의 현황을 알리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문제는 오랜 진통 끝에 준공을 갖는 방폐장이 아니라 지지부진한 지원 사업”이라며 “국무총리까지 참석하는 행사장에서 시의원들이 항의시위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전원 불참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부진한 지원 사업, 논란의 핵심은?
경주시에 따르면 방폐장유치지역지원사업은 총 55개 시행사업에 3조4290억원 규모로 확정됐고, 올해 초까지 집행된 금액은 전체의 52.67% 수준이다.
이 중 첨단 신라문화체험단지 조성, 전통도자기 전승공방마을조성, 경주 역사도시문화관 건립, 에너지박물관 건립 등 6개 사업은 대부분 추진조차 못하고 있다.
또 원자력병원분원 건립 등 7건(1조192억원)은 장기검토사업으로 분류돼 지원계획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들 사업 중 가장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지역발전특별회계와 미추진 사업의 대체 및 신규 사업으로의 전환 문제다.
첨단 신라문화체험단지 조성 등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사업은 지난 2009년부터 지역발전특별회계(지특회계)로 전환됨에 따라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지특회계는 경북도가 자율 편성하는 지역발전특별회계로 도가 타 시·군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경주시에만 많은 사업비를 지원할 수 없게 돼 있다.
더구나 방폐장유치지역지원사업으로 명시되지 않고 일반사업으로 분류돼 더욱 예산확보가 어렵다는 것.
이에 따라 지특회계로 분류된 사업을 일반회계로의 복귀를 지속적으로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대체 및 신규 사업으로 전환이 필요한 사업에 대해서도 각 해당부처의 미온적인 반응으로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뷰]권영길 경주시의회 의장-“주민과의 약속 이행 없이 준공식 참여 못해”
“방폐장을 유치한 지 10년째를 맞았지만 정부가 약속한 55개 지원 사업 가운데 고작 50% 정도만 완료됐을 뿐이다”
권영길 경주시의회 의장은 “경주시민이 19년간 표류하던 방폐장을 유치했지만 정부는 방폐장을 제외하고 시민과 약속한 유치지역지원사업은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국책사업 유치 후 정부가 주민과의 약속은 저버리고 방폐장만 운영한다는 것은 경주시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방폐장 준공식 불참 이유를 밝혔다.
그는 “준공식 행사에 국무총리가 참석하지만 짧은 시간 머물다 갈 것인데 대화 내용도 상당히 제한적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6개 부진사업과 7개 장기검토사업이 전혀 추진되지 않고 있다”며 “유치지역지원 실무위원회에서 적극 개입해 대체사업을 발굴해야하는데 그동안 뒷짐만 지고 있었다. 정부가 약속한 지원 사업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한 갈등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정부부처의 회유에 대해서는 “갑자기 유치지역지원 실무위원회를 열고, 청와대 보고와 국무총리와의 간담회 주선 등을 제시해왔다”면서 “그동안 경주시와 시의회가 지원 사업 중 부진사업에 대한 대책 등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는데도 무시해오다 준공식이 다가와서 이런 식의 제안을 한다는 것은 시민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그는 “이번 준공식 불참 결정이 그 어떤 대정부 투쟁보다 효과적인 메시지가 된 것 같다”면서 “향후 정부와 각 부처들이 부진·장기검토사업에 대해 제대로 진행하지 않을 경우 시의회 차원에서 방폐장 2단계 사업에 강력한 제동을 걸 계획”이라고 강조했다.